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시험 성적이 내 기분에 미치는 영향
벌써 학교 끝났을 시간인데 또 전화가 없다. 중학교 와서 매번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수학 시험을 본 날이다. 오늘도 시험 망한 거 확실시된다. 잘 봤으면 학교 나오기 무섭게 전화해서 이것 좀 보라며, 이게 나라며, 나란 녀석… 어쩌고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을 텐데 여태 깜깜무소식인 걸 보면.
기다리다 못 참고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한참 뒤에 또 전화를 했다. 또 안 받는다. 이것 봐라, 아주 작정을 하고 안 받는구먼. 시험을 잘 봤건 못 봤건 친구들과 놀고는 있을 것이다. 잘 봤건 못 봤건 시험이 끝났으니까 아주 살판이 났겠지. 전화 한 통 해주고 놀면 어디가 덧나냐. 다 저녁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엄마?
응, 전화 안 돼서 걱정했어.
아, 친구들이랑 노느라고 전화할 생각을 못했어.(아이고, 이 눔의 시키)
그렇구나. 시험은 어땠어?
정말 어려웠어. 너무 어려웠어. 엄살이 아니라 진짜야. 조재은도 인정했어. 삼촌도 못 풀걸.
조재은은 과학고를 준비하는 같은 반 친구로 공부 잘하는 애의 대표주자로 나오는 이름이다. 딸이 삼촌이라고 하는 사람은 내 동생을 말하는데, 동생은 수학 전공자이시다. 엄마가 아프니 주말에 엄마 집에 모여서 함께 지내는 날이 많고, 자연스럽게 딸 수학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이 딸의 수학 상태가 어떤지 한번 봐준 적이 있다. 그리고 진단은 개념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 푸는 연습이 덜 되어 있어서 시간이 걸리고 실수를 한다. 또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덜 되어있다. 그리고 제시한 솔루션은 딸이 읽는 걸 좋아하니 수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제안을 하고, ‘틀리지 않는 법’이라는 솔깃한 제목의 벽돌책을 사주었다(만 내가 먼저 읽어보니 ㅎㄷㄷ나한테도 어려워서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이번 주말에 오면 주긴 줄 생각이다.)
아, 아무튼 시험 보느라고 고생했어.(그래서 몇 점인데? 궁금했지만 무서워서 묻지 못하고, 설마 지난번 수학 점수 40점보다 더 아래는 아니겠지? 생각했다)
아, 지인짜 당황했다니까. 풀어도 답이 안 나오고, 손에는 땀나지. 마지막에는 시간 없어서 막 찍고.
그래서 몇 점인데?(단도직입적으로 점수를 물은 건 처음인 거 같다. 보통은 시험을 못 봐도 딸이 먼저 말해주는데, 너무 뜸 들이니까 못 참고 묻고 말았다)
60점 겨우 넘을 거 같은데…
(6이라는 숫자를 듣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뭐, 그래도 지난번엔 40점도 맞았는데, 그보다는 잘했네. 이제 매일 공부하는 루틴 잡혔으니까 다음엔 더 좋아지겠지. 어쨌든 시험 끝났으니까 이제 실컷 놀아.
그렇게 쿨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대단히 실망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 수학만큼은 조금 기대를 했었다. 시험 한 달 전부터 하루에 한 시간씩 꼬박꼬박 수학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꾸준히 공부한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엔 못 해도 안 해서 그래, 그런 핑계를 댈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해도 안 되는 거면 정말 (수학 한정) 공부머리가 없는 건가?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히 기분이 안 좋았다.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을까? 딸 성적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건 처음인 거 같다. 40점이었던 적도 있는데 그때는 놀라긴 했어도 심각하게 기분이 안 좋고 그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에 대한 반항으로 (백지가 아니라) 빵점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땐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 하고자 할 때는 옆에서 응원은 해도 깊게 관여하거나 개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좋건 나쁘건 딸 성적은 내 성적이 아니라며 부단히 딸의 학업과는 거리 두기를 해왔다. 잘하면 좋겠지만 못 해도 괜찮고, 굳이 못하는 공부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건강하고 즐겁게 살자는 모토로 아이를 키워왔는데, 딸 수학 성적에 나는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건가?
이럴 때는 차라리 떨어져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같이 살았다면 눈치 백 단인 딸도 내 기분을 그대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 못 해도 괜찮다고 해놓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해놓고, 결국 엄마도 공부였네, 결국 엄마도 성적 따지는 거였네, 차라리 대놓고 공부하라고 하지, 아닌 척하면서, 학원도 안 보내주면서 마음속으로는 공부 잘하길 바라고 있었네, 하면서 나의 위선적인 모습에 고개를 흔들며 서서히 나와 멀어졌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전달하기에는 다행히 우리는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래도 눈치 빠른 딸에게 내 속마음을 들킬까 봐 바쁜 척을 하면서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내 기분의 정체는 무엇인가?
딸이 수포자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물론 나도 수포자였기 때문에 딸이 수포자가 되어도 할 말은 없다. 어떻게 공부해 보라고 코칭할 능력도, 지금 학원이라도 가보자고 찾아보고 알아볼 여력도 없다. 그동안 딸은 스스로 자구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시험을 위해서 매일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씩 수학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 노력에 답을 얻지 못했다. 노력이 배신당한 것 같다. 이 지점에서 나의 지금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엄마에게 온갖 정성을 쏟고, 열심히 간병하고 있지만, 나아지지 않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엄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딸의 성적=엄마의 상태라는 이상한 등식이 갑자기 성립되면서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이다.
보상 심리도 있었다. 엄마 간병에 지친 내게, 하루종일 웃을 일도 없고, 희망이 없는 나의 일상에 딸이 웃음과 희망을 길어다 주기를 바랐다. 엄마, 나 수학 성적 많이 올랐어. 역시 공부하니까 되나 봐. 이제 수학에 자신감이 붙었어. 이제 수학이 재미있어, 역시 안 되는 건 없어, 그런 소리가 들려오길 내심 기다렸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딸은 잘못이 없다. 나름 스스로 한다고 공부했지만, 성적이 안 나왔을 뿐이다. 속상한 걸로 따지면 나보다 딸이 더 속상한지 모른다. 내 생각이 문제였다. 딸의 수학 공부에 나의 욕심과 욕망과 기대를 투영시키고, 엄마 간병으로 힘든 것을 딸에게 보상받으려고 했던 내가 잘못했다. 그걸 아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이유를 알았으니까 노력이란 걸 해보자. 적어도 딸에게 내 기분을 전가하지 말자. 딸이 스스로 평가하고 해법을 찾아보길 기다리자. 그게 멀리 떨어져 있는 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한동안 전화를 삼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