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많이 아프고 나는 [동생을 먹인다]
오늘 퇴근하고 갈까 하는데…
동생이 집에 온다고 한다.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된다. 엄마가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잠만 자고 있으니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고 갑자기 내가 뭔데, 동생이 엄마 보러 온다는데 오라 마라 하나 싶다.
그래, 오면 좋지. 그래도 바쁘면 무리해서 오지는 말고.
엄마를 전적으로 돌보는 것은 아빠와 내가 하고, 가끔 동생이 온다. 동생보다는 자주 남편과 딸이 온다. 얼마 전까지는 동생이 주말마다 왔었다. 그런데 엄마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자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지 말라고 했다. 엄마와 같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나,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하나, 엄마가 안 좋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이외에 딱히 알 일이 없는데 식구 수대로 다 모일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동생을 필수 간병 인력에서 제외한 것이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동생이 오면 내가 면목이 없다. 엄마 주간병인으로 있으면서 엄마 잘 보살펴서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맨날 엄마와 지내면서 느끼는 상실과 절망을 동생까지 느끼고 싶게 만들고 싶지가 않다. 밤 9시가 넘도록 안 오길래 안 오는 줄 알고 부담감을 내려놓으려던 찰나 동생이 왔다. 한우 스지 한 박스를 사들고서.
밥 먹었어?
엄마를 빙의했나. 동생에게 하는 인사는 늘 밥이다. 엄마는 입 짧은 동생의 먹는 것을 그렇게 신경 썼다. 아무거나 잘 먹지도, 좋아하는 것도 많이 먹지도 않는 동생에게 뭐 하나라도 먹이려고 기를 쓰고, 동생이 뭘 좀 잘 먹는다고 하면 그걸 그렇게 사다가 나르고, 동생에게 보내곤 했었다. 가끔 동생에게는 산 더덕이나 두릅, 송이버섯 이런 귀한 것을 사서 보내면서 나한테는 안 보내줄 때 서운하기도 했었다. 나는 엄마에게 동생이 애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잘 먹는데 그렇게 자꾸 애 밥 떠 먹이듯 하지 말라고 엄마를 말린 적도 있었다. 엄마의 평생 남은 과업이 동생 잘 먹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생이 사들고 온 한우 스지는 나에게는 낯선 식재료다. 회사 복지 쇼핑몰에서 보이길래 사봤다고 한다. 보통은 내가 사 오라고 하는 것만 사가지고 오는데 부탁도 안 한 것을 사 왔다면 어떻게 먹는지 아니까 사 왔겠지. 한우 스지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나도 몰라. 그냥 수육처럼 먹는 건가 보던데? 헐,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그래도 사들고 온 걸 어떡하나 싶어서 한우 스지 요리법을 보았다. 스지는 일본식 표현인 것 같고, 한우 스지는 사태살에 붙어있는 힘줄과 근육 부위를 말하는 거였다. 단백질과 콜라겐이 많이 들어 보양식으로 많이 먹는가 보다. 일단 핏물을 빼려고 찬물에 담가 두었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한우 스지 한번 데쳐내고 양파, 대파 뿌리, 무 한 조각, 월계수 잎, 통후추를 넣고 푹 삶는다. 수육 찍어먹을 마늘 참기름장을 만들었다. 동생이 좋아하는 땅콩을 간장에 조려놓고 또 동생이 좋아하는 파김치, 그리고 입 짧은 동생도 극찬을 하는 엄마의 김장 김치 내놓았다. 아, 동생이 절대 안 먹을 것 같은 오가피순 나물, 그리고 삶아놓은 스지 한 덩이를 잘라서 접시를 내밀었다. 입 짧은 동생인데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이건 필시 맛있다는 얘기다. 맛 없으면 절대 손 안 대는 애다. 꽃등심도 몇 점 먹으면 젓가락을 놓는 애가 수육 한 접시를 해치우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더 놀라운 건 쓰디쓴 오가피순 나물도 집어 먹더란 말이지.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엄마가 없으니까 내가 대신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 나는 자고 있는 엄마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 내가 엄마 아들 잘 먹이고 있으니까 빨리 일어나서 나한테 돈 내요.
병으로 인해 엄마라는 역할에서 해방되어 있는 엄마에게 부채감을 주어서라도 일어나게 하고 싶다. 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엄마의 잠꼬대가 우연히 타이밍이 맞은 건지 응, 한다. 엄마한테 받을 돈 생겼다. 엄마가 빨리 나아야 돈을 받을 수 있다. 엄마가 좋아지지 않았지만 오늘만은 동생에게 덜 미안하다. 동생 잘 먹이고 엄마한테 돈 많이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