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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11. 2024

누가 누가 잘 나가나

나갈 핑계를 찾아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엄마 집엔 커피머신은커녕 커피포트 하나 없어서 집에서  쓰는 것을 가져왔다. 처음엔 친구가 챙겨 드립커피백으로 마시다가 요즘엔 대용량으로 사둔 커피를 타서 마신다. 엄마 집에 내 마음에 드는 머그컵도 없어서 집에서 머그컵도 하나 가져왔다. 유럽 출장 갔을  사온, 아끼는 법랑 머그컵을 모셔왔다. 맛으로 마시는 커피가 아니다. 맛도 없고. 그냥 의식 같은 거다. 몸은 깨서 일어나 움직이고 있으나, 여전히 이불속에서 나오않는 정신을 부르는 의식이다. 그래야만 엄마와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어디가?

커피 마시러!


이런  공황이라는 건가? 갑자기 숨이 막혀 죽을  같을 때가 있다.  오래되고 작은 아파트가, 낮은 천장이, 체리색 몰딩이, 꽃무늬 벽지가,  공간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 있을 , 가슴이 답답하고 산소가 부족때가 있다. 나갈 타이밍이 아니지만 나가야 한다. 엄마 집에서 탈출, 엄마로부터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쓰레빠 질질 끌고  앞에 컴포즈 커피로 간다.  앞에 스타벅스가 없어서 다행이다. 스타벅스가 있었으면  그래도 백수인데 거덜 났을 다. 천천히 걸으며 집안과는 사뭇 다른 바깥공기를 힘껏 들이마신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진 공기를 느끼고, 낯선 사람들을 대여섯 지나치면 노란색 간판이 보인다. 문을 열면 익숙한 커피 냄새가 난다. 매끈한 키오스크를 능숙하게 터치해서 주문을 면, 부부로 추정되는 남녀 주인  남자가 커피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 그게 무슨 볼거리라고 메뉴판, 포스터 같은 것을 자세히 뜯어 보고 있으면 커피 나왔습니다, 하고 노란색 컵이 나에게 온다. 뜨거운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면서 까만 뚜껑을 조심스럽게 고 잠시

서서 커피를  모금 들이킨다. 뜨거운 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    같다. 이제 숨이 쉬어진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 절실한   누군가와의 물리적 거리 두기다. 나에게 최초의 ‘누군가' 이었던 거 같고, 이번엔 늙고 병들어 아픈 엄마다. 돌봄은 어떤 육체적인 노동 이전에 누군가와 24시간 같이 붙어 지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힘들다. 누군가가 전적으로 나에게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을 때,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버겁다. 그래서 독박은 위험하다. 최소 백업 가능한 사람이 필요하고, 교대를 통해서 누군가와 떨어져 있는 시간 확보가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친구들에게 함께 간병해줄 사람이 없다면 직접 간병하지말라고 말릴 것이다. 혼자는 위험하다. 다행히 나에겐 백업해줄 사람이 있다. 육아할 때는 남편이, 지금은 아빠가 있다. 아빠가 없다면 나는 엄마를 간병할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행히 나는 나갈  있다. 가능할 때마다 나간다. 나갈 궁리를 하고, 나갈 시간을 찾는다. 엄마가 낮잠 자는 시간, 엄마가 잠 드는 시간에 아빠와 나 둘 중에 하나는 나간다. 주말에 남편과 딸이 나가고, 가까이 사는 친척 언니 오빠가  사준다고 하면 나간다. 지난주에는 장어를 얻어먹었고, 이번주에는 막국수를 얻어먹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도 얻어먹었다. 어찌어찌  나가면 베란다라도 나간다.  나가면 창문이라도 활짝 열어놓고  멀리 구름 지나는 거라도 바라본다. 내가 나가면 아빠가 엄마를 돌보고, 아빠가 나가면 내가 엄마를 돌본다.


아빠는 매일 새벽에 밭에 간다. 밭에 가서  시간 정도 일하다 온다. 밭에   많아? 물어보면   없다고 한다.   없는데 매일 나간다. 나가서 이라도 뽑으러 가는 것이다. 애 볼래? 밭 맬래? 하면 밭맨다는 처럼.


아빠는 매주 일요일 점심에도 나간다. 매주 친구들과 밥을 먹는다. 초등학교 동창생인데 돌아가면서 밥을 사는 모임이라고 한다. 지난번에는 생일을 맞은 강병주 씨가 사는 갈비를 먹었고, 이번주에는 김행자 씨가  오리백숙을 먹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격주 모임이었던 거 같은데, 갑자기 매주 모임이 되었다. 모임 많은 아빠가 처음엔 엄마 때문에 기분도 안 나고, 나에게 미안했는지 아무리 전화가 와도  나간다고 했었다. 그러다 한번 나가더니 이제는 매주 나가고 나가면 들어오는 시간도 점점 늦어진다. 나도 나갈 거니까 나가지 말라고는 못하고, 너무 오래 혼자 있기는 싫고, 그래서 주말에 남편이 오면 아빠가  때까지 같이 어 달라고 부탁한다.


요즘 아빠와 나는 누가 누가  나가나, 경쟁을 하는  같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갈 수는 없고, 서로 먼저 확보된 시간은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빠가 새벽에 밭에 나가는 것은 우선순위다.


그런데 무슨 심보인지 나도 새벽에 나가고 싶어졌다. 여름이 와서 그렇다. 작년 여름남편과 나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기 위해 시원하고 사람이 없는 새벽에 나가서 걸었.  좋았던 시간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나가고 싶은데 아빠가 선점한 시간이라 나갈 수 없고,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이다. 여명의 새벽, 시원하고 사람이 없는 새벽에 나가서 뛰고 싶다. 러닝화도 갖다 놓았다. 어떻게 새벽에 나가지? 지금까지 생각한 방법은 새벽에 비가 오는 것이다. 비가 오면 아빠는 밭에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비가 오는 새벽 비를 맞으며 뛰는 상상을 한다. 어릴  그랬듯이 비에 흠뻑 젖어서 미친년처럼 뛰어다니면 기분 좋을  같다. 비야 내려다오. 새벽에 내려다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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