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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8. 2024

엄마 돈은 죄책감이 들어

규칙과 한계의 중요성

엄마?

응.

시험 끝나고 잘 놀았어?

응.

뭐 하고 놀았어?

노래방 갔다가 마라탕 먹고 방탈출카페 갔다가 빙수 먹고 그랬지.

마라탕 인기는 여전하네.

응, 딱히 먹을 게 없어. 마라탕 아니면 떡볶이야.

방탈출카페는 좀 비싸서 못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근데 이번에 이벤트 가격으로 만 원이었어.

그 정도면 그렇게 비싸진 않네.

근데 이번에 아빠한테 돈 많이 썼다고 한 소리 들었어.

얼마나 썼는데?

2만 7천 원인가?

아, 많이 쓰긴 썼네.

나도 내가 돈 벌어서 쓰고 싶어. 내돈내산 하는 게 내 로망이야.

그럼 좋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대?

엄마, 아빠 돈은 내가 번 돈이 아니니까 쓸 때 조금 죄책감이 있어.

그래? 그런 생각하는 줄 몰랐네. 그래도 성인이 돼서 너 스스로 벌어서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우리가 널 키우고 지원할 책임이 있는 거니까 죄책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너 평소에 돈 많이 안 쓰잖아. 물론 네가 너무 큰돈을 요구하고 쓴다고 하면 그건 못해줄 수도 있어. 그땐 엄마가 말해줄게.


딸이 돈 쓰는 데 있어서 죄책감까지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소유욕이 별로 없어서 부담스러운 무엇인가를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늘 소박한 걸 원하고 했다. 아직까지 옷이나 신발 같은 것도 욕심이 없고. 유일하게 딸이 큰돈을 쓰는 데는 아이돌 앨범 사는 것이고, 티켓팅 실패로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이유 콘서트를 가게 되면 그게 제일 큰 소비가 될 것 같다. 아이가 큰 소비를 한 적이 없어서 아이가 뭘 한다고 했을 때 크게 제한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기특하고 고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은연중에 소비에 대해 죄악시하고 야박하게 굴고 있는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남들은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인데 옷도  좋은 걸로 사주고 학원도 보내고 하라는데, 나는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지 없고 사실 그럴 능력도  된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돈을 아예  쓰는  아닌데 주로 쓰는 돈은 여행, , 영화, 콘서트, 스포츠 같은  소위 말하는 문화적 경험에 대한 소비인  같다.


나 용돈을 받아서 쓰고 싶어.

그래? 그건 당장 하면 되지.

내가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의 크기를 알아야, 내가 그 안에서 쓰고 안 쓰고를 결정하면서 쓸 수 있을 것 같아. 아빠 카드는 얼마까지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쓸 때마다 고민이 돼. 나는 이번에 시험 끝나고 이 정도는 써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돈 썼다고 잔소리 들으면 기분 안 좋고. 그냥 한 달에 얼마 이렇게 정했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때 한 달에 5천 원인가, 용돈을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용돈을 쓸 때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폐지되었다. 딸이 다녔던 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없어서 직접 학용품 살 일도 없고, 가까이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당시 딸은 군것질을 잘 안 할 때여서 돈을 쓸 일이 없었다. 초등학생일 때는 친구들과 놀더라도 주로 집에 와서 놀았기 때문에 돈을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이제 보호자 없이 밖에서 만나다 보니 돈이 필요해진 것이다. 지금은 아빠 카드를 쓰고 있다.


한 달에 얼마가 적당할 거 같아?

글쎄, 한 5만 원? 근데 그 용돈 안에 문제집이나 콘서트 티켓도 포함되는 건가?

용돈의 범위를 정해야겠네. 엄마도 얼마가 적당한 금액인지 좀 고민되긴 하는데, 각자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


다시 생각해 보니 아빠 카드의 투명함이 불편했던 것 같다. 카드의 장점은 애가 무엇을 얼마나 쓰는지 즉시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딸에게는 실시간 감시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용돈은 정해진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쓰면 되니까 투명한 불편함은 사라진다. 이번에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에게 규칙과 한계, 그 안에서 자율성과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없으니 필요 이상 불안해하고,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는 것 같다. 빨리 합리적인 용돈의 범위를 결정해서 용돈제로 바꿔야겠다. 그런데 얼마를 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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