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유 Jul 10. 2024

내 장래희망은 돌멩이야

엄마의 꿈은 너 옆에서 뒹구는 돌멩이야.

엄마?

응, 학교 가고 있어?

응, 오늘은 늦잠을 안 잤어.

잘했네.

엄마, 나 어제 인사이드 아웃 2 봤어.

아, 그래? 어땠어?

뭐, 재밌었어. 라일리 사춘기 얘기라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근데 1보다는 재미가 덜 해.

그래? 역시 속편이 재밌기가 힘든 가 보네.

1에는 상상의 친구 빙봉이라는 캐릭터가 있었잖아. 빙봉과 같은 상상의 친구는 너무 공감되거든. 2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어.

맞아. 너도 빙봉과 같은 상상의 친구들 많았잖아.

응, 초등학교 때는 학교 갈 때 일부러 혼자 가는 게 좋았거든. 혼자 가야 상상의 친구들이 나온단 말이야. 근데 이제는 상상의 친구들이 더 이상 오지 않아. 그만큼 컸다는 걸 텐데 그게 좀 아쉬워.


기억난다. 학교 갈 때 얼마나 기대에 찬 얼굴로 나갔었는지. 어느 날 동네 엄마에게 제보가 들어왔는데, 딸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혼자 학교 가는데 나뭇가지 같은 걸 들고 혼자 중얼거리고 칼싸움 같은 것도 하고, 하늘을 보며 팔을 휘휘 젓고. 딸에게 물어봤더니 학교 가는 길에 상상의 친구들이 함께 놀면서 가는 거라고 했다.


엄마도 영화 보고 싶다. 근데 여긴 극장이 없어. 영화 보려면 다른 도시로 가야 돼.

아, 극장이 없다니... 그럼 내가 조금만 스포해도 되나?

그래, 해봐.

1에서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5개 감정이 나왔잖아. 이번에는 사춘기가 돼서 불안이,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가 추가됐어. 그중에서는 불안이가 가장 핵심이고.

어때? 사춘기 당사자로서 공감이 돼?

응, 그런 면이 있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되고 불안하고 그러거든.

근데 그건 사춘기만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엄마도 그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늘 불안하고 걱정되지.

그러니까. 1에서는 슬픔도 필요하다, 그게 메시지였잖아. 2에서는 불안도 필요하다. 모든 감정이 다 필요하다. 모든 게 다 나다. 그런 거지 뭐.

근데 엄마, 내 친구 윤아는 인사이드 아웃 보고 하나도 안 슬펐대. 1에서도 빙봉이 죽을 때도 안 슬펐대. 참 코코도 안 슬펐대. 엄마랑 나랑은 펑펑 울었잖아. 슬픈 감정이 없을 수도 있나?

뭐,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거 같은데, 아예 없다기보다 슬픔이가 크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커서 또는 강하게 보이고 싶어서 슬픔이를 어딘가 숨겨놓은 것일 수도 있고.

윤아는 슬프기보다 화가 많이 난대.

그래? 예를 들어 어떤 상황이 있을까?

예를 들어 친구가 내 뒷담을 하고 다니고 배신을 했다. 그랬을 때 슬픈 애가 있고, 화가 나는 애가 있고. 윤아는 화가 날 거 같대.

넌 어떨 것 같아?

난 슬플 것 같아.

왜 슬플 것 같아?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선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다른 사람 험담하고 다니고 그러는 걸 보면 난 슬플 거 같아.

엄마도 그랬었어. 그런데 사람에 대한 기본 가정이 그렇다 보니까 너무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아. 또 살아보니까 사람은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고 선악이 공존하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것이 커지게 되는 거 같아.

그 소리 엄마한테 진짜 많이 들었던 거 같은데, 그래도 난 아직은 사람은 선한 존재로 보고 싶어.

그래, 그건 뭐 살면서 경험하면서 또 바뀌는 거니까.


변호사인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넌 사람을 너무 선한 존재로 보는 것 같아. 그러니까 맨날 실망하고 상처받지.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닌데. 사람은 원래 악한 존재라고 생각해 봐. 그러면 사람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일이 없어. 원래 그런 존재니까.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해보려고 애썼지만 사람 생각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도 딸은 상처를 덜 받았으면 좋겠어서 나도 안 되는 생각을 딸에게 자꾸 주입하고 강요하게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딸은 내가 강요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살아보겠다고 한다. 그게 맞는 거 같다. 중3이면 머리가 클 만큼 컸다. 내가 조금 일찍 경험했다고 내 생각을 강요하면 괜히 반발심만 생기지.


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친구들이랑 얘기해보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 안 하는 거 같거든. 내 장래희망은 돌멩이야. 나중에 돌멩이로 태어날거야.

돌멩이?

응, 돌멩이. 돌멩이가 되어 그냥 무념무상. 아무 생각 없이 살아보고 싶어.

ㅎㅎㅎ그래, 다음에는 돌멩이가 되렴.


돌멩이 얘기를 하니 생각난 건데 초등학교 때 딸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뒤져보니 다양한 돌멩이가 나왔다. 돌멩이가 표정이 있다나, 암튼 돌멩이를 좋아해서 늘 돌멩이를 주워 왔던 딸이 돌멩이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나는 그 옆에 있는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

이전 08화 시험을 잘 본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