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겠다
초인종이 울렸다. 집에 초인종이 울리는 일이 별로 없어서 깜짝 놀랐다. 시골식으로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서 있다. 번짓수를 잘못 찾았거나 영업하러 오신 거라고 생각했다.
저 아래 선미 화장품 아시죠? 거기서 이거 엄마가 좋아하신다고 갖다 드리라고.
블루베리, 딸기, 사과, 복숭아 맛, 떠먹는 요거트가 종류별로 가득 담긴 봉지가 내 품에 안겨주었다. 엄마 냉장고에서 자주 봤던 그거다. 하지만 선미 화장품 아줌마는 틀렸다. 엄마는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아빠가 좋아해서 냉장고에 쟁여두었을 것이다.
역시나 아빠가 해맑은 얼굴로 딸기맛을 골라 작은 숟가락으로 아이처럼 요거트 용기를 긁어먹고 있는데 아빠 전화가 울렸다. 다 먹는 요거트 용기를 싱크대에 던져두고 경비실에 가서 작은 택배 상자를 들고 왔다. 보통 택배는 나나 남동생이 주문한다. 오늘은 택배 받을 일이 없었는데, 무슨 택배가 왔나 궁금했다. 아빠는 작은 택배 상자를 식탁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뜯고 있다:
그거 뭐야?
명란젓일걸.
샀어?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명란젓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니. 누가 보내준 거야.
누가?
황우석이 친구가 보낸 거야.
엥? 황우석? 줄기세포 그 황우석? 근데 황우석이랑 명란젓이랑 무슨 상관이야?
아니 이거 보내준 친구가 황우석이랑 친구라고.
아빠의 이런 화법 질색이다. 이번에 같이 살면서 알았는데 아빠는 말할 때 맥락과 상관없는 자기만 아는 이상한 설명을 덧붙여 더 아리송하게 만들곤 한다. 이빠 친구를 내 알바 아니지만 명란젓을 보내주신 분이니 친절하게 추측해 보자면 그 친구분이 황우석 교수가 한참 잘 나갈 때, 동물 복제로 국빈급 대접 받을 때 꽤 친한 척을 했거나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아빠랑 엄마는 오징어젓갈이나 낙지젓갈은 좋아하지만, 명란젓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명란젓에 환장하는 내가 야금야금 꺼내먹고 있다.
감사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황우석 친구 아저씨.
점심때가 다 되어 누가 밥 사준다고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갑자기 점심 먹으러 나간 아빠가 쌀가마를 어깨에 지고 들어왔다.
웬 쌀이야?
홍춘식이가 줬어.
아니 쌀을 주는 친구라니. 아빠가 지금까지 받아온 것 중에 제일 신박하다. 홍춘식 씨는 지난번엔 제주도에서 사 온 갈치와 돔을 주기도 했던 아빠 친구다. 저녁밥을 먹고 치우고 있는데, 오늘따라 바쁜 아빠 전화가 또 울린다.
응 밥 먹었지.
새 쌀로 밥 해 먹었냐고?
아니 아직. 먹던 거 다 먹고 뜯어야지.
아 먹던 건 떡 해 먹고, 새 쌀로 밥 해 먹으라고?
그러고 싶은데, 방앗간에 가서 떡갈 돈이 없어.
아빠 특유의 할배식 유머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절대 안 웃어주는 유머에 아빠와 홍춘식 씨가 낄낄거린다. 뭐 하긴 쌀 가마니를 주는 친구니까 웃어주기도 잘 웃어주겠지. 아빠가 친구에게 얻어온 쌀로 오늘 밥을 했다. 뭐 엄청 큰 차이는 없지만 밥 먹을 때 아저씨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아빠는 저녁 먹고 꼭 우유를 사러 시장에 간다. 아빠가 우유 + 우유가 아닌 뭘 하나 더 들고 와서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거 뭐야?
열무김치
열무김치?
응, 윤수 엄마가 줬어.
윤수네는 시장에서 가장 큰 슈퍼를 한다. 바로 앞에 편의점이 생겼는데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윤수네는 기본 생필품부터 과일, 야채, 그리고 반찬까지 만들어서 판다. 우유 사러 갔더니 윤수 엄마가 가게 앞에서 열무김치를 담그고 있더란다. 그걸 한 봉지 담아준 것이다. 같은 우유가 편의점보다 비싸다던데, 그 사실을 알고도 아빠는 윤수네서 우유를 사는데 그 결과가 열무김치인가, 싶었다. 윤수네 열무김치는 냉장고에서 익어가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니 잘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공짜로 먹고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고, 우리는
넙죽 넙죽 잘도 받아먹고 있다.
엄마, 아빠는 평소에도 이렇게 살았던 것 같고,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으니 마누라 치마폭에 싸여 지낸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던 아빠가 딱해 보여 떡 하나라도 더 들려 보내는 것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앉아서 얻어먹을 수 있는 건 그만큼 아빠 엄마도 많이 베풀었기 때문일 거다. 보고 배운 게 무섭다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었던 내가 아이를 낳고는 엄마, 아빠처럼 살고, 그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그런 곳을 찾아가 살았던 적이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나는 폭망 했다.(그 이야기는 한번 꺼내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해서 다음 기회에 따로 하겠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오래된 친구들과 이웃사촌들과 어울려서 서로 나눠먹고, 어려울 때 의지하고, 서로 덕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동생이 엄마 쓰러지고 집에서 요양하기 위해 좀 큰 집으로 이사가자고 말했을 때 엄마, 아빠 모두 안된다며 펄쩍 뛰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거겠지. 자식 다 키운 노인들에게는 좋은 삶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산다. 비슷하게 살아보려다 이미 실패를 맛보기도 했고 너무 가깝고 끈끈한 삶은 부담스럽다. 나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