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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18. 2024

살 확률 100분의 1이라면

나는 99를 보고 아빠는 1을 본다

이거 작년에 심은 거?

응 하나 살았대.


작년 겨울 엄마가 수술하고 퇴원하여 집에 왔을 때 아빠는 처음으로 양파를 심었다. 모종 100개를 심었는데, 올봄에 모두 죽었다고 했다. 추운데 나가서 심고, 얼어 죽지 말라고 산에서 낙엽 긁어다가 덮어주었는데도 죽고 말았다며 속상해했다. 그런데 다 죽은 게 아니었다.


살아남은 작은 양파 한 알을 보니 괜히 짠하기도 하고 용하기도 하다. 추위에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기를 쓰고 살아남았는데 땅속에 방치되어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제 양파 심지 마. 여기는 추워서 양파 잘 안 되는 것 같아.


전남 무안 양파가 유명한 거 보면 양파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란다. 효율만 따지면 사 먹는 게 제일 싸다. 나는 대체로 효율과 경제성을 따지고, 안 되는 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애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내년에는 양파랑 마늘도 같이 심어볼까…


양파 농사 망해 놓고 아빠는 한 술 더 떠 마늘까지 심어볼 생각을 하고 있다. 아빠는 99개의 죽음보다는 1개의 삶을 본 걸까. 생각해 보니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나는 일희일비한다. 엄마가 스스로 눈이라도 잘 뜨고 엉뚱한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좋아서 세상이 온통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것 같다. 반대로 눈도 잘 못 뜨고 입을 꾹 다물고 말도 안 하면 갑자기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쉽게 실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방문 간호사가 엄마에게 숟가락질을 시켜보라고 했다. 온몸이 경직되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에게 숟가락을 쥐어주고 엄마 손을 내 힘으로 억지로 움직여보다가 숟가락이 튕겨져 밥알이 얼굴에 튀면 숟가락을 뺏어 떠먹여준다. 해보긴 해보다가 잘 안 되면 쉽게 실망하고 빠르게 중단한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이던 이런 말, 저런 말을 해본다. 그런데 반응이 없으면 나도 말이 사라진다: 반면 아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던 것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엄마가 반응이 있건 없건 혼잣말이라도 한다.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아빠라도 그러니 다행이다. 옆에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양파 한 알을 보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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