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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y 03. 2024

Ling Ling

떠나는 그에게



유미야... 어디 좀 건드렸니? 얼굴이라든지...

  <유미의 세포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로맨스 치고는?) 연애 서사에 속마음을 대변하는 '세포'들을 출현시켜 이야기의 깊이와 재미를 더한 작품입니다. 로맨스물답게 유미는 연애에서 엄청난 행복과 고난을 겪습니다. 그런 고된 상황 속에서 유미는 갈등과 고민을 겪고 그녀 안의 복잡한 마음을 우리는 그녀의 '세포'를 통해서 좀 더 직접적이고 진실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로맨스물에는 전혀 관심 없는 제가 몇 안 되게 완결까지 다 챙겨 본 작품이고 그만큼 유미라는 캐릭터에게 꽤나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여자 평범한 듯하면서 되게 이상한 매력이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캐릭터의 바닥부터 꼭대기 까지를 여과 없이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지 않았나 싶네요. 'ㅋㅋ 진짜 이상하네'부터 다들 이렇게 살고 있구나까지.(물론 작가는 남자입니다 ㅋㅋ. 아마도 부인분의 열정적 피드백이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웅이는 진짜 내가 생각한 그대로임 ㅋㅋㅋㅋ 싱크로율 미침ㅋㅋ


  그런 웹툰이 드라마로 나온다 했을 때! 사실 관심이 없었습니다. 웹툰 원작 드라마들이 어떤 방식으로 원작을 말아먹는지 많이 봐왔기도 했고... 약간 세포들을 보는 게 좀... 오글거릴 것 같다는 생각도 하기도 했네요. 뭐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재밌었다 하기도 하고 시즌 2까지 나온 걸 보면 나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볼 생각은 들지 않았네요. 드라마를 안 본 지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넘 길어 진짜 바빠 죽겠는데.)


그렇게 잊히는 듯싶다가 갑자기 검정치마의 노래를 듣다 만났습니다. 유미의 세포들 OST 검정치마의 <Ling Ling>.





<Ling Ling> - 검정치마

넌 새로운 걸 찾는데도

지난날이 계속 기억날 걸

우린 추락할 거야 그래도

어지러운 것보다는 낫잖아.


Ling Ling 너는 정말 바보야

나만큼 너를 사랑해 주는

그런 사람은 없어.



 제방에 자주 놀러 오는 딸랑구가 들어라 들어라 노래를 불렀던 노랜데... 약간 들어보고는 제 스타일이 아니다 싶어 흘려 들었습니다. <antifreeze>도 딱히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비슷한 류의 노래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유미의 첫 남자친구이자... 유미가 진짜 좋아한 남자 구웅. 행복해 보이던 둘이지만... 유미보다 일이 무조건 우선인 웅이에게 점점 지쳐가는 유미... 그리고 유미가 자존심이 상하고 슬퍼질 때마다... 검정치마의 <Ling Ling>이 울려 퍼집니다. 마치 빨간불이 들어온 둘의 관계의 위기를 알리려는 듯. 곧 끊어질 것 같은 둘의 고리를 보여주려는 듯.


ring2

            1.동사 英 전화하다, 전화를 걸다          

            2.동사 울리다, 오다          

            3.명사 英 종소리; 종을 치기[울리기], 벨을 누르기          

            4.명사 (맑고 크게 울리는) 소리          

ring1

            1.명사 반지 (→engagement ring, signet ring, wedding ring)          

            2.명사 고리, 고리 모양의 것          

            3.동사 …을 둘러[에워]싸다          

            4.동사 (새의 다리에 표시로) 고리를 끼우다          


근데 왜... Ring Ring이 아니라 <Ling Ling>인 걸까요? 조휴일... 한국물 많이 먹더니 영어를 까먹었나?


ling 명사

            (일종의) 히스(황야 지대에 피는 키 작은 야생화의 하나)          


 ling은 그 자체로 별 뜻도 없는 말입니다. 사전을 찾아봐도 하나 잡히는 게 작은 야생화의 이름뿐. 왜 <Ling Ling>은 Ling이어야 했을까요. 륑륑이 아니라 링링.





 우리나라에서 애칭을 지을 때 이름의 한글 자를 따오던가 한 글자를 애칭 자체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경상도에서 뒷글자로 자식을 부른 것처럼. EX/ 신준호 -> 호야~). 중국에선 이름의 끝을 2번 부르는 게 애칭으로 흔히 사용된다고 합니다. 샤오링 -> 링링. 중국 프로게이머 중에 이름이 자오리제인데 닉네임이 jiejie(제제)인 이유도 자신의 애칭을 게임 닉네임으로 쓰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ㅋㅋㅋ 검정치마가 중국 문화권을 염두 해서 링링이라 한 것 같진 않고. 제가 LIng LIng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애칭인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게 시작점이었습니다,


영어 단어 중에도 ling으로 끝나는 매우 달콤한 말이 하나 있거든요.


바로 


darling

            1여보, 자기, 얘야(사랑하는 사람을 부를 때 쓰는 표현)          

            2아주 다정한[친절한] 사람          

            3(대단히) 사랑하는, 굉장히 멋진[특별한]          


달링(darling)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이 노래는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네요.





아무리 봐도 노래 속 화자의 상태는 썩...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정말 나쁘다면 이별이고... 최소 권태기 정도는 겪고 있는 듯하네요. 


<Ling Ling>

다시 내게 말해줄래?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

작은 불이 꺼진 거야

이젠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순간 알 수 있었어

셀램도 지겨워지려는 때가 온 거야



 그런 상황에서도 화자는... 다 알면서도 못 들은 척 애칭으로 상대방을 부르며 말하고 있습니다. 


<Ling Ling>

Ling LIng 슬픈 표정 짓지 마

내 경계 없는 맘엔

수상한 그런 설계가 없어


Ling LIng 이해하려 하지 마

연약한 걱정밖에 없는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너무 힘든 와중에도 상대방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 상황에 대한 아쉬움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서글픔만이 느껴집니다.


<기다린 만큼 더>에서처럼 너무 나 잘 알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화자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3집<THIRSTY>에서 폭력적인 가사들로 표현되던 것들이... 훨씬 서정적이고... 더 직접적으로 바뀌듯 하지만... 항상 느끼는 검정치마 특유의 서글픔은 잘 살아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가사들이... 너무나 서글픈 표정으로 구웅을 바라보는 유미와 너무나 잘 맞네요.


리얼 ㅠ.




 누군가를 부르는 입에 붙은 말은... 쉽게 변하질 않는듯합니다. 관계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생성되기를 반복하지만... 그 사람을 부르던 말은 그렇게 쉽게 변하질 않네요. 아마도 떠나는 사람에게 Ling Ling이라 부르면서 슬퍼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나 입에 붙은 말. 여태까지 그렇게 불러왔기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지만 다시는 부르면 안 되는 그런 이름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입은 어쩔 수 없더라도... 마음은 붙잡지 못하는 화자는... 상대방을 많이 사랑하는 모양입니다. 그냥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만 애타게 바랄 뿐... 붙잡을 순 없습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더 잘 아니까요. 유미와 구웅처럼. 물론 유미는 나중 가서 더 멋진 남자를 만나지만... 구웅을 이겨내지만... 이때의 유미의 진심이 깎이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유미의 마음을 세포 단위로 하나하나 다 열어 보았으니 모를 수가 없죠. 웅이가 유미의 세포들을 볼 수 있었다면... 또 달라졌을지... 뭐 생각해 보는 건 별 의미 없는듯합니다. 웅이는 유미의 마음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끝이 나 버렸으니까요. 


 성공한 웅이는 다시 유미를 찾지만. 그땐 이미 다른 멋진 사람이 유미 옆에 있을 뿐입니다. 웅이만큼이나 사랑하는... 



<Ling Ling>

Ling Ling 아무 말도 하지 마

네가 돌아오는 날엔

더 이상 우릴 버리질 않아 


Ling Ling 이건 한 줌 모래야

흘리는 순간 떠내려가는

원래 그런 사이인 거야



 다 그런 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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