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보다는 맛이 떠오르는 오징어국
이효리가 엄마랑 하는 프로그램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짬 날 때마다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이효리가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여 이효리 엄마가 직접 재료를 준비해 와서 해주는데, 그게 오징어국이다.
이효리는 엄마가 30년 만에 끓여준 오징어국을 먹고 눈물을 흘렸다. 이효리 엄마는 가난한 살림에 오징어 한 마리로 여섯 식구가 나눠 먹으려니 국을 끓여서 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어릴 때 풍족하게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효리에게 오징어국은 가난했던 시절 궁핍한 생활을 상징인 셈이다.
이효리가 오징어국이라고도 했다가 오징어찌개라고도 부르는 음식, 이효리를 울린 오징어국은 우리 엄마도 자주 해주던 음식이다.
이름부터 사기다. 막상 국을 끓여 놓으면 오징어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무만 한 가득이어서 오징어맛이 나는 뭇국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오징어 한 마리로 국을 끓여서 우리 다섯 식구 나눠 담으면 내 국그릇에 들어있는 오징어는 몇 조각이나 될까. 우리 남매는 숱한 무 사이를 헤쳐서 겨우 오징어를 찾아내곤 했는데 그걸 낚시라고 불렀다. 내 국그릇에서 낚시를 하면서 오징어 타령을 하면 엄마는 자기 국그릇을 뒤져서 어렵게 찾아낸 오징어를, 아니 오징어 조각을 내 국그릇에 넣어주곤 했다. 동생들과 서로 오징어 뺏어 먹으려고 투닥거렸던 생각도 나는데, 나에겐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니면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가난의 얼룩은 세탁되었거나 가난했지만 행복했다고 자부하고 싶어서 어릴 때 기억을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효리와 같은 걸 먹고 컸지만, 다른 점이 있다.(물론 이효리랑 다른 점은 백만스무가지도 넘겠지만) 나는 오징어국을 가난보다는 그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효리는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즉 연예인이 되고 부자가 되고 엄마로부터 독립한 이후엔 오징어국을 안 먹은 듯했다. 나는 엄마 품을 떠나 자취할 때도 오징어국을 자주 끓여 먹었고, 지금도 자주 끓이고 있고, 지난겨울 엄마 퇴원하고 집에 데려왔을 때도 제일 먼저 오징어국을 끓여주었다. 옛날 추억의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오징어국이 맛있어서, 그게 우리에게는 맛있는 음식이어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끓인 것이다. 물론 나의 어린 시절도 이효리 못지않게 가난했다. 그 시절 모든 음식이 궁핍한 살림과 관련이 없을 수 없고, 우리 엄마도 이효리 엄마와 같은 이유로 오병이어의 마음으로 오징어국을 끓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는 오징어국을 가난했을 때 먹었던 음식이라기보다 그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엄마, 이효리네도 오징어국을 자주 끓여 먹었대.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파도 말이라도 통했다면 엄마에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이효리네 오징어국에는 고추장을 넣고 찌개처럼 걸쭉하게 끓이네, 우리는 고춧가루로만 칼칼하고 시원하게 끓이네, 비교하면서 오징어국을 주제로 한 시간은 떠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오징어국이나 끓여 먹자고 하면서 마무리를 했을 테고.
보통 오징어국은 날이 쌀쌀할 때 칼칼한 게 끌릴 때 해 먹는 음식이다. 날은 덥지만 오늘 생각난 김에 시장에 가서 오징어 세 마리 사 왔다.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맛있는 오징어국이다.
https://youtu.be/h2hB9m50kw0?si=APXG6FYeMvCnzOym
효리네 레시피와는 조금 다른 우리 집 시원 칼칼한 오징어국 레시피
1. 사전 준비 : 무 나박 썰기, 오징어 길쭉하게 썰거나 칼집내서 썰기
2. 멸치다시마육수를 낸다.
3. 1에 무를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 끓인다.(오징어 같이 넣으면 질겨질 수 있어서 나중에)
4. 무가 어느 정도 익으면 오징어, 고춧가루, 마늘,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팔팔 끓인다.
5. 국이 한소끔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이고 파를 넣고 윗부분의 거품을 걷어낸다.
6. 좀 칼칼하게 먹으려면 청양고추 하나 썰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