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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Jun 17. 2024

어떤 집이 좋을까

돌보는 사람에게 좋은 집을 찾아서

주말에 동생과 집을 보러 다녔다. 엄마 쓰러진 지 6개월, 엄마 돌봄이 장기화될 것이 확실시되자 집을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엄마가 쓰러지자마자 동생은 엄마 집을 좀 넓은 곳으로 옮겨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시 인지에 손상이 오기 전인 엄마와 아빠 모두 펄쩍 뛰었다. 싫다는 거다. 여기가 좋다고 했다.


이 집은 부모님이 평생을 산 곳이다. 딱 한 번 이사를 하긴 했다. 우리가 살던 동네가 나름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생겼고, 그 아파트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거의 한 자리에서 평생을 산 거나 다름없다. 젊었을 때도 안 갔던 이사를 나이 들어 이사 간다고? 눈 감고도 다닐 만큼 이 집과 이 동네가 익숙하고, 오래 사귄 이웃(사촌)들, 진짜 사촌들, 친구들이 모두 가까이에 산다. 노인들에게 그런 환경이 꽤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나도 엄마 집에 와서 살아보니 노인 둘이 살기에 편리하고 좋은 거주환경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건 엄마와 아빠 두 분 모두 건강할 때 얘기다. 지금 엄마는 아파서 누워있고, 이동할 땐 휠체어로 이동한다. 무엇보다 내가 와서 살고 있고, 주말에 동생, 남편, 딸이 와서 같이 지낸다. 어쩌다 잠깐씩 왔다 갈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에는 이 집이 좁고 답답하다.  


집을 보러 갈 거라고 말했더니 아빠는 여전히 펄쩍 뛰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아빠가 나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집을 보러 갔다. 우리는 일단 전세로 알아보기로 했다. 엄마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돌봄의 상황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아빠도 가지 않겠다고 하니 일단은 부담이 덜한 전세로 살아보면서 장기적으로는 어떤 집이 좋을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지방 소도시에는 전세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인구가 줄고 있고, 그나마도 노령화되고, 유동인구는 없고 정주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전세 수요가 없는 거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하나도 없다고? 친척 언니에게 부탁하여 아는 부동산과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딱 2개의 전세 물건을 발굴했다. 하나는 지은 지 3년 된 새 아파트, 하나는 신축 전원주택이었다. 진짜 귀한 전세라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 남매는 선호가 분명하게 갈렸다. 동생은 아파트, 나는 전원주택.


동생은 새 아파트가 깨끗하고 편리해서 좋다고 했다. 지금까지 매번 신축 아파트를 찾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반대다. 잠깐이라도 나가 풀이라도 뽑을 수 있는 정원이나 텃밭이 있고, 무엇보다 주변에 산과 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나가서 걷는 재미가 있는 곳이 좋다. 동생은 집의 내부가 중요하고, 나는 집의 외부가 중요한 셈이다. 동생은 어릴 때 지저분하고 어두운 시장에서 자랐던 게 싫어서 새 아파트만 찾아다닌다고 했다. 나도 자랄 때는 시장에서 자란 것이 싫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어릴 때 자랐던 환경과 비슷한 곳, 즉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찾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배에서 나왔지만, 우리 남매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얼핏 알긴 알았지만 이번에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을 땐 우리의 다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은 상관없었다. 각자 알아서 살면 됐고, 서로 만날 일도 적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결국은 절충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결국 누구 한 사람이 아닌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작 아픈 엄마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물론 돈을 내는 동생도 중요하고, 같이 살고 있는 아빠도 중요하지만 주간병인이 되어버린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생도 아빠도 알고 있다. 내가 일단 살아야 엄마도 산다. 아픈 엄마가 머무는 곳은 집이라는 공간이라기보다 주로 돌보는 사람, 마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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