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도 열지 못한 엄마의 입

엄마를 살리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지5

by 소요

안방에 작은 포대 자루가 하나가 있다. 거기에 자루가 있다는 건 하마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열어볼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엄마의 병은 나에게 일을 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듯 하다. 결국 내가 열었다. 열어보니 참깨다. 검은 깨도 섞여 있는 거 보니 작년에 아빠가 농사지은 것인 거 같다. 납작한 모양새는 볶기 전인 거 같고.


마침 깨소금이 떨어졌다. 나는 모든 반찬에 올라가는 참깨 고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어떻게 해도 칙칙한 묵나물에는 참깨가 필요하다. 어제 베란다 청소하면서 발견된 묵나물을 삶으려고 불리고 있는 중이다. 아빠에게 깨를 볶아야 한다고 말했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아빠가 깨 볶을 생각을 안 한다. 귀찮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빠도 깨 볶는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인터넷에서 참깨 볶는 방법을 검색했다. 다양한 방법 중에 가장 간단한 걸로 하기로 한다: 일단 깨를 물에 씻고 불순물을 걸러낸 뒤 불려야 한다. 깨 한 바가지를 퍼서 물에 담근다. 깨들이 춤을 춘다. 딱히 사는 재미가 없다 보니 참깨 춤을 한참 들여다본다. 물에 담가둔 참깨를 조리로 걸러서 물을 뺀다. 그제야 아빠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어디선가 낡은 팬을 꺼낸다. 땅콩을 볶을 때 쓰는 팬인 것 같다. 동생이 땅콩을 좋아해서 엄마는 땅콩을 자주 사고 볶는다. 내가 깨 볶을 준비를 하니 마침내 아빠가 깨를 볶으려나 보다. 주방 보조가 준비를 하면 셰프가 요리를 하는 것처럼. 모든 걸 엄마가 하다가 이제는 남아있는 사람끼리 사는 방법을 강구한다.


나는 나물을 삶는다. 무슨 나물인지는 모른다. 아빠에게 물었더니 무슨 나물인지 모른다고 한다. 엄마는 시각장애인이라 나물을 직접 뜯을 수가 없다. 분명 어디서 사거나 누군가에게 얻은 것일 테다. 엄마는 식구들에게 먹일 좋은 식재료 구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알고 살아왔다. 둘째 동생이 죽은 이후 아끼고 사느라 좋은 거 못 먹인 것을 후회했고, 이후 좋은 식재료에 집착을 했다. 그래서 엄마의 식재료는 무조건 좋은 거여서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나물은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엄마가 해줘서 먹지 직접 해먹은 기억이 없다. 묵나물을 불렸더니 양이 엄청나다. 반은 비닐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두고, 반은 들기름에 들들 볶는다.


역시 참깨가 강력하다. 들기름 냄새보다 참깨 볶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을 한다. 평상시 같았으면 고소한 냄새, 하면서 엄마도 나도 호들갑을 떨고, 집에서 참깨 볶는 행위조차 이벤트처럼 느끼고 즐거워할 텐데 엄마가 아프니 그런 감성도 사치스럽다. 냄새 다음엔 톡톡. 참깨들이 튀어 오르는 앙증맞은 소리가 들리고, 몇몇 참깨들이 팬 밖으로 탈출한다. 참깨가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아빠가 팬 째로 나에게 들이밀면서 묻는다.


다 된 건가?

글쎄, 먹어보면 알겠지!


한 꼬집을 집어 입에 털어 넣는다. 참깨가 입에서 톡톡 터지면서 입안에 고소한 맛이 퍼진다. 참깨를 빈 양푼에 덜어낸다. 다시 한번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만져보니 아직 열기가 있다. 따뜻하다. 미리 볶아둔 이름 모를 나물에 갓 볶은 참깨를 솔솔 뿌린다. 참깨가 칙칙한 나물을 살린다.


엄마, 참깨 볶았어. 냄새나?

반응이 없다.

엄마 참깨 먹어볼래?

역시 반응이 없다.

참깨를 한 꼬집 집어서 엄마 입에 털어 넣는다. 엄마의 입이 오물오물 부지런히 움직인다.

엄마 어때? 꼬셔?

대답이 없다.


참깨도 엄마의 입을 열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주문을 외워야 엄마의 입이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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