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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9. 2024

시험을 잘 본다는 것

어차피 보여줄 생각이었어

시험을 앞두고 시험공부는  하고 뮤지컬 시카고에 빠져서 영어 단어 수학 공식 대신 시카고에 나오는 노래와 춤을 외우고 있길래 시험  보면 뮤지컬 시카고를 보여준다는 당근을 던져 보았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아니 그전에 시험을  본다는 것은 뭘까? 시험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지도 않은 , 서로 합의도 하지 않은  시험이 시작되었고 끝나버렸다. 시험이 어려웠다고 항변을 하지만 난이도를 감안하더라도 솔직히  기준으로는  봤다 가깝다. 이유는 유일하게 딸이 자신 있어하고 매번  점을 맞던 국어가 80점대고, 이번 시험에서 매일  시간씩 공부한 수학이 60점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충격과 실망이었다.(물론 그렇게 말은  했다)  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시험 잘 보면 시카고 보여준다고 했었잖아?

응.

넌 어떻게 생각해? 잘 본 거 같아?

응, 난 잘 본 것 같아.(어떻게 저렇게 망설임이 없을까.. 신기하다)

그래? (난 아닌데, 넌)  그렇게 생각해?

왜냐하면 영어랑 과학은 잘 봤잖아. 지난번보다 점수가 올랐고 나는 만족해.


영어와 과학은 이번에 시험이 쉬워서 대체로 다들 잘 봤다고 했다. 딸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 그리고 자기 자신(지난 시험의 점수)과의 비교, 자신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아, 그렇지. 그런데 국어랑 수학은 지난번보다 점수가 떨어졌잖아.

, 그렇지. 그런데 잘한 보고, 잘한 게 있구나 희망적으로 생각해야지. 자꾸  봤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을 잃어서  . 못한  다음에 잘하면 되고.  


딸 홍시의 정신승리에 다시 한번 감복했다. 나는 홍시처럼 생각 못한다. 나는 못 봤다고, 나를 위한 애도 기간  최소 일주일이다. 평소 홍시는 내 세계관에 불만이 많다. 내가 나쁜 것을 더 크게 본다는 거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도 좋은 게 많은데 나쁜 점만 크게 본다고. 좋은 점을 많이 보라고, 엄마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가 안 좋은 나라 같은데 자기 생각엔 우리나라도 좋은 게 많다고 잔소리한다. 나는 사회비판적인 거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홍시에게는 불평불만만 가득한 시니컬한 사람으로 보이는 거다. 홍시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나도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회로, 행복회로 돌아가는 신체 메커니즘을 갖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걸 어쩌나.


사실 홍시가 시험을 잘 보던 못 보던 큰맘 먹고 뮤지컬 보여줄 생각이었다. 떨어져 살아서 미안하고(홍시는 떨어져 사는 것에 크게 불편함은 못 느끼는 것 같고, 오히려 엄마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아빠랑 외식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거, 홍시에게도 보여주면서 교집합 만들어가는 거 재미있다. 시험을 잘 보면 좋겠지만, 홍시가 내가 좋아하는 거 보고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교환하는 거 좋다. 이제 잘 봤건 못 봤건 시험은 끝났고, 이제 큰맘 먹고 보여주는 뮤지컬이나 잘 봤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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