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 Jun 16. 2024

엄마는 미친 사람이었다

나보다 더 엄마를 살리고 싶은 사람

사촌오빠가 지금 집 앞으로 가고 있으니 잠깐 나오라고 했다. 매번 보양식인 흑염소탕이니 장어탕이니 온갖 좋다는 걸 실어 나르는 오빠라서 또 그런 건가 보다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산삼이었다. 자연삼이 한 뿌리, 장뇌삼이 대여섯 뿌리 되어 보였다.


산삼은 말만 들었지 처음 봤다. 이끼에 폭 싸여있는 산삼 실물 영접. 그런데


에게? 이게 산삼이야?


작았다. 이렇게 작아도 삼령은 꽤 된 거라고 한다. 삼령은 산삼의 나이를 말하는데, 나무의 나이테처럼 뇌두의 마디 수를 보고 안다고 했다. 아빠가 산삼을 잘 아는 친구에게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물어보며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족히 이십 년은 넘은 좋은 것이라고 하고, 가격만 해도 기백만 원은 훌쩍 넘어간다고 했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가까이에 큰엄마(사촌오빠의 어머니)도 계신데 엄마가 중간에 이렇게 인터셉트해도 되나? 괜히 큰엄마에게 면목없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다음에는 이 귀한 걸 자꾸 받아도 되나? 나는 어떻게 이 빚을 다 갚지? 결론만 얘기하면 나는 못 갚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부담스러운 마음도 지나간다. 그리고 마음의 끝에는 오빠의 마음이 있다.


오빠는 정말 엄마를 살리고 싶어 하는구나. 어쩌면 딸인 나보다도 엄마를 더 살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오빠는 엄마가 아프기 전에도 딸인 나보다도 엄마, 아빠에게 열심이었다. 오히려 나는 어버이날, 생신날에도 안 왔지만, 오빠는 때마다 엄마, 아빠를 모시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녔다. 가까이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딸인 나보다도 더 열심히 더 살뜰하게 엄마를 챙겼다.


오빠는 엄마를 좋아했다. 오빠는 엄마를 ‘마음이 바다와 같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큰엄마도 계신데 오빠가 엄마에게 자꾸 그렇게 말해서 늘 면구스럽다고 했다. 오빠는 작은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아이들에게 주는 세뱃돈이 제일 후했고, 말 한마디를 해도 따뜻했다고 한다. 그건 나도 인정. 그렇다고 이렇게 잘 하나?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오래전 오빠가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다. 그때 오빠는 잠시 다른 곳에 피해 있었고, 살던 집도 경매로 날려 오빠네 가족(언니, 어린 두 딸)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그때 엄마가 우리 집에 데려오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는 엄마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이 넓은 것도 아니고, 우리 살림이 넉넉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가족을 데려오나. 큰 엄마도 계시고, 큰 오빠도 있는데 왜 작은 엄마일 뿐인 엄마가 나서서 그러나,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오빠가 금방 돌아왔고 재기를 위해 움직이면서 오빠 가족이 우리 집에 오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 더 이해할 수 없는 사실, 어쩌면 용서 못할 일을 알게 되었다. 오빠가 다시 돌아와서 재기를 하는 과정에서 보증인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도나고 본가(큰엄마와 큰오빠)와의 사이가 틀어진 상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아빠에게 보증을 서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 담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아파트다. 달랑 집 한 칸 있는 아빠가 보증을 서주었다고 했다. 다행히 오빠가 재기에 성공하여 지금 지역에서는 꽤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엄마도, 아빠도 이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않아서 몰랐다. 오빠가 잘 되고 한번쯤 생색낼 만 한데 일언반구도 안 해서 몰랐다. 얼마 전 오빠가 밥을 사주면서 나에게 고백하여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때는 너무 절박해서 그랬지만, 세월이 흘러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오빠는 자문해본다고 한다. 자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절대 절대 절대 그런 짓을 안 할 거다. 솔직히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모두 미친 사람들이다.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어떤 계산도 없이, 어떤 욕심도 없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식으로 살아와 지금도 살림살이가 마냥 그 자리다.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니 오빠 사업이 잘못됐으면 우리 모두 길가에 나 앉을 뻔했다. 나는 엄마, 아빠처럼 절대 못 산다. 그렇게는 안 살 거다. 이쯤 되니 오빠가 엄마를 살리고 싶어서 안달 난 것도 이해가 된다.


일단 미친 사람 우리 엄마 산삼 먹을 자격이 있는 것 같다. 미안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은 내려놓고, 엄마에게 산삼을 먹이기로 했다. 이거 먹고 엄마가 갑자기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삼을 보면서 나도 오빠처럼 엄마를 조금은 더 살리고 싶어졌다. 나도 엄마에게 받은 게 너무 많다. 오빠는 아파트 한 채일지 몰라도 나는 엄마의 평생을 받고 살아왔다. 그런데 잊고 있었다. 달랑 몇달 간병하고 나가 떨어졌다. 간병하는 게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이럴 바에는 그냥 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마음속에서는 간병살인도 백번쯤 일어난 것 같다.


산삼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나도 엄마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엄마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평생의 은혜를 쉽게 잊은 배은망덕한 딸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 그런 마음들이 엄마에게 모이고 엄마의 마음에 가 닿았으면 좋겠다. 산삼이 엄마를 살리진 못하더라고 그 마음을 증폭시켜주기만 해도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