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많이 아프고 나는 [집을 바꾼다]
집이 뭐가 달라졌네.
오랜만에 집에 온 동생이 말했다. 달라지긴 달라졌는데 뭐가 달라졌는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면서 집을 뜯어본다. 깨끗해지고 넓어졌다고 했다. 엄마 집에 손을 좀 댔다. 하드웨어나 가구 이런 건 전혀 아니고 그럴 싱황이나 여력도 없고 어찌보면 별 거 없지만 큰 변화이기도 하다. 그전에는 순도 100% 엄마 집이었다. 시각장애인인 엄마의 편의와 취향(이랄 것도 없지만 또 엄마 만의 질서)인 집이었다면, 이제는 중심에 내가 있다.
어쩌다 엄마 간병하면서 집안 살림을 하고 있는 나의 편의와 취향이 우선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그렇게 되었다. 엄마 집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체리색 몰딩과 포인트 벽지를 다 뜯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취향이래봤자 마음에 안 드는 화분을 베란다에 내다 놓고, 내가 좋아하는 그릇이나 침구를 꺼내서 쓰는 정도겠지만, 그래도 둔한 동생이 느낄 정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디 간 거지? 혹시 누가 갖다 버렸나?
웬만해서는 엄마 집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작년 엄마가 처음 퇴원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자기 속옷이 제자리에 없다고 짜증을 냈다.엄마가 아프니까 좋은 기억만 남은 건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엄마가 나에게 짜증을 낸 것은 처음이었다. 좀처럼 자식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거였더라도 엄마는 평소와 좀 달랐고, 사실 이때부터 엄마의 뇌에 뭔가 이상이 생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헌 속옷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엄마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 집 청소를 하면서 늘어난 속옷을 버리고 싶긴 했다. 하지만 엄마가 싫어할 것 같아서 버리지 않았다.
가끔 집에 다니러 와서도 엄마 물건에 손을 대거나 청소를 한 적도 없다. 엄마의 살림은 내가 보면 태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저분, 너저분, 무질서, 혼돈 그 자체지만 엄마만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 마음에 안 들어도, 불편해도 엄마가 주인이고 나는 머물다 갈 손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은 거라도 시각장애인인 엄마에게 혼란과 불편을 주기 때문에 더더욱 만지지 않는다.엄마 간병하러 와서도 엄마 살림이 불편하지만 엄마가 언제고 일어나 살림을 할 수 있도록 건드리지 않았다.
처음에 엄마 집에 왔을 때는 한 달을 예상하고 왔다. 한 달 열심히 하면 엄마가 아빠의 부축을 받아서 걷기만 한다면 집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점점 안 좋아지고, 엄마의 기대 간병기간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제 나는 머무는 게 아니라 살고 있는 수준이 되면서 엄마의 살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엄마 집에서 나의 편의와 취향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청소다. 여기서 청소는 단순히 보이는 곳을 쓸고 닦는 평면적 청소가 아니라 안 보이는 깊숙한 곳까지 손을 뻗어서 버릴 것들은 버리는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청소를 말한다. 판도라 상자와 같아서 정말 열고 싶지 않았던 베란다 창고, 세탁실 창고, 냉장고 깊숙한 곳, 그리고 장롱까지 하나씩 건드리기 시작했다. 잘 버리지 못하는 나지만, 엄마 아빠는 나보다 더 지독하게 쌓아두고 있었다. 옛날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들, 앞으로 절대 보지 않을 책들과 건강제품 카탈로그, 절대 입을 일 없는 옷가지들, 절대 쓸 일 없는 주방용품들, 절대 켜지 않을 컴퓨터까지 다 갖다 버렸다. 여기서 옛날 컴퓨터는 아빠의 반대로 버리지는 못하고 일단 문 밖에 내다 놓는 것까지만 했다. 숙변을 다 비운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엄마가 깨어나면 혼이 날 지도 모른다.
왜 버렸냐고! 왜 바꿨냐고! 내 살림에 왜 손댔냐고!
혼이 나도 좋으니 엄마가 벌떡 일어나면 좋겠다.
이렇게 뭘 좀 갖다 버리고, 잠시 내 편의에 따라 집을 좀 바꾸고 임시로 내 취향을 입혔다고 해도 엄마 집은 내 집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떠난 이후 엄마 집은 내 집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엄마 집을 내 집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다시 엄마의 편의와 취향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 집은 엄마 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