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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Jun 10. 2024

잘 나가다가 도랑에 빠졌다

좀 못하면 어떠냐는 마음

주말에 남편과 딸이 온다. 군대 간 애인 면회 오듯 나를 만나러 온다. 남편과 딸이 온다고 하면 나는 우리 가족이 함께 가고 싶은 곳이나 함께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함께 먹고 싶은 것을 미리 생각해 둔다.

이번주엔 볼링이다.  


우리 볼링 치러 갈까?

응, 좋아.

볼링? 어디로?

여기 2층애 주말 밤에만 하는 볼링장이 있어. 가보자.


엄마 집은 30년이 넘은 주상복합아파트다. 1,2층이 상가인데, 얼마  2층에 볼링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주말 밤에만 한다. 아마도 볼링이 사양산업이 되었고, 이 작은 도시에 볼링을 치는 인구도 많지 않을 테고, 그나마도 볼링을 치는 사람이 있다면 주말 저녁에  확률이 높으니까 주말 밤에만 한시적으로 여는  아닐까, 하는 게 합리적 추측이다. 허탕 치기 싫어서 금요일 밤에 사전답사를 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볼링장 특유의 소리-볼링공이 레인을 드륵드륵, 하고 굴러가다가 쾅, 하고 스핀 넘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 하네.


볼링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대학 1학년때 교양수업으로 볼링을 들었다. 나는 웬만한 구기종목은  못하지만 볼링만은  잘했다. 나는 파워 볼링을 구사한다. 파워볼링은 공을 에임스폿에 , 하고 떨어뜨려서  힘으로 스핀을 힘차게 넘어뜨리는 나만의 기법을 말한다. 스페어 처리는 어려워도 스트라이크를 곧잘 했고, 3 연속 스트라이크, 이름이 특이해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터키 했었다.


세월이 흘러 자세도 잊어버렸을까 걱정을 했는데, 역시 자전거처럼 한번 배운 자세는 몸에 새겨져 있었다. 처음엔  던졌다. 스트라이크도 하고 볼링  한다는 사람도 어렵다는 스페어 처리도 하고. 남편도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프레임이 계속될수록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자세무너졌다. 힘이 빠져 내가 놓기도 전에 공이 떨어졌고,  없이 굴러가다가 결국 도랑(거터) 지기 시작했다.


볼링이 처음인 딸은   도랑에 빠뜨리더니  공를 레인으로 끌어올렸고, 시간이 갈수록 요령을 터득해서  많은 핀을 쓰러뜨렸다. 에게는 가장 작은 8파운드짜리 볼링공도 무거워서  손으로 공을 굴렸는데,  자세로도  좋은 점수를 냈다. 딸과 나의 골든 크로스가 일어났고 결국 나는 꼴찌가 되었다.


도랑에 빠져 버린 볼링공은 수렁에 빠진 지금 내 모습 같았다. 처음에는 의욕이 충만하게 엄마 간병을 하겠다고 엄마 집으로 왔다. 엄마가 늘어지지 않게 엄마의 생활, 재활 루틴을 만들고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 누구 한 사람이 희생해서는 안된다, 혼자는 안 된다, 는 철학으로 가족 간의 역할 분담 및 휴식 제도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번씩 번갈아 나가서 개인 시간을 갖는다. 나름 탄탄한 간병체계라고 생각했고 뿌듯했다. 하지만 엄마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어렵게 만든 루틴이 무너지고 간병 체계도 뒤죽박죽 되었다. 무엇보다 나의 정신상태는 자꾸 수렁에 빠지고 있다.


다음엔 8파운드짜리 공으로 해봐.

남편이 말했다.

힘들면 엄마도 나처럼 두 손으로 해봐.

딸도 한 마디 거든다.


맞다. 힘들면 무게를 줄여볼  있고,  손으로 굴려도 된다. 볼링도, 간병도 마찬가지 체력과 상황에 맞춰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볼링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남들( 포함) 앞에서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못하는  아예  고 싶다. 하지만 딸이 다음에도 하자고 한다. 주말에만 만나는 딸이 재밌다는데 어쩌나. 못해도 해야지. 하다 보면 잘할 수도 있고, 또  못하면  어때. 그냥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역시 볼링도 간병도 마찬가지, 잘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에서 의미를 찾아야겠다. 래, 못해도 딸이 가자니까,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니까 볼링을 치러 가자.(그래도 대학 때처럼 파워볼링하고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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