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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4. 2024

수학 40점보다 60점이 더 기분 나쁜 이유

딸의 시험 성적이 내 기분에 미치는 영향

벌써 학교 끝났을 시간인데  전화가 없다. 중학교 와서 매번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수학 시험을  날이다. 오늘도 시험 망한  확실시된다.  봤으면 학교 나오기 무섭게 전화해서 이것  보라며, 이게 나라며, 나란 녀석… 어쩌고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을 텐데 여태 깜깜무소식인 걸 보면.


기다리다  참고 전화를 했다.  받는다. 한참 뒤에  전화를 했다.   받는다. 이것 봐라, 아주 작정을 하고  받는구먼. 시험을  봤건  봤건 친구들과 놀고는 있을 것이다. 잘 봤건 못 봤건 시험이 끝났으니까 아주 살판이 났겠지. 전화   해주고 놀면 어디가 덧나냐.  저녁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엄마?

, 전화  돼서 걱정했어.

, 친구들이랑 노느라고 전화할 생각을 못했어.(아이고,  눔의 시키)

그렇구나. 시험은 어땠어?

정말 어려웠어. 너무 어려웠어. 엄살이 아니라 진짜야. 조재은도 인정했어. 삼촌도 못 풀걸.


조재은은 과학고를 준비하는 같은  친구로 공부 잘하는 애의 대표주자로 나오는 이름이다. 딸이 삼촌이라고 하는 사람은  동생을 말하는데, 동생은  수학 전공자이시다. 엄마가 아프니 주말에 엄마 집에 모여서 함께 지내는 날이 많고, 자연스럽게 수학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이 딸의 수학 상태가 어떤지 한번 봐준 적이 있다. 그리고 진단은 개념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 푸는 연습이 덜 되어 있어서 시간이 걸리고 실수를 한다. 또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덜 되어있다. 그리고 제시한 솔루션은 딸이 읽는 걸 좋아하니 수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제안을 하고, ‘틀리지 않는 이라는 솔깃한 제목의 벽돌책을 사주었다( 내가 먼저 읽어보니 ㅎㄷㄷ나한테도 어려워서  도움은    지만 이번 주말에 오면 주긴 줄 생각이다.)


, 아무튼 시험 보느라고 고생했어.(그래서  점인데? 궁금했지만 무서워서 묻지 못하고, 설마 지난번 수학 점수 40점보다 더 아래는 아니겠지? 생각했다)

아, 지인짜 당황했다니까. 풀어도 답이  나오고, 손에는 땀나지. 마지막에는 시간 없어서  찍고.

그래서  점인데?(단도직입적으로 점수를 물은  처음인  같다. 보통은 시험을  봐도 딸이 먼저 말해주는데, 너무  들이니까  고 묻고 말았다)

60 겨우 넘을  같은데

(6이라는 숫자를 듣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 그래도 지난번엔 40도 맞았는데, 그보다는 잘했네. 이제 매일 공부하는 루틴 잡혔으니까 다음엔 더 좋아지겠지. 어쨌든 시험 끝났으니까 이제 실컷 놀아.


그렇게 쿨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대단히 실망했다. 다른  몰라도 이번에 수학만큼은 조금 기대를 했었다. 시험   전부터 하루에  시간씩 꼬박꼬박 수학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꾸준히 공부한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엔 못 해도 안 해서 그래, 그런 핑계를 댈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해도 안 되는 거면 정말 (수학 한정) 공부머리가 없는 건가?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히 기분이 안 좋았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성적 때문에 기분이  좋은  처음인  같다. 40점이었던 적도 있는데 그때는 놀라긴 했어도 심각하게 기분이  좋고 그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에 대한 반항으로 (백지가 아니라) 빵점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땐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 하고자 할 때는 옆에서 응원은 해도 깊게 관여하거나 개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좋건 나쁘건  성적은  성적이 아니라며 부단히 딸의 학업과는 거리 두기를 해왔다. 잘하면 좋겠지만  해도 괜찮고, 굳이 못하는 공부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건강하고 즐겁게 살자는 모토로 아이를 키워왔는데,  수학 성적에 나는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건가?


이럴 때는 차라리 떨어져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같이 살았다면 눈치 백 단인 딸도  기분을 그대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  해도 괜찮다고 해놓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해놓고, 결국 엄마도 공부였네, 결국 엄마도 성적 따지는 거였네, 차라리 대놓고 공부하라고 하지, 아닌 척하면서, 학원도  보내주면서 마음속으로는 공부 잘하길 바라고 있었네, 하면서 나의 위선적인 모습에 고개를 흔들며 서서히 나와 멀어졌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전달하기에는 다행히 우리는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래도 눈치 빠른 딸에게  속마음을 들킬까 봐 바쁜 척을 하면서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내 기분의 정체는 무엇인가?


딸이 수포자가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물론 나도 수포자였기 때문에 딸이 수포자가 되어도  말은 없다. 어떻게 공부해 보라고 코칭할 능력도, 지금 학원이라도 가보자고 찾아보고 알아볼 여력도 없다. 그동안 딸은 스스로 자구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시험을 위해서 매일 도서관에 가서  시간씩 수학 공부를 했다. 하지만  노력에 답을 얻지 못했다. 노력이 배신당한  같다. 지점에서 나의 지금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엄마에게 온갖 정성을 쏟고, 열심히 간병하고 있지만, 나아지지 않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엄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딸의 성적=엄마의 상태라는 이상한 등식이 갑자기 성립되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보상 심리 있었다. 엄마 간병에 지친 내게, 하루종일 웃을 일도 없고, 희망이 없는 나의 일상에 딸이 웃음과 희망을 길어다 주기를 바랐다. 엄마,  수학 성적 많이 올랐어. 역시 공부하니까 되나 봐. 이제 수학에 자신감이 붙었어. 이제 수학이 재미있어, 역시 안 되는 건 없어, 그런 소리가 들려오길 내심 기다렸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딸은 잘못이 없다. 나름 스스로 한다고 공부했지만, 성적이  나왔을 뿐이다. 속상한 걸로 따지면 나보다 딸이  속상한지 모른다.  생각이 문제였다. 의 수학 공부에 나의 욕심과 욕망과 기대를 투영시키고, 엄마 간병으로 힘든 것을 에게 보상받으려고 했던 내가 잘못했다. 그걸 아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이유를 알았으니까 노력이란 걸 해보자. 적어도 딸에게 내 기분을 전가하지 말자. 딸이 스스로 평가하고 해법을 찾아보길 기다리자. 그게 멀리 떨어져 있는 딸에게 내가 해줄  있는 유일한 것이다(한동안 전화를 삼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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