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모르겠고 모양은 비슷한 김치
우리 동네는 지금 마늘 전쟁이다. 1년 먹을 마늘을 사서 쟁여 놓느라고 모두 분주하다.
우리 집은 해마다 마늘을 사는 곳이 있다. 얼마 전 마늘종을 샀던 그 집, 당연히 마늘 농사를 짓는 그 집에서 해마다 마늘종도 사고, 한 달 뒤 마늘도 산다고 했다.
엄마는 벌마늘-마늘 한쪽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마늘 쪽이 벌어져서 1통에 최대 20쪽까지 들어있는 마늘은 좋아하지 않는다. 비싸도 꼭 단양 6쪽 마늘을 고집했다. 단양마늘은 크기는 작아도 단단하고, 마늘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있고, 밀도가 높으니 해를 넘겨도 웬만해서는 싹이 안 난다고 했다. 엄마의 일방적 얘기만 듣다가 직접 검증할 기회가 생겼다. 결혼하고 나서 시댁에서는 서산마늘을, 친정에서는 단양마늘을 보내준 것이다. 서산마늘은 장마 끝나면 바로 싹이 나기 시작했고,단양마늘은 해를 넘겨도 끄떡없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엄마 말에 뻥이 1도 섞이지 않은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나서 나도 단양마늘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식구 모두 찬양해 마지않는 단양 마늘을 아빠가 사왔는데 15접이나 사 왔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마늘을 세는 단위, ‘접’은 마늘 100개(통)를 말한다. 1통에 6쪽씩 나오는 것을 계산하면 1접에 마늘 600쪽이 나온다. 가격도 어마어마하다. 1접에 25천 원, 총 37만 원을 줬다고 했다. 이게 대략 1년 먹을 마늘이다. 매년 엄마에게 마늘 몇 접을 샀네, 가격이 얼마네, 듣기만 하다가 직접 보니까 엄청나다. 마늘을 사 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걸 또 다듬어서 새끼를 꼬아서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야 한다. 이걸 집집마다 다들 한다고? 나도 저렇게는 못할 거 같다. 부모님 대에서 끝날 일이 분명해서 웬만해서 잘 안 찍는 인증샷을 찍어본다.
마늘을 다듬고 있는데 (어떻게 알고) 둘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둘째 언니라 함은 사촌 오빠 중 둘째 오빠의 부인이다. 가까이 농사짓는 분에게 알타리 무를 얻었는데 너무 많아서 김치 담글 거면 지금 가져다준다고 했다.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고 뭐든지 덥석덥석 잘 받는 나인데 차마 알타리는 받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나는 김치를 한 번도 담가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바로 거절하지는 않았다. 우리 식구 모두 아삭아삭 씹는 식감을 좋아해서 알타리 김치를 좋아하고, 해마다 엄마가 한 통씩 해서 택배로 보내주면 친구들과 나눠 먹던 생각이 나서다. 알타리 김치를 해서 둘째 언니도 주고, 동생도 주고, 남편과 딸도 먹이고, 가능하다면 친구랑 나눠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차올랐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알타리 김치를 담가보지 않았고, 담그는 걸 어깨너머로 본 적도 없고, 엄마도 아파 누워있다. 날 도와줄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욕심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마침 마늘도 사 왔겠다, 김치 냉장고에 엄마가 쟁여 놓은 고춧가루가 있겠다, 한 번 담가봐? 한번쯤은 김치를
담가보고 싶다는 용기와 욕망이 불끈 솟았다. 마늘만 없었어도 김치 담글 생각을 안 했을 텐데, 마늘이 잘못했다.
언니가 가져온 알타리 무는 한 단, 두 단, 시장에서 파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한 보따리였다. 다듬고 씻고 절이고 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역시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는 나에게 레시피를 전수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배우고, 먹어본 맛으로 추론하여 김치를 담가야 했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배우는 게 어려운 이유는 열이면 열, 다 다른 레시피니까 선택하는 어려움이 있다. 일단 나는 진입장벽이 높은 건 다 패스다. 나는 김치 장인이 아니라 초보일 뿐. 좀 쉬워 보이는 레시피 몇 개 머리에 넣고, 가지고 있는 재료 활용해서 먹어본 맛에 의지하여 그냥 담가보기로 했다.
찹쌀가루가 있어서 찹쌀풀을 먼저 쑤었고, 거기에 엄마가 냉장고에 쟁여둔 고춧가루, 역시 엄마가 쟁여둔 멸치액젓, 새우젓, 아빠가 오늘 사온 단양 마늘, 아빠가 농사지은 파, 단맛으로 양파 간 것을 대충 넣고, 맛을 보면서 대충 양념을 만들었다.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아마 배나 사과를 갈아 넣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엄마는 김치에 비싼 배, 사과를 갈아 넣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배, 사과를 김치에 넣으면 당연히 맛있겠지. 하지만 사과, 배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사러 나가기 귀찮기도 해서 그냥 생략했다. 절여놓은 알타리에 양념을 무쳐서 엄마 입에 넣어줬다.
엄마 간 좀 봐봐. 괜찮아?
당연히 대답은 없고, 표정은 별로다. 딸이 난생처음 김치를 담갔다고 감격스러워서 말문이 막힌 건가. 못 먹을 맛인데 상처받을까 봐 말을 못 하는 건가. 뭔가 부족한데 어떤 말부터 해야 하는지 말을 고르는 중일까. 말하지 않아도 난 엄마의 마음을 안다.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김치 담글 줄도 알고. 없는 살림에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귀하게 키웠는데, 이렇게 엄마 수발드느라 고생시키고 미안해서 죽겠다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맛은 모르겠고 모양은 비슷하니까 됐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고(라고 말하지만 막 담갔는데 막 맛있고 먹어본 사람들이 난리 나서 김치장인으로 등극하는 황당한 꿈도 조금 있긴 있음) 난생처음 김치라는 걸 담가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겠지. 정 맛이 없으면 푹 익혀서 들기름에 볶아서 먹으면 된다. 그게 김치의 매력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