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른 그리고 우리

by 강일영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009년 4월, 고교시절 마지막 소풍이라는 명목 하에 우린 63 빌딩 전망대에 올랐다. 수능이라는 큰 산을 앞두고 예민 미가 극에 달아있던 터라, 누구 하나 즐겁게 즐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우린 한껏 들떠있었고, 또 긴장해 있었다.


떠들썩한 여고생들의 수다 가운데에서도 유독 달뜬 목소리를 내뱉고 있던 사람은 서울 구경 자체가 처음인 ‘정’이었다. 나와는 10년지기이자 같은 반 친구였던 ‘정’은 나고 자란 ‘대전’을 마치 세상의 중심처럼 알고 사는 열아홉 소녀였다. 서울은커녕 인근 도시들도 가본 적 없던 순진무구한 그녀의 경험으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첨단 대도시의 풍경. 그래서인지 정은 소풍 내내 소리를 지른다거나, 입을 쩍- 벌린 채 빌딩 숲만 쳐다보는 등 괴이한 행동을 일삼았다. 정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매 순간 즐거운 웃음이 터졌지만, 비슷비슷한 처지였던 우린 정의 기분을 십분 이해했다. 인구 천만의 도시, 무려 대한민국의 수도의 중심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못내 감격스러웠고, 오금이 짜릿짜릿 저려왔다. 서울 하늘을 올려다보던 여고생들의 눈빛이 저마다의 희망으로 수줍게 흔들렸다.


발밑에 펼쳐진 진풍경을 배경 삼아 우린 각자의 핑크빛 미래를 설계했다. 어른이 되면 꼭 서울에 살자는 무언의 약속과 함께 시작된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플랜. 청담 사거리와 홍대 앞의 건물들은 우리들의 이름이 붙은 초호화 빌딩들로 재탄생되었고, 우리 손엔 벤틀리 차키가 성공의 상징처럼 들려있었다. 이야기만으로도 행복한 하루하루,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서울살이.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어른은 그야말로 자유와 행복을 동시에 거머쥔, 진정한 위너 그 자체였다.


희망찬 내일을 품은 우린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성인이란 신분으로 상경했고, 먹고살기 위해 땀띠 나게 뛰어다니며 자급자족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컬러풀한 서울 도심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도시의 한 부분이 나라는 색으로 채워졌지만, 내 하루는 찬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어른이 되면서 나는 점점 더 움츠려 들고, 쪼그라들고, 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그건, 남다른 시선으로 서울을 동경하던 정도 마찬가지였다.


정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만난다. 약속된 시간은 매번 달랐지만, 장소만큼은 63 빌딩으로 동일했다. 63 빌딩이 아니라면, 인근의 음식점에서 63 빌딩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정과 내가 우직하게 63 빌딩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곳엔, 우리의 미련한 꿈이 있다.


“참, 그때가 좋았지. 전망대 올라가서 서울 빌딩 죄다 내 거라고 떠들던 때가.”


정과 63 빌딩 앞 음식점에서 만난 날, 정은 또다시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정과의 시간여행은 언제나 기꺼웠기에, 나 역시 덤덤하게 과거의 찬란했던 두 여고생을 떠올렸다. ‘우리 참 좋았는데..’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그 시간들. 그때의 우리.


“그러게 말이다. 그땐 진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는데. 진짜 마음만 먹으면 홍대 빌딩 다 내 거 되는 줄 알았어.”


한숨 쉬듯 내뱉은 나의 말에 정은 꺄르르 웃었다, 그리곤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일영아, 넌 그런 생각 안 해봤냐?”


정의 말에 나는,


“뭔 생각?”

이라고 대꾸했고. 또다시 정은,

“한강 물은 왜 안 마르지, 그런 생각.”


그러면서 신명 나게 오징어를 질겅질겅, 물어뜯었다. 나는 정의 엉뚱함에 피식, 웃음이 터져 “그게 뭐냐!”라고 대꾸했지만, 정의 얼굴은 깨끗하게 펴질 줄 몰랐다.


“난 맨날 그런 생각 하는데.”


심각한 정의 말에 내가 장난스레,


“넌 그런 생각 하고 사냐? 나는 한강 내다보이는 집이 얼마나 비쌀지를 생각하는데.”

내 말에 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 생각도 하지.”라며 웃었다.


정은 한참 말이 없었다. 생각을 곱씹는 듯 침묵을 지키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내 정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한강 보면서 안 우는 어른이 있을까. 어른이 존재하는 한, 한강은 절대 안 마를 듯싶다.”

정의 얼굴에 눈물 비슷한 게 아른거리다 재빠르게 사라졌다.


우린 한참을 말없이 술잔만 비웠고, 또 한참을 가만히 안주들만 내려다보았다. 만나기만 해도 즐겁고 유쾌했던 사이로 어느덧 높은 현실의 벽이 세워져 있었다. 좋지 않은 친구의 표정에 마음 한편이 뻐근하게 뭉쳐오는 듯했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는 63 빌딩 전망대였다. 틈만 나면 정과 자주 오르던 곳이었지만, 이상하게 발아래 펼쳐진 모든 풍경이 생경했다.


“일영아, 우리 여기서 소원 빌래?”

정이 물었다.


“야, 여기서 소원 빌면 이뤄지지도 않어. 홍대 빌딩 봐라, 누구 껀지.”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정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서울에 올라와서 살잔 바람은 이뤄졌잖어. 반 정도 들어주는 거면, 승산 있는 거 아니냐?”

정은 이내 한강이 내려다보며 두 눈을 감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리곤 환하게 웃으며 내 팔을 툭툭, 쳤다.


“빨리 빌어. 나, 니 소원 이뤄지게 해달라고 빌었으니까.”

정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나 역시 눈을 감았다. 4월의 그날처럼, 곳곳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우리의 어른 생활이 조금은 덜 아프게 해 주세요.’


성적표가 아닌 각종 고지서에 신음하고, 엄마의 잔소리가 아닌 부장의 해고 통지에 눈물을 훔치는 측은한 어른이지만. 그래서 많이 울고, 또 자주 주저앉아야 하지만, 끝끝내 이 모든 것이 좋은 추억이기를.


서울과 어른. 그리고 우리라는 청춘이 언제까지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