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었을까, 밤벌레

엄마를 살리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지6

by 소요

엄마 집에, 이 좁은 집에 냉장고가 4대가 있다. 일반적인 냉장고 1대, 김치 냉장고 2대, 냉동고 1대. 김치 냉장고 중 하나는 김치 냉장고라는 게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아빠가 엄마에게 선물한 것이다. 아빠가 엄마가 요리 솜씨는 없는데 김치 하나는 잘 담근다며 선물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게 선물인가, 그냥 집에 살림 들인 거지. 근데 엄마는 선물 받았다며 좋아했고 선물의 이유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다. 김치 냉장고가 처음 나왔을 때는 꽤 비쌌다고 한다. 김치 냉장고를 처음 집에 들였을 때 동네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기도 했단다. 아직까지 용케 버티고 있지만 오늘내일하는 냉장고다.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문도 고장 났고, 소리도 시끄럽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 김치 냉장고를 버릴까 말까 고민했었다. 그 김치 냉장고에는 고추장이랑 작년 가을에 수확하여 신문지에 싸두었지만 썩고 있는 배추가 들어있다. 배추를 꺼내려고 열었다가 더 깊이 손을 넣어보았다. 뭔가 잡히고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난다. 익숙한 빵집의 비닐봉지가 나오고 그 안 작은 밤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 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내가 남편과 딸과 함께 우리 집, 지금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집이 아니라 남편과 딸과 함께 살던 집 뒷산에 가서 주운 밤이다. 우리는 집을 작은 산 아래 지었고, 그 산으로 자주 산책을 갔다. 그 산에는 꽤 큰 밤나무들이 있는데 주울 때마다 감탄하는 주먹만 한 밤들은 이미 발 빠른 분들의 몫이고 우리처럼 게으른 한량에게는 낙엽을 뒤져야 어쩌다 하나씩 발견하는 작은 밤이 돌아온다. 밤 주울 때는 얼마나 재밌다고. 막대기 하나 들고 낙엽을 쓱쓱 헤집다가 발견하기도 하고, 또 줍다 보면 보는 눈이 생겨서 뭔가 반짝거리는 느낌만으로 발견하기도 한다. 실제로 밤은 어두운 숲에서 보석처럼 빛이 난다. 줍는 재미가 있으니 정신없이 줍는다. 하지만 작은 밤을 까서 먹는 건 고생이다. 까다보면 손마디가 저려온다. 줍긴 주웠는데 까긴 힘들고, 까진 힘들어도 먹어보면 맛있고. 고민 끝에 그 맛있는 고생은 늘 엄마에게 전가한다. 엄마 인생이 그랬다. 뭔가 귀찮고 번거롭고 어려운 일은 늘 엄마가 떠안았다. 그 일조차 엄마는 기꺼이 감당했고 긍정적으로 소화했다. 엄마는 내가 넘긴 밤을 품에 안고 공주산 밤이라도 선물 받은 듯이 좋아했다. 먹기도 전에 얼마나 예쁜지 하면서 밤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엄마는 정말 손에도 눈이 달렸다. 엄마가 하도 감탄을 하는 통에 나는 무슨 대단한 효도라도 한 듯이 착각하곤 했다. 그 밤이 아직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엄마가 밤을 깔 수 없는, 아니 밤이 거기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병에 걸렸다.


그렇게 까기 싫었던 밤에 결국 내 손으로 돌아왔다. 인생이 이렇다. 돌고 돌아 나에게 오고, 싫은 걸 할 수 밖에 없고. 밤을 만지고 있자니 남편과 딸과 함께 밤 주으러 다녔던, 작년 가을 기분 좋은 바람이 불던 날들이 속에서 일렁거린다. 보고 싶다. 그립다. 그날들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밤을 삶는다. 워낙 작은 밤이어서 밤을 데치듯이 잠깐 삶는다. 찬물에 헹군다. 그래야 밤이 잘 까진다고 했던 것 같다. 밤을 깐다. 따뜻할 때는 껍질이 야들야들해서 잘 까진다. 하지만 금방 껍질이 굳는다. 엄마의 몸처럼 나에게 뻣뻣하게 굴기 싫어한다. 손목이 아프고 손마디가 저려온다. 나는 뭐든 대충 하는 게 싫다. 그래서 온 정성을 쏟고 완벽을 기하다가 꼭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엄마의 간병도 그렇게 되고 있다. 그래도 예쁘게 까서 엄마를 주려고 애쓴다. 이렇게 예쁜 밤을 까서 주면 왠지 그 정성에 감복해서 엄마가 좋아지고, 그런 일은 없다. 까다가 망친 것은 내 입에 털어 넣는다. 달다. 냉장고 바닥에서 깊이 숙성되었기 때문일까. 반 정도는 밤벌레가 죽어 나온다. 밤 속에 웅크린 채 죽어있다. 밤벌레가 언제 죽은 지는 모른다. 냉장고 속에 들어가면서 얼어서 죽은 건지 끓는 물에 죽은 건지. 어떻게 죽는 게 나을까. 어떤 죽음이 덜 고통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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