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의 시대성
요즘 대세 밴드 실리카겔입니다. 어느 방부제의 이름을 본떠 만든 이 성의 없는 이름은 이제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네요.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는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멜로디나 기타 리프는 오 이거 뭐야 싶다가도 가사와 보컬이 좀... 별로라 생각했습니다. 쏜애플을 생각하면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좀 아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여튼 제가 싫든 좋든 실리카겔은 지금 밴드의 세계에서 최전선에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록 페스티벌 어디에서나 실리카겔이 있고 외국 초청 밴드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면. 그건 증명해 낸 것이니까요.
그래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다들 왜 이렇게 실리카겔을 좋아할까? 기라성같은 인디밴드들은 그전에도 분명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세력을 규합한 밴드는 버즈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물론 쏜애플도 꽤 인기가 많은 메이저 밴드지만 성장세나 인지도를 생각하면 근시일 내로 실리카겔이 앞지를 것 같고... 이미 앞질렀을지도 모르겠네요. 유튜브 조회수로는 이미 압살해버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대체.
실리카겔을 말하려면 <No Pain>을 빼놓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노래가 나오고 나서야 지금의 실리카겔이 있는 거니까요. 신곡들이 훨씬 제 취향이지만. 그래도 이 노래로 사람들에게 본인들의 이름을 날린 건 분명해 보입니다.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우리만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혼과 삶
...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Nowhere, no fear
바다 같은 색깔
no cap, no cry
이미 죽은 사람 아냐 사실
- 실리카겔 <no pain>
이 노래 자체가. 제가 실리카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고 실리카겔이 사람들에게 발굴된 이유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실 따뜻한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시대감각이라는 건 언제나 존재합니다. 본인이 전혀 느끼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체화된 그런 감각. 전후, 베이비 붐, 성별 갈등, 촛불…. 다양한 시기가 존재하고 누군가는 중첩되어 있기도 하며 아예 시대감각과 정반대로 가는 경우마저도 그 시대감각에 속해 있는 것이죠. 사람은 결국 사회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그리고 이제 우리는 MZ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밀레니엄의 끄트머리에서 태어난 신인류 그게 바로 우리 MZ입니다.
대체로 좀 모지리처럼 표현되지만... 근데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언제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그렇게 묘사되니까요. 요즘 세대와 예의바른이 한 번이라도 붙어있는 걸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여태는 못 봤는데.
매체에서 MZ들은 아무래도 미성숙하면서도 공동체보단 자신을 중시하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됩니다. 많이 과장되는 부분도 있지만... 뭐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네요. 우린 사회에 던져진 지 아직 오래되지 않았으니(혹은 사회에 아직 진출하지도 않았고) 아직 미숙할 수밖에요.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삶에 잘 적응해 새로운 구시대로 떠오른 X세대들처럼요. 언제나 젊은이는 새롭고 미성숙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을 중시하는 모습은 좀 해명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보이기에 십상이지만. 좀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모든 성장은 아픔을 동반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덜 아프게 하면 좋겠지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죠. 저도 건방지지만, 과거보단 지금의 제가 훨씬 낫다는 감각을 지니고 있고 그걸 꽤나 자랑으로 생각합니다만. 이렇게까지 되기 위한 많은 고난과 시련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있나 싶을 정도로. 저의 건강한 몸과 약간은 사이코패스적인 생활 감각이 없었다면 또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죠. 이렇게 펜을 잡지도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을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
원문은 아니지만, 꽤 유명한 니체의 명언입니다. 이름 높은 삶 철학자답게 정말 맞는 말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별로 강해질 맘이 없다면... 좀 안 아플 수도 있는 거 아네요?
어느 시대가 힘들지 않았겠냐만(지금 우리 사회엔 전쟁도 극빈의 고통도 내전도 없습니다) 지금처럼 병적인 감각을 느끼는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삼국시대에 여러분이 태어났으면 삼국시대엔 평균 3년마다 전쟁 1번 고려 시대에 몽골 전쟁이 9차'
- 전한길
분명 절대적 빈곤과 사회적 불행은 많이 해소되었지만, 상대적 빈곤이 더 심해지는 까닭일까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모든 것을 비추는 인터넷 공간 속에서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많이 아는 줄 아는 멍청이는 좀 늘었지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남들보다 모자란 지 더 뼈저리게 알게 되고 그 격차를 메꾸기 위해 허덕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죠. 그게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느끼면 이제 그렇게 되어버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고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으니까요. 안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행복한 느낌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비교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평균치는 하늘을 뚫을 듯 높아 보이고. 남들이 다하는 것만 쫓아가도 힘드네요. 사회에는 정말 간결한 줄 세우기의 기준이 있고 우리는 그걸 계속 살면서 접하고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세상이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지금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꽤 피곤한 감각을 느끼고 사는 것 같습니다. 비교와 줄 세우기에 익숙해지더라도 고통만 좀 덜할 뿐. 그 피로감은 끊이질 않죠.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도 변한 것 없는 삶 속에서 지옥이 펼쳐질 뿐입니다.
제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행복해지고 싶다. 돈 많이 벌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가 아니라.
쉬고 싶다 입니다.
단지 우리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no pain no fail’
언제나 시대감각을 크게 느끼고 그걸 노래하는 사람들은 존재해 왔습니다. 그걸 자기만의 색깔로 해낼 뿐. 그건 많은 공감을 받죠. 고통의 시기엔 산울림. 투쟁의 시기의 신해철과 김광석. 낭만의 시대엔 버즈 혹은 YB…. 수많은 목소리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실리카겔(아마 검정치마도) 일지도 모르겠네요. 무엇인가 낮게 울부짖는 소리. 솔직하면서도 따듯한. 그런 게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이걸 익숙하지 않아 듣기 싫은 귀 썩는 소리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소리는 이것이 아닐까 하네요. 새 시대를 열 땐 새소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프기 싫기에 본인을 챙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부모님과 조부모님 혹은 그보다 훨씬 위를 보면서 아무리 희생해 봤자 별로 남는 것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죠. 반평생을 회사에 사회에 헌신해도 공동체가 무너지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일탈 없이 일상의 삶을 살아도 사회의 격류에 휩쓸릴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목격했으니까요. 모든 일에 리스크가 커진 지금 우리는 단지 최대한 아프지 않고 최대한 힘들지 않은 방향으로 갈 뿐입니다. 그걸 과거에 관점에서는 이기적이고 눈치 없다 할 수 있지만... 저희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본인을 챙기는 건 본인뿐이라는 걸 알려준 건 당신들이니까요.
물론 아무나 시대를 노래한다고 시대의 목소리가 되진 않습니다. 실력도 뒷받침이 되어야 의미가 있겠죠. 모든 시대의 목소리들이 출중한 실력을 갖췄듯이. 실리카겔도 당연하게 그에 걸맞은 실력이 있습니다. 그냥 음악 자체가 좋으니까요. 하지만... 음악 자체가 좋다고 다 시대의 목소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여실하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 반증이 쏜애플이라 생각하거든요. 실력은 출중하지만….
아무래도 이 친구들은 좀 소수의 감각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쏜애플 실리카겔 둘 다 실력과 방향성 모두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실리카겔이 더. 시대를 노래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하고 싶은 걸 해도. 시대를 더 잘 타고 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 뭐... 삶이 그렇죠.
쏜애플보다 잘나가는 건 역시 배알 꼴리지만. 현재 실리카겔은 시대의 목소리 중 하나라 해도 무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더 기대되기도 하고요. <Tic Tac Toc>으로 한 번에 흘러갈 가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도 했으니. 저도 언젠간 결국 귀이징되어서 김한주 씨의 목소리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가 저희보고 귀 썩는 노래라던데... 귀 썩는 음악 계속해보겠습니다.’ - 장원영(사실은 김한주)
뭔 느낌인지는 알 것 같기도 한데. 지켜보겠습니다. 귀 썩는 음악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생각을 바꾸게 한 건 확실하네요. 이젠 꽤 좋게 들리니까요. 빌어먹을 도파민. 질릴 때까지 들어야 하는 노래가 또 생겨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