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살리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지10
어, 어디 갔지? 너 여기 있던 우유곽 못 봤어?
봤다. 어제 벼르고 벼르던 세탁실 청소를 하면서 우유곽 2개를 봤다. 썩은 물이 들어 있어서 가차없이 쏟아버렸다.
내가 버렸는데…왜?
그거 쌀뜨물 저기(아마도 발효)한 건데…
그거 뭐하려고?
식물 주려고.
식물? 식물이라면 우리집에 한 개 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 안방 문갑 위에 있었는데, 며칠 전 안방 청소를 하면서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 집에 온 이후로 내가 안방을 쓰고 있다. 전동 침대를 거실에 놓았고, 아빠도 침대 옆에 자고 안방은 내 차지가 되었다. 집에 온 지 100일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그 식물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물도 준 적이 없다. 뭐 알아서 살겠지, 죽어도 상관없고 생각했다. 베란다에 내놓은 것은 안방 문갑에 올라가 있는 모양이 안 어울려서다. 문갑에 올라가 있기에는 너무 크고 화분도 볼품없고 식물 모양도 내 눈에는 예뻐 보이지 않았다. 안방을 사용하면서 계속 눈에 거슬렸는데 치우고 싶었는데 엄동설한에 내놓을 수도 없고, 벼르고 벼르다가 날이 따뜻할 때 내다 놓았다. 내 딴에는 신경써서 날을 잡은 것이다.
아빠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아빠도 이름은 모르나 보다. 분명한 건 엄마나 아빠가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샀다면 이름을 알았겠지. 엄마 아빠는 사람만 좋아하지, 동물이든 식물이든 관심 가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 얻거나 누가 버린 것을 주워 왔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쌀뜨물 발효액까지 만들어 줄 정도로 이름 모르는 식물에 애정을 쏟는 아빠의 새로워보였다. 아마도 일단 집에 들어온 생명에는 정성을 쏟는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아마 특별한 계획없이 생긴 우리 삼남매도 그렇게 키웠을 것이다. 아빠는 가차없이 쌀뜨물을 버린 나에게 불평 한 마디 없이 다시 쌀뜨물을 받아서 깔때기를 사용해서 우유곽에 붓고 세탁실에 두었다. 쌀뜨물을 발효시켜서 식물에 주면 잎에 윤이 난다고 했다.
아이고, 식물 죽었네.
아니, 왜?
나가보니 식물의 잎 끝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다.
직사광선 받아서 죽은 거 같아.
아빠는 꽤 상심한 얼굴로 식물 잎을 만지작거렸다. 아빠가 이렇게 식물에 애정을 쏟고 있는지 몰랐다. 왜 죽었을까? 아니면 죽어갈까? 우리집 베란다는 엄마가 자랑하는 남향이다. 볕이 쨍하게 든다. 안방에만 있다가 갑자기 베란다로 나가면서 오락가락한 날씨에 적응을 못했을 수도 있고, 저 식물 자체가 음지 식물이어서 그럴 수 있다. 아빠는 최선을 다하고, 나도 나름 애정을 베풀었지만 우리는 식물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다. 정성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
집에 아픈 사람,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는 엄마가 있어서 그런가 이름도 모르는 식물의 죽음이 나에게도 큰 사건으로 다가온다.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든다. 이름 모를 식물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아빠의 쌀뜨물이 발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