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많이 아프고 나는 [걷는다]
언제, 뭐 할 때 행복해?
친구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었)다. 묻는 이유는 내가 언제 행복한지, 그것이 얼마나 섬세하고 풍요로운지 자랑하고 싶은데 다짜고짜 내 자랑을 먼저 늘어놓으면 그러니까 먼저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날 좋은 날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가장 좋다.
특히 엄마와 그랬다. 둘이 관심사와 감수성이 비슷해서 코드가 잘 맞아서 출퇴근하면서 엄마랑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통화하고 그랬다. 친구들은 엄마와 매일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냐고 궁금해하곤 했다. 그러게 우리가 자주 나누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스몰토크인데, 별 거 아니고 사소한 것들이다.
뭘 먹었는지
- 엄마와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먹는 거였다. 우리는 입맛이 비슷한데 원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양념을 강하게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좋은 재료 구하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심혈을 기울였고, 그 재료들을 잘 살려낼 수 있는 레시피를 어디서 배우거나 스스로 개발하여 서로 공유하곤 했다.
오늘 날씨는 어떤지
-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일기예보에서 말해주지 않는 날씨와 자연-햇빛, 바람, 공기, 습도 등 미세한 변화에 대해서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 보통 꽃이 피면 봄이라고 하지만, 엄마와 나는 언 땅이 녹아서 폭신해지는 때를 봄의 시작으로 봤다. 그건 흙길을 걸어봐야 알 수 있는 계절 감각이다.
집에 해가 얼마나 드는지
- 엄마집과 우리 집 모두 남향집이어서 겨울에 해가 거실 어느 정도 깊이 들어왔다가 빠지는지 깊이와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공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 삼복더위 지나고 절기로 입추가 되면, 다들 덥다고 난리여도 달라진 공기를 피부로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와 나는 둘 다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아서 남들보다 달라진 공기의 온도를 더 빨리 느낀다.
해 질 녘 노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 시각장애인인 엄마는 노을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보이지 않아도 다 보인다고 했다.
달은 얼마나 차고 기울었는지
- 우리는 달을 차고 기우는 것으로 시간을 이해하는 음력인이다.
누구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 좋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가끔 흉도 보고 서로 욕도 해주고 그랬다. 둘 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남을 미워하거나 흉보는 일을 극도로 꺼려왔지만, 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착하게 살아봤자 사람들이 만만하게만 보더라. 우리도 욕도 좀 하고 살자, 로 바뀐 지 얼마 안 됐다.
각자 곁에 있는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 엄마는 나이 들어서도 아빠와 알콩달콩, 아웅다웅하는 사이였고, 나에게 아빠와의 애정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남편보다는 딸 이야기를 많이 했다. 딸 커가는 이야기.
지금 내가 가장 슬픈 건 엄마가 아픈 것보다는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엄마 곁에 24시간 붙어있지만 우리의 대화는 예전과 달리 굉장히 기능적인 대화로 축소되어 있다. 그것마저도 대화라기보다 일방적이다. 매일 할 이야기들이 매일 입고는 되는데 출고가 되지 못하고 있어서 속이 탄다. 다시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누지 못할까 봐 두렵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충분히 이야기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눴다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더 오래,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지금 내 소원은 엄마가 예전처럼 완전하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이라도 엄마와 예전처럼 작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 것이다.
요즘 나는 틈만 나면 걷는다. 걷기는 간병에 지쳐가는 나를 위한 명상이자 죽음에 가까이 가는 엄마를 위한 기도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1시간 거리도 걷는다. 원래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엄마가 걷지 못하게 된 후 나는 더 의식적으로 걸으려고 한다. 그토록 걷기 좋아하던 엄마 대신 걷는다고 생각하면서 걷는다.
엄마는 얼마나 걷고 싶을까
내 발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 일인가
걷다 보면 스쳐가는 많은 풍경들
걷다 보면 들고나는 많은 생각들
사람들아,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걷자
사랑하는 사람과 걷자
예전에는 친구들에게 먼저 언제 행복한지 물었지만, 지금은 그냥 내 생각부터 말하고 심지어 강요하기도 한다.
지금 당장 가족과 친구와 많이 걷고 많이 대화를 나누라고.
어느 날 갑자기 걷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