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말이 사람을 살렸다

엄마를 살라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지8

by 소요

아빠가 일하러 갔다. 아픈 엄마의 그 옆에 엄마를 간병하는 위태로운 나를 두고. 아빠는 각종 설비 막일 일을 한다. 엄마가 아프고 가게를 정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알음알음 들어오는 일을 한다. 이번에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친구 조 씨 아내 분이 혼자 사는 집에 욕실과 하수도 공사를 한다고 했다. 그날을 기억한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 집에 와 있었다. 같이 식탁에서 집에서 딴 앵두를 먹고 있을 때 아빠 전화기가 울렸다.


왜 또 그래… 죽으면 안 되지.

(조 씨 아저씨가 아빠더러 만나자고 한 모양이다)

지금 딸네 집에 와 있는데 내려가면 전화할게.


그리고 다음날 아빠는 조 씨 아저씨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았고 도망치듯 내려갔다.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가 그분이 죽겠다고 할 때마다 아빠가 만나 달래고 밥 사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했다고 한다. 그날 아빠와 만날 수 없자 조 씨 아저씨는 바로 자신을 죽였다. 조 씨 아저씨가 살아있을 때 공사를 하네 마네, 변덕을 부리곤 했다는데 이번 봄에 공사를 하게 됐다. 이젠 변덕을 부릴 조 씨 아저씨는 없다. 아빠가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삼일 째다. 네팔 일꾼도 한 명 사서 한다고 했다. 사실 아빠는 네팔 애라고, 했다.


아니, 왜 애가 아닐 텐데 애라고 해?

나는 네팔 일꾼을 얕잡아 보는 것 같아 못 참고 쏘아붙였다.

아니, 뭐. 젊은 애니까 애라고 하지.


가끔 볼 때는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었는데 막상 같이 살다 보니 거슬리는 것이 많다. 얼마 전 4월 16일에는 뉴스를 보면서 아빠가 도대체 뭘 더 진상규명한다는 거야,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좀 놀랐다. 하지만 이야기를 할라치면 길어지고, 얼굴 붉히고 할 것 같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엄마라는 큰 산이 있기에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뭐라 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빠가 네팔 사람과 일을 한다기에 그 네팔 사람과는 대화가 잘 되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묻지 않았다. 내가 묻기 시작하면 아빠는 신나서 이야기를 하긴 할 것이다. 네팔 일꾼을 어떻게 구하는지, 네팔 일꾼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네팔 일꾼이랑 뭘 먹고 뭘 좋아하는지 등등. 하지만 지금 나의 기분은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엄마가 좀 좋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엄마도 한 마디 하면 신나서 더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실 나는 이렇게 엄마와 단 둘이 남았을 때 두렵다. 아빠가 길게 집을 비우면 나는 긴장을 한다. 여러 번 경험했다. 내가 엄마를 혼자 옮기다가 넘어질까 봐, 엄마의 육중한 무게가 나를 덮칠까 봐, 놀라거나 화나서 엄마에게 험한 말, 아니 욕을 할까 봐, 그러다 실수로 아니면 홧김에 엄마를 죽일까 봐.


엄마, 아빠 어디 갔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제대로 대답한 적은 없다.

고스톱 치러 갔어.

엥? 고스톱? 웬 고스톱?

고스톱 치러 가면 말릴 수가 없어.


너무 엉뚱한 말이어서 헛웃음이 났다. 엉뚱한 말을 해도 보통 저 말이 어디에서 왔구나, 를 아는데 고스톱은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빠가 고스톱을 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로 아빠는 고스톱을 치지 않는다. 친구들이 모여서 칠 때도 구경만 한다고 했다. 친구들과 고스톱 치다가 괜히 감정 상하고 다투게 될까 봐 아예 화투를 만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얘기를 엄마에게 듣고 아빠는 나름 원칙이 있구나, 저래서 친구 관계가 좋고, 많은 친구들이 아빠를 찾는구나, 싶었다. 사실 고스톱은 엄마가 좀 쳤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서 칠 때도 엄마가 참전했고, 한때 동네에서 고스톱이 유행할 때 고스톱으로 딴 돈으로 오징어를 사들고 오던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 엄마는 자기 얘기를 아빠에게 뒤집어 씌운 걸까. 아니면 나한테도 말 못 했을 뿐 아빠도 고스톱 치던 때가 있었나. 어쨌든 엄마가 엉뚱하게 고스톱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나도 엄마도 별일 없이 무사하다. 아무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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