기분이 저기압일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

정말로

by 미온

정신없이 흘러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행사로 가장 바쁜 시기를 지나고 있고, 바깥 세상도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다.

국제 정세에 따라 시장은 흔들리고, 화면 속 숫자들은 특별할 것 없는 얼굴로 내 하루에 끼어든다.

그 숫자들은 가끔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그렇게 살아내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그래도 결국 남는 건 숫자가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온 나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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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평소와는 다른 길로 걸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벚꽃이 피어 있었고, 일부는 이미 지고 있었다.


아, 봄이구나.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올해는 벚꽃이 피었다는 것도, 지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굳이 시간을 내서라도 보러 갔던 것들인데,
지금은 그럴 여유를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게 된다.

벚꽃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피어 있는데, 내 쪽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나무 아래를 걷다가 바람에 날리던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아주 가볍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걸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그랬다.


나는 여전히 이런 사소한 일들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하나에 계속 매달려 있으면, 다른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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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기분이 자주 가라앉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깃집으로 향했다.
익숙한 선택이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하나씩 주문했다.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입안이 헐어 있어서 먹는 게 조금 불편했지만 토시살의 식감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 감각이, 이곳에서 처음 토시살을 먹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쫄깃한 식감과 진한 맛이, 미친 듯이 맛있어서 행복한 웃음이 터지던 그때를.


술은 마시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충분했다. 그걸로 됐다.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괜찮게 지나갔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말이 꽤나 설득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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