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한 매운맛이 널 기다리고 있어!
엄마?
응, 이제 학교 가?
응, 지금 가고 있어. 엄마 나 내일 리더십 캠프야.
그게 뭐야?
학생회 간부들 모여서 회의도 하고, 놀기도 하고 뭐 그런 거야. 저녁에 라면도 끓여 먹는대.
재미있겠네.
글쎄,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네.
참, 엄마라면 어떻게 하겠어? 내일 리더십 캠프 준비 때문에 오늘 아침에 조재현이 카톡을 올렸어. 내일 리더십 캠프 때문에 준비할 게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하면서. 엄마는 어떻게 할 거 같아?
다른 일 없으면 도와주겠지. 못 도와주면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할 거 같은데. 왜?
난 어떻게 했을 거 같아?
도와주겠다고 했을 거 같아.
아니야. 대답 안 했어.
왜?
사실 지금까지 학생회 일 정말 열심히 했거든. 근데 오늘 하루쯤은 빠지고 싶었어. 맨날 열심히 할 필요는 없잖아.
뭐 그럴 수도 있지.
딸에게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웬만하면 맞춰서 하고, 늘 양보하고 협력하고, 솔선수범하는 착한 아이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난 거 같아서 속으로 좀 기뻤다.
내일도 모여서 싸울 텐데 오늘까지 애들 싸우는 거 보기 싫어. 애들 모였다 하면 싸워.
왜 싸우는데?
내 말이 그 말이야. 난 정말 싸우는 거 싫어하잖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란 말이야. 그런데 강제로 모은 것도 아니고 자원해서 모인 학생회에서 애들이 맨날 싸운단 말이야. 우리가 무슨 국회의원도 아니고 왜 맨날 싸우냐고. 내가 이번에 학생회 하면서 느낀 건데 똑똑한 애들이 모인다고 일 잘하는 거 아니더라고.
학생회 애들이 똑똑해?
학생회 부장쯤 되면 그래도 반에서 좀 똘똘한 애들이 모였다고 봐야 돼. 지원서 내고 면접 보고 이 과정이 어렵단 말이야. 경쟁률도 치열하고. 학생회장, 부회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모여서는 다들 자기 고집만 피우고, 양보도 안 하고, 몰려 다니기만 하고 일이 잘 안 돼.
그러면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의견 조율하고 정리하고 그래야 할 거 같은데…
그것도 문제야. 회장이 일을 안 해. 당선되고 끝이야. 생기부에 한 줄 적으려고 회장 됐나 봐. 일은 부장 한두 명이 다 한다니까.
그래? 진짜 국회랑 비슷하다. 근데 학생회나 국회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직장도 그래? 직장은 좀 다른가 했는데…
엄마가 살아보니까 사람 모인 곳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 당장 집에서는 안 그러나. 사랑해서 같이 살기로 해놓고 엄마랑 아빠도 서로 고집 피우고 양보 안 하고 싸울 때 많잖아.
그래도 맨날 그러는 건 아니잖아. 서로 잘 지낼 때도 많잖아. 그런데 애들은 모일 때마다 그런다니까. 그렇게 싸우면서도 일이 되는 게 신기할 정도야.
싸우면서 일하는 거지 뭐. 엄마, 아빠도 싸우면서 살잖아.
하긴 아무리 싸워도 조재현 같은 애가 있으니까. 회장도 아니면서 회장보다 더 일을 열심히 하잖아. 워커홀릭이야. 책임감도 크고. 조재현은 인간성은 별로지만 일은 정말 잘해. 그건 인정해.
회사도 그래. 모두가 일을 잘하는 게 아니고, 몇 명이 회사를 끌고 가는 거야.
그 몇 명은 무슨 죄냐고...
일 잘하는 죄, 일 안 되는 꼴을 가만 앉아서 못 보는 죄, 쓸데없이 성실하고 필요 이상 책임감이 투철한 죄, 일 좋아하는 죄.
나는 그런 죄인이 되기 싫은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모여서 사는 게 세상이지. 학교는 그래도 순한 맛일걸. 앞으로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너도 늘 좋은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 어떤 맥락에서는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상일 수도 있어.
으으…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건 너무 어려워. 나는 돌멩이가 될 거야.
지금부터 돌멩이라고 생각해. 너희는 싸워라. 나는 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