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by 강일영


나는 옛날 게임의 일인자다. 특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에서는 신(神)급 달인으로 통하는 수준이다. 동네방네 소문난 나의 대단한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 반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의 어떤 무리도 나 하나 통제하거나 사로잡지 못했다. 재빠른 발재간은 물론이요, 몸짓 역시 날렵해서, 내가 떴다! 하면 상황은 1분 안에 종료되거나 마무리될 정도였으니까. 마음 맞는 같은 팀에게는 환호를, 외로이 뜬 술래에게는 절망을 주는 어마무지한 실력.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는 간단하지만 대단한 기술들이 필요하다. 물론 이 대단한 기술들은 하늘로부터 부여받는 일종의 GIFT(타고난 재능)가 있어야 한다. 술래의 고갯짓을 나노 단위로 파악할 수 있는 눈치와 자리에 멈춘 그 시간 동안 꿋꿋이 버텨내는 인내, 과감히 술래의 어깨에 손을 갖다 대는 용기는 선천적 센스. 여기에 우사인 볼트급으로 내달릴 수 있는 튼튼한 두 발과 바람을 가르는 얇실한 몸매가 더해지면 하늘의 간택을 받은 프로 게임러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물론 타고난 능력이 없어도 괜찮다. 궁지에 몰리고 몰려 술래라는 극한의 상황에 치달았을 때, 슬기롭게 해쳐 나오는 방법만 터득하고 있으면 된다. 방법들은 기발하고 다양해서 여러 종류가 있기 마련인데 무엇보다 자기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익히고 있다면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일종의 ‘페이크(FAKE)' 기법으로 치밀하고 기발하지만, 굉장히 야비할 수 있다. 그러나 불법은 절대 아니며, 100% 효능까지 입증하는 방법이니 기억해 두었다가 반드시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해당 게임에 본 기술을 접목해 상상력을 펼쳐보자. 먼저 술래가 된 내가 등을 지고 크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면 아이들이 우르르, 내 쪽으로 달려온다. 그러면 나는 도도하게 고개를 돌려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 모습을 유심히 살핀 후, 못 본 척 등을 진다.(이때, 움직이는 친구가 있더라도 무시하는 게 포인트다) 제법 자애로운(다른 말로는 무뎌 보이는) 나의 움직임에 안심한 친구들이 등 돌린 내 뒷모습을 보며 바지런히 움직인다. 이때부터 술래는 혹여나 누군가 내 등의 터치버튼을 누르지는 않을까, 불안해한다. 그러나 완벽한 기술은 차분한 내면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술래가 반드시 쥐고 있어야 할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명언을 가슴에 새기며 매 순간 긴장된 마음으로 면면들의 기분을 파악해야 한다. 천천히 다가오는 천진한 발걸음들에 의심의 그림자가 있진 않은지 면밀하게 살피고, 모든 우주의 기운이 긴장의 끈을 놓은 듯한 고요함이 시간 속에 내려앉아 있는지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적절한 시기는 반드시 온다. 또한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니 늘 준비해야 한다.

자, 이제 '페이크(FAKE)'의 진면모를 적들에게 펼쳐 보여주기로 하자. 아무 구호 없이, 순발력 있게 고개를 휙! 돌려 움직이는 놈들을 눈으로 속속들이 잡아내면 되는데, 벙찐 얼굴부터 찰나의 정적이 빚어낸 우스꽝스러운 정지상태가 술래 눈에 그림처럼 펼쳐질 것이다. 동시에 술래 입가에 걸리는 비너스의 미소. 일대가 소란스레 아수라장으로 변하면 오로지 술래의 승리가 된다.


아무 구호 없이 고개를 돌리는 이 ‘유치한’ 술수는 어마어마한 비난을 불러온다. 술래 쪽으로 빠르게 다가와 거칠게 항의하기도 하고, 억울하다며 자리에 주저앉는 인물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고, 차갑다는 것을 그들도 알아야 한다.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술래는 그저,


“야! 걸린 놈들 다 와라!”


걸걸하게 외치면 될 뿐이다.


깜찍한 재치의 결과는 귀여운 손깍지 기차가 된다. 처음에는 참여 인원의 반절 정도가 덫에 걸려 울퉁불퉁한 손깍지 철길을 만드는데, 여러 번 고개 돌림을 이어나갈수록 꽤 많은 친구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운동장 끝까지 선다. 이미 대세는 술래 쪽으로 기울었다. 마지막 남은 친구는 그대로 기가 죽어 제 몸 하나 컨트롤하기 버거운 상태가 된다. 봐주지 않고 그 하나까지 깔끔하게 잡아내면 그대로 술래의 승(勝)! 뿌듯한 표정의 술래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면, 그 곁엔 어느샌가 천군만마의 장벽이 굳건히 세워져 있게 된다.




인생은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다. 게임에서 나는 타고난 눈치와 빠른 재간으로 잘난 대우를 받았다. 이는 현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단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든, 좋은 부모를 만나든. 어떤 방식으로든 남들보다 더 나은 놈들은 존재 그대로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어쩌면 당연하고 대단하지 않은 이치. 우린 이 이치와 매 순간 대립하지만 나름의 질서를 바탕으로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살아간다.


혹여 자신이 혈혈단신 맨몸으로 태어나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절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이 모두 척지고 등 돌리고 있다 하더라도, 독특하고 기발한 나만의 특별한 아이디어는 그때그때마다 위기에서 나를 구원해줄 것이다. 혼자라고,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술래’라고 울거나 좌절하지 말고 눈앞에 펼쳐진 위기들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때를 기다리며. 성급하지 않게 자신에게 맞는 방법들을 차분히 시도해보자. 물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지 매사 신중하게 상황을 살펴야 하고 합법적인 경로인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은 필수다. 정밀한 검증 이후, 적법의 루트로 단계를 밟아가며 하나, 둘, 잡아내고 물리치다 보면 어느덧 당신의 곁엔 두툼한 편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깨어지지 않는 당신만의 단단한 꼬리가 말이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해당 ‘페이크(FAKE)' 권법은 아이들에게 온갖 욕설을 들을 수 있는 아무 무시무시한 편법이므로 사용 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본 방법은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상황을 봐가면서(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이 상처를 잘 받는지, 아닌지를 꼭 따져보세요!) 하루에 3번 이내로 사용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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