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먹고살 궁리는 한다

엄마는 많이 아프고 나는 [먹는다]

by 소요

집 앞에 3.8 5일 장이 선다. 3.8 5일 장이라는 것은 3, 8, 13, 18, 23, 28 이렇게 3과 8로 끝나는 날 장이 열려 5일마다 장이 선다는 의미이다. 엄마 집에 왔을 때는 겨울이었고 장날이라고 나가봤자 특별히 살 만한 것이 없었다. 봄이 되면서 장에도 봄이 왔다. 초록의 나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장에도 활력이 생겼다. 냉이부터 쑥, 달래, 미나리, 돌나물, 두릅, 민들레는 뭐 마트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흔한 나물이니까 평소 못 보던 나물들에 눈길이 간다. 생취나물, 부지깽이, 명이나물, 가죽나무순, 옻나무순, 엄나무순, 오가피순, 다래순, 온갖 순들은 이름은 겨우 들어봤어도 직접 본 적도 먹어 본 적도 거의 없다. 아무래도 쓴맛 때문에 대중적으로 사랑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참 나물 구경을 하다가 고민 끝에 두릅 만 원, 오가피순 오천 원 어치를 샀다. 두릅이야 봄에 한두 번씩은 먹어봤지만 오가피순은 나에게도 처음이다.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고 충동적으로 덥석 샀다. 나물 파는 할머니가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오가피순 좋아요, 산삼보다 더 좋아요, 하니까 아주머니가 써서 싫다고 했고 그 말에 갑자기 꽂혀서 샀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고, 쓴 게 약이니까 괜히 사고 싶어졌다. 혹시 아나. 오가피순 먹고 엄마 정신이 번쩍 들지.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늘 그런 상상을 한다. 집에 와서 오가피순 나물 레시피를 검색하고 있는데 아빠가 묻는다. 아니 혼잣말을 한다.


라면 어딨 지?

라면은 왜?


왜긴 왜겠어, 먹으려고 그러겠지. 아빠는 대답도 안 하고 계속 찬장을 뒤졌고 기어이 라면 하나를 찾아냈다. 사실 라면 한 묶음이 있었는데 아빠가 없을 때 내가 하나씩 먹으면서 겨우 한 개만 남은 것이다. 아빠는 곧바로 라면을 끓인다. 아니 나물 해주려고 기껏 사 왔는데 라면을 끓이네. 한 소리 하려다가 그냥 끓이게 둔다. 아빠라고 맨날 국에 나물 반찬만 먹고 싶겠나. 돌이켜 생각하니 아빠가 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엄마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허구한 날 국만 먹고 있으니 싫증도 나겠다 싶다. 지금 우리의 식단은 무조건 아픈 엄마에게 맞춰져 있지만 어쩌다 한 번은 각자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아빠는 라면을 끓이고, 나는 오가피순을 데친다. 나도 오가피순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렇데 대놓고 쓴 나물을 처음이다. 쓰디쓴 나물은 엄마 것이다. 나는 뭘 먹을 거냐면 아빠 몰라 초콜릿 과자를 먹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장롱에 숨겨두고 몰래 꺼내 먹고 있다. 아빠가 과자를 좋아하는데 당뇨가 있어서 숨어서 먹어야 한다. 엄마가 아파도 각자 다 먹고살 궁리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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