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라니 Jan 22. 2024

Homo Quantumous

개인과 세계의 중첩으로서의 인간

 어떤 물질이 파동(波動, wave)이면서 입자(粒子, particle) 라면 믿으실 수 있나요? 쉽게 말하면 빛이나 음파이자 수소나 탄소 같은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 세계에선 불가능 한 일이죠. 에너지와 중량은 다른 개념이니까요, 하지만 매우 매우 작은 양자(量子, quantum)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그 세계에선 파동이자 입자인 것이 보통 상식입니다. 매우 매우 작은 양자의 미시 세계에선 거시 세계인 우리들의 법칙이 통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작기에 우리의 미세한 간섭에도 큰 영향을 받고 말죠. 그렇기에 양자역학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에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매우 작은 힘도 양자의 세계에서는 쓰나미와 같은 영향을 끼치고 아무리 변인을 통제해도 관측이라는 거대한 간섭 때문에 자꾸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공간도 미시세계의 기준에선 포화상태로 꽉 차있는 공간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양자는 파동과 입자 사이의 겹쳐진 존재처럼 보이는 것이죠. 세밀하고 예민한 존재는 관측하고 답을 내려는 시도조차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그건 양자의 미시세계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거시 세계에도 세밀하고 예민한 존재는 항상 있기 마련이죠. 인간을 관측하고 답을 내려는 시도는 항상 많았지만 결과 값은 사람마다 모두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겠네요. 판단하려는 순간 판단자의 내부에서 수많은 변인들이 작용해 결과 값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판단하는 사람 본인도 모르게. 인간만큼 입체적이고 포화적인 존재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거시와 미시의 각도에따라 다르게 조명되는 인물이 있을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는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영화에서도 그 답을 내려고 하기보단 오펜하이머라는 인간의 층위를 자세하게 보여주며 그가 핵무기를 만드는 과정을 조명합니다. 그곳에서 오펜하이머는 ‘인간에게 제우스의 번개를 훔쳐준 프로메테우스’, ‘죽음의 신이자 파괴’, ‘반전주의자’, ‘오만한 천재’, ‘매카시즘의 순교자’... 그리고 ‘고뇌하는 인간’. 단지 그의 행보를 따라갔을 뿐인데도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관측됩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오펜하이머라는 인간의 존재는 확실합니다. 그는 분명 이 지구의 시간선 1904~1967년 동안 실존했습니다. 하지만 관측자에 따라 관측의 방법에 따라 그는 다른 인물로 정의되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저명한 관측자의 실험에서는 항상 다른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번개를 뺏은 예언자였을까요 한 치 앞도 못 보는 오만한 천재였을까요.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오펜하이머>를 한 번 더 본다면 오펜하이머에 대한 다른 결론이 도출될지도 모르니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 / 스틸컷


 인간도 다양한 측면에서 이중적 특징을 가지곤 합니다, 안에선 따뜻한 아빠지만 밖에선 세상을 망치는 빌런 이런 컨셉은 이제 하나의 클리셰로 다가옵니다. 낮에 나에겐 세상 싸가지 없는 무능한 상사도 밤에 그의 딸한테는 또 둘도 없는 어머니 일 수 있죠. 사람 역시 측정 시기와 측정자와 측정 상태에 따라 불특정의 다양한 측정값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오펜하이머의 숙적 스트로스 역시 마찬가지죠. 그는 수소폭탄을 개발해 내려는 권력자이자 자수성가한 아버지이며 또 자존심을 긁었다고 보복을 하는 작은 인간이기도 합니다. 언제 어디서 보느냐는 모든 인간의 관측 값에 큰 역할을 합니다. 스트로스는 아쉽게도 <오펜하이머>에선 별로인 모습으로 관측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죠.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 / 스틸컷



 관측에 따라서 인간과 그가 사는 세계는 너무나 다르게 측정이 됩니다. 영화 <오펜하이머>도 하나의 관측에 불과할 뿐. 우리는 단지 놀란이라는 관측자가 본 인물과 그 당시 세계를 맛보았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딱딱 떨어지는 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모순점을 앉고 살아가는 존재라는걸요. 우리는 한 가지 행위를 했더라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죠. 택시에 탈 때 먼저 타는 게 예의 바른 행동인가요 늦게 타는 게 예의 바른 행동인가요? 문은 앞선 사람이 잡아주는 게 예의인가요 빨리 지나가는 게 예의인가요? 관측하기에 따라 달라질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해하고 답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 누구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리처드 파인만


 아마도 이 말은 우리에 눈에는 양자들이 모순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한 것이겠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원폭을 효율적으로 터트릴 방법까지 제시한 사람이지만 결국에는 수소폭탄이 만들어지는 걸 막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뭐가 그의 진심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죠.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고라니


 너무나 다양한 것들이 중첩되어 있으니까요. 


 모든 시작은 현상태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아인슈타인도 한때 인정하지 못했던 이 모순적인 개념들. 그렇기에 양자역학을 알기 위해서는 모순적임을 인정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이해의 시작이니까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지만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지는 신의 마음’ 일 수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이해해 보려 노력할 뿐. 세상이 모순적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드디어 미시의 세계는 열리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세계가 열리면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1 + 1이 2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했지만. 우리는 해냈네요.


 인간은 개인과 세계가 중첩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관측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성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죠. 우리는 모순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세상의 법칙과 맞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할 때 전혀 다른 세계와 시각이 열리겠죠. 악하기만 한 인간도 선하기만 한 인간도 완벽하게 지적인 인간도 완벽하게 멍청한 인간도 무조건 아군인 인간도 무조건 적인 인간도 없습니다. 단지 그 순간의 겹침의 정도가 그를 그렇게 보이게 할 뿐 인거죠. 오펜하이머를 양자적인 존재로 표현한 <오펜하이머>처럼요. 여러분은 어떤 인간인가요. 아마 본인조차 본인을 제대로 관측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단지 지금 해봐도 좋을 건. 눈을 감고 느껴보는 거죠 본인의 양자성은. 당신은 어떤 homo Quantumous일까요. 제가 볼 때 전. 정의를 짊어지고 싶어 하는 악당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시대감각 : 귀썩는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