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보여줄 생각이었어
시험을 앞두고 시험공부는 안 하고 뮤지컬 시카고에 빠져서 영어 단어 수학 공식 대신 시카고에 나오는 노래와 춤을 외우고 있길래 시험 잘 보면 뮤지컬 시카고를 보여준다는 당근을 던져 보았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아니 그전에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은 뭘까?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지도 않은 채, 서로 합의도 하지 않은 채 시험이 시작되었고 끝나버렸다. 딸은 시험이 어려웠다고 항변을 하지만 난이도를 감안하더라도 솔직히 내 기준으로는 못 봤다…에 가깝다. 이유는 유일하게 딸이 자신 있어하고 매번 백 점을 맞던 국어가 80점대고, 이번 시험에서 매일 한 시간씩 공부한 수학이 60점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충격과 실망이었다.(물론 그렇게 말은 안 했다) 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시험 잘 보면 시카고 보여준다고 했었잖아?
응.
넌 어떻게 생각해? 잘 본 거 같아?
응, 난 잘 본 것 같아.(어떻게 저렇게 망설임이 없을까.. 신기하다)
그래? (난 아닌데, 넌) 왜 그렇게 생각해?
왜냐하면 영어랑 과학은 잘 봤잖아. 지난번보다 점수가 올랐고 나는 만족해.
영어와 과학은 이번에 시험이 쉬워서 대체로 다들 잘 봤다고 했다. 딸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 그리고 자기 자신(지난 시험의 점수)과의 비교, 자신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아, 그렇지. 그런데 국어랑 수학은 지난번보다 점수가 떨어졌잖아.
응, 그렇지. 그런데 잘한 거 보고, 잘한 게 있구나 희망적으로 생각해야지. 자꾸 못 봤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을 잃어서 안 돼. 못한 건 다음에 잘하면 되고.
딸 홍시의 정신승리에 다시 한번 감복했다. 나는 홍시처럼 생각 못한다. 나는 못 봤다고, 나를 위한 애도 기간 최소 일주일이다. 평소 홍시는 내 세계관에 불만이 많다. 내가 나쁜 것을 더 크게 본다는 거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도 좋은 게 많은데 나쁜 점만 크게 본다고. 좋은 점을 많이 보라고, 엄마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가 안 좋은 나라 같은데 자기 생각엔 우리나라도 좋은 게 많다고 잔소리한다. 나는 사회비판적인 거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홍시에게는 불평불만만 가득한 시니컬한 사람으로 보이는 거다. 홍시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나도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회로, 행복회로 돌아가는 신체 메커니즘을 갖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걸 어쩌나.
사실 홍시가 시험을 잘 보던 못 보던 큰맘 먹고 뮤지컬 보여줄 생각이었다. 떨어져 살아서 미안하고(홍시는 떨어져 사는 것에 크게 불편함은 못 느끼는 것 같고, 오히려 엄마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아빠랑 외식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거, 홍시에게도 보여주면서 교집합 만들어가는 거 재미있다. 시험을 잘 보면 좋겠지만, 홍시가 내가 좋아하는 거 보고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교환하는 거 좋다. 이제 잘 봤건 못 봤건 시험은 끝났고, 이제 큰맘 먹고 보여주는 뮤지컬이나 잘 봤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