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지7
좁은 집에 살림이 자꾸 는다. 정말 필요한 것도 웬만해서는 안 사고 버티고 불편하게 살던 최고의 미니멀리스트 엄마 집에 복지 용구라고 불리는 물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엔 소소한 것들이었다. 혈압계, 핫팩, 족욕기, 지팡이에서 시작해서 잘 일어서지 못하면서 전동 침대가 들어왔고, 잘 걷지 못하면서 휠체어와 보행기가 들어왔다. 목욕탕에는 안전 손잡이와 목욕 의자, 미끄럼 방지매트가 깔렸고, 엄마가 다니는 동선 사방으로 안전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다. 이번에는 욕창 방지 매트리스와 욕창 방지 방석이다. 욕창이 생기고, 치료를 하기 위해 온 방문 간호사가 추천했다.
급여 명세서에 맨날 찍히는 장기요양보험이 이렇게 요긴할 줄 누가 알았겠나. 복지용구는 장기요양보험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1년 160만 원이 넘어가면 모두 자부담이다. 우리는 이미 한도초과를 한 지 오래고 생돈으로 사야 한다. 알아보니 괜찮은 걸로 사면 돈 백만 원이다. 부담이 된다. 동생이 엄마 치료비로 쓰라고 카드를 주고 갔지만, 매번 동생 카드로 쓰려니 그렇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방문 간호사가 아는 복지용구점에 중고가 있는지 알아봐 준다고 한다. 전화번호를 넘겨받아 사장님과 통화를 했다. 다행히 중고가 있으니 소독해서 가지고 온다고 한다. 처음에는 반값 정도 되는 40만 원을 불렀고, 내가 장기요양보험 지원을 못 받는다고 앓는 소리를 했더니 35만 원에 해준다고 했다. 내가 다시 30만 원에 안 될까요, 했더니 에이, 그럽시다 한다. 그리고 집에 왔는데…
어… 형이 왜 여기 있어?
영탁 노래,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도 아니고 아빠와 사장님이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아빠도 어어… 하더니 나 여기 살아, 한다. 작은 도시는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다. 어렸을 때 너 누구 딸이지, 하며 아는 척하는 어른들이 정말 싫고 불편했다. 이런 점에서 서울이 편할 때가 많다. 현관에 엉거주춤 서서 어쩌지 못하는 사장님에게 일단 들어오시라고 했다.
사장님이 휠체어에 얼굴이 퉁퉁 불어서 멍하니 앉아있는 엄마를 쳐다본다. 아니, 언제부터… 아빠는 뭐 꽤 됐지, 하면서 말을 얼버무린다. 일단 엄마의 사고를 모르는 걸 보면 친한 사이는 아니다. 이미 알만한 분들은 이미 다 알고, 돌아가면서 한 번씩 먹을 걸 보내주기도 하고 아빠가 밥 먹으러 나가서 봉투도 받아오곤 했다. 사실 복지용구 사장님은 이미 엄마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 전화로 문의했을 때 엄마의 병명부터 장기요양등급이 뭐고 장기요양의 지원으로 어떤 복지용구를 들였는지까지 다 알고 있었다. 방문 간호사에게 전해 들었는지 알았더니 전산으로 정보가 다 뜬다고 한다. 서로가 어색한 인사는 그렇게 하는 둥 마는 둥 마무리되고 사장님은 진짜 볼일, 가져온 매트리스를 꺼내서 바람을 넣고, 기계 장치를 설치한다. 기계 장치에 파란 불이 켜진다. 이게 원리는 간단해요. 바람을 차례로 넣었다 뺐다 하면서 체중을 분산시키는 거예요. 이렇게. 사장님이 보여주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희춘이 형이랑은 자주 만나요?
아니 거의 안 만나. 내가 뭐 나갈 수 있나.
사실 아빠는 자주 나간다. 매일 한 번씩은 밭에 가던 시장에 가던 나가고, 주말에 한 번은 친구들이랑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온다. 그 사이에 회 먹으러 친구들이랑 주문진도 다녀왔고. 그러면서 안 나간다고 하는 거 보면 뭔가 있나 보다. 누군가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사장님은 아빠에게 자꾸 말을 걸고 아빠는 말을 안 하려고 한다. 사람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아빠의 평소 모습 같지가 않다. 사장님과 무슨 안 좋은 일로 얽혀있거나 아니면 아프고 형편없는 엄마가 갑자기 아는 사람에게 노출되어 민망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과 최근 방문 간호사 외에 엄마를 누구에게 보인 적이 없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엄마의 병든 모습, 특히 치매와 유사하게 인지 능력이 매우 안 좋은데 누군가에 보이기가 싫다. 치매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고, 동정의 시선이 싫어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신체적인 병보다 정신적인 병에 훨씬 민감한 것 같다. 차라리 외상이었다면 문병 온다는 친척들을 극구 못 오게 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갑자 어색한 만남과 복지용구 설치가 끝났다. 카드 계산기를 꺼내시고 카드를 내밀었다. 20만 원이 찍혀 있다. 아니 30만 원… 하면서 사장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장님은 눈을 찡긋 감으시면서 그냥 사인하라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아니에요, 제값 받으세요. 했겠지만 나는 그냥 사인한다. 원래 가격은 80만 원, 중고라서 40만 원, 그리고 최종 20만 원이 됐다. 반값의 반값이 된 셈이다. 아빠는 사장님이 가고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가 있는 침대 매트리스에 앉아 엄마에게 말했다.
남 씨. 또 살림 장만했네. 이번에는 물침대야. 여기 누워봐.
누가 들으면 신혼 살림 장만한 줄 알겠다. 복지용품이 늘어날수록 엄마의 수명은 줄어드는 건지도 모르는데 아빠의 말은 해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