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는 곳에 가보고 싶어
딸은 학교 가면서 전화를 한다. 대략 8시 10분에서 8시 30분 사이. 그런데 9시가 다 되어가도록 전화가 안 온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늦잠을 잤나? 시험 망했다고 학교에 안 가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애는? 학교 갔지. 전화 안 받던데? 친구가 집 앞까지 와서 같이 학교 간다고 했어. 친구랑 같이 가느라고 전화 못 받나 보네.
딸은 친구들에게 미지의 소녀이다. 너 어디 살아? 음, 저어기, 산 아래, 아파트는 아니고 주택, 혹시 디스케이프라는 카페 알아? 그 근처인데. 무슨 아파트 몇 단지, 처럼 명확하게 설명이 잘 안 되는 곳에 살다 보니 딸은 설명하느라고 애를 먹고, 설명이 잘 안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베일에 싸인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 호감이 생기고 더 친해지고 싶을 때 아이들이 딸에게 하는 말이, 네가 사는 곳에 가보고 싶어, 인 것.
그런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설명이 어려운 만큼 찾아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집까지 오는 대중교통이 마땅치가 않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편도 30분, 왕복 1시간 거리이다 보니 학원으로 바쁜 아이들의 일정상 방과 후 오기가 어렵다.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학원까지 째고 자전거를 타고 부모님과 와본 적 있다는 디스케이프 카페를 랜드마크 삼아 찾아온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지금까지 딸의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반이 바뀔 때마다 서로 신상을 파악하고 저마다의 탐색전을 벌일 때 딸이 사는 곳을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있긴 했어도 집까지 찾아온 친구는 없었다. 오랜만에 그런 친구가 생긴 셈이다. 그것도 바쁜 등교 시간에.
어디쯤 갔을까? 등교길에 흔한 참새와 직박구리, 그리고 이 모를 여름새들의 호위를 받으며 걷고 있겠지. 소리를 아는 몇 가지 이름은 말해줄 수도 있고. 너는 그런 이름을 어떻게 다 알아? 친구가 물으면 아빠가 새에 대해서 좀 안다고 말할 거고, 그 친구는 신기해할 수도 있다. 길가의 고깃집이 맛있지만 좀 비싸다는 얘기도 해주려나? 회색의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서 왜 이름을 그런지는 설명해줄 것 같아. 얼마 전에 지었으니까. 도토리가 여무는 숲 안에 빨간 지붕 교회가 있다는 사실는 사실은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것 같아. 그쯤 가면 수다가 한창일 테니까. 울창해진 벚꽃길을 지나면서 올봄 벚꽃길이 한창일 때 친구들은 모두 학원 가고 같이 올 사람이 없어서 혼자 소풍을 왔었다는 애기는 안 해줄 거야. 외로운 속내는 친구들에게도 잘 말하지 않으니까. 빠른 길을 두고 굳이 정자가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돌아 돌아 가겠지. 조금이라도 더 수다 떨고 싶을 테니까. 나중에 친구랑 무슨 얘기했어? 물어보면 그냥 수다 떨었어,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