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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y 24. 2024

야만인들과 함께 춤을

끝을 부르는 틀린 질문 일지라도


  사람마다 사랑의 척도는 다르겠지만. 제가 볼 때 확실히 '관심'은 사랑의 척도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머릿속에서 아예 사라지는 무관심인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관심이 생깁니다. 그 관심은 수많은 물음으로 이어지고 그 물음들은 호기심이 되어 그것이 미지의 상태가 아니라 완결된 하나의 답이 도출되길 바라게 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평소엔 뭘 하는지 시간대가 너무 다르진 않는지... 다양한 것에 대해 질문 공세가 이어지다 결국엔... 너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를 물어보게 되겠죠. 그게 꼭 말이 아니라 행동이나 분위기로 물어볼 수 있고 대답도 그와 마찬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에 답이 너무 느려지면 우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물음은 틀린 것으로 오독되기 십상입니다.





검정치마 <틀린질문>

나에게 뭐든 물어봐

틀린 질문도 괜찮아


그런데 여기 애초부터 틀린 질문조차도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틀린 질문은 어떤 질문이까요. 답이 나올 수가 없는 질문일 수도 있고, 물어볼 필요가 없는 질문 일 수도 있고... 혹은 

  물어봐선 안되는 질문 일 수도 있겠네요.


-

니가 보고 싶은 상처들이

오늘은 좀 더 벌어졌는지

거짓말이 진심인지

아님 그냥 잘하게 된 건지


  그가 생각하는 틀린 질문은 '물어봐선 안되는'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관계성을 멸절시키는 관심조차도 그는 바라고 있고... 솔직히 제가 볼 땐 그 파멸의 순간 자체를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

내 검게 물든 심장이 입 밖으로 막 나와요

그대 알잖아요 나는 저들과는 달라요

목이 타서 죽겠지만 물은 안 마셔요

속에 담아뒀던 좀 더 뜨거운 걸 주세요


  돌아오지 않는 질문들에 속은 타들어가지만 속을 식혀줄 무엇인가는 그의 손엔 없어 그는 목마르기만 합니다. 이젠 재밖에 남지 않은 마음이라도 식혀줄 대답만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어린 시절엔 친구와 연인이라는 단어를 잘 구분하질 못했습니다(지금도 뭐.. 나눠 보라 하면 어려울 것 같네요). 길고 힘든 밤을 녹여주는 건 둘 다 마찬가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대책 없는 선의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


ㅋㅋㅋㅋ 여기 은근 국민대 사랑의 명소임. 밤늦게 단둘이 가지 마라... 사고 난다...

  첫차가 얼마 안 남은 새벽 학교 옆에 딱 하나 있는 24시간 순댓국집에서 어떤 친구와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둘 다 되게 술을 좋아하고 잘 맞아서 한창 같이 다녔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을 많이 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평소처럼 헛소리나 싸지르면서 둘 다 술에 째릴랑 말랑하고 있을 때. 홀 이모님이 눈치 없이 한마디를 하고 갔습니다,  '야야 빨리 누구 하나가 고백해라.'


  그 너무 폭력적인 말 한마디에 우리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지금이야 뭐 이모님의 허접한 토스 따위 '이모님이 더 제 스타일이에요.' 같은 강스파이크로 능글맞게 넘길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어리디 어렸던 그때의 저는 너무 당황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정적에 그 친구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우리는 한참이 말이 없었네요.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줘라... 그리고 약간의 기대도 있었을까요? 그때는 아무래도 지금보다 눈치가 없었으니. 얼마 안 가 그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너 혹시 나 좋아해?


  아마도 이 질문이 '틀린 질문'아닐까 싶습니다. 그 친구는 얼마 안 있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형과 만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그 친구와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진 못했지만... 사이가 멀어지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제가 둘 사이의 방해물이 될까 조심했을 뿐. 물론 이건 제가 특이 케이스 같긴 합니다. 보통은 쪽팔려서라도 잘 안 볼 텐데... 5년이 지난 지금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더 친해졌나 싶기도 하고. 이젠은 별말을 다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요. 


-

틀린 걸 물어봐도 돼

대답은 바르게 해줄게


  그 친구의 질문에... '그래'라고 바른 답을 말한 게 너무 쪽팔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듯싶습니다. 그때 센척해놓고 틀린 대답을 하고 둘이 만나는 걸 봤으면 좀 많이 빡쳤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기에 속은 편안했으니까요. 이미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

이젠 여기 웃음꽃이 피어날 거예요

돌을 들고 달려온 저 야만인들 좀 봐요

송곳니를 뽑아가서 목에 걸 거래요

내 음악이 비명이 되면 춤을 출 거래요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 긴 정적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하지만 언제나 확신 받기를 좋아하는 저는 그때 틀린 질문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질문의 끝엔 파멸밖에 없더라도... 돌아오지 않는 질문들로 벌벌 떠느니... 틀린 질문이라도 받아서 바르게 끝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나름 또 야만적이지만.. 신나는 파멸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 순간엔 좀 두려웠더라도.


  우리는 가끔. 틀린 질문이라도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종말을 의미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가 있는 것이죠. 그때 진심이라는 야만인들이 우리의 어떤 모습을 다 찢어 발길지도 모르지만(예를 들어 그 친구와 연인으로 지내는 나의 모습이라든지)... 그런 고통이 하나의 의식으로 작용해서 더 편안해진 나를 찾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ps,

  2년쯤 만나다 둘은 헤어졌고. 헤어지고 2년쯤 뒤에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때 아마... 그 오빠랑 연락 안 하고 있었으면 너 만났을 듯?' 순댓국집에서 와 비슷하게 취기가 오른 그 친구를 보며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타이밍이야 이년아.' 

  이제 그친구에게 궁금한건 안부 정도면 충분한듯 싶네요. 연락이나 잘 해 이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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