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부모, 돌봄을 다시 정의하다
한참 더웠을 때 딸과 남편이 왔다. 엄마는 누워있고, 좁은 집에 사람은 많고, 에어컨은 없고, 냉장고 하나가 고장 났고, 환자도 있고 오랜만에 딸과 남편도 왔으니 뭘 좀 차려내겠다고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요리(무려 가지탕수육)를 했고, 밥을 차려냈다.
밥 먹어!(잘 차려놓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근데 엄마,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어?
밥 먹으러 온 딸이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내가? 그랬나?
딸에게는 이렇게 말해놓고, 뒤돌아서서 속으로 또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떻게 화가 안 나!
처음엔 더워서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위 탓만은 아니다. 최근에 화가 많이 나 있는 게 맞고, 나도 내 안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고,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말투와 행동을 보면 아빠나 남편도 이미 눈치챘을 텐데, 차마 말을 못 했을 것이고, 용감한 딸만이 나에게 물었던 것이다. 부모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자식 말은 그러기가 힘들다. 이제 내가 대답할 때다. 화가 나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첫 번째 노력이 배신했다는 생각때문이다. 나는 내가 뼈 빠지게 노력하면 엄마가 좋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슬슬 화가 났다. 엄마 얼굴을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바닥을 향하고 있는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엄마 얼굴만 봐도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엄마는 왜 이 모양인가? 노력하면 할수록, 시간이 갈수록 화가 났다. 그런데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이걸 인정하지 못했던 거 같다. 특히 돌봄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 돌봄이야말로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다. 진인사대천명,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하는 게 돌봄이다.
두 번째 부모에 대한 잘못된 정의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지만, 나는 정말 엄마에게 받기만 했다. 엄마는 소위 내가 속을 썩이는데도 무한히 참고 기다리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온전히 엄마를 돌보는 신세가 됐다. 내가 참고 기다리고 지지해야 하는 위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엄마를 잘 돌보다가도 갑자기 엄마가 왜 이렇게 누워만 있어, 빨리 일어나서 나 밥 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엄마에게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내가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부모에 대한 정의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한히 주는 존재이지만 반대로 받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늙고 병들고 죽음에 가까이 갈 때 마땅히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엄마가 그런 존재가 된 것을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
세 번째, 완벽한 돌봄이라는 환상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돌봄에 소질이 없다. 딸 하나를 낳고 그걸 바로 깨달았고, 더 이상 낳지 않았다. 하나를 키우면서도 이렇게 절절매는데, 그 이상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아를 완벽하게 잘 못할 것 같으니까 더는 낳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가정에는 문제가 있다. 돌봄에는 완벽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모든 변수와 상황을 나가 통제할 수가 없다. 완벽할 수 없다. 엄마를 깨끗하게 씻기고 구석구석 닦고 말리고, 로션과 크림을 정성스럽게 발랐는데, 엄마가 소변을 보면 나는 화가 났다. 왜일까? 내가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안 돼서 그렇다. 안 그러더니 오늘 왜 그래? 왜 하필 다 씻고 난 지금 그래? (속으로는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나?라는 생각도 했다) 다시 씻기고 말리고 하면 식사시간도 늦어진다. 내가 정한 시간표대로 진행되지 않아 화가 났다. 똑같은 걸 또 하려니 지치고 힘들고, 그냥 대충 씻길까, 그냥 물티슈로만 닦고 말까, 로션은 바르지 말까, 이렇게 되는 내 자신이 싫어지고 화가 났다.
돌봄은 상황에 맞춰서 그냥 되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하다가 힘들면 쉬어가고, 하다가 지치면 대충 하기도 하고. 정해진 대로 딱딱 해내고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느슨하게, 설렁설렁해야 좋다. 오늘도 엄마를 씻길 때 늘 하던 발가락 마사지를 스킵했다. 손등, 손목이 너무 아파서. 그동안에는 손목이 부러질 것 같아도 했다. 하면서 속으로 욕하고 겉으로 화를 냈다. 다시 생각하니까 화낼 거면 안 하는 게 맞다. 그거 한다고 갑자기 누워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거 안 한다고 엄마가 갑자기 죽는 것도 아니다. 정도껏 하는 게 맞다. 인생이 그렇듯 간병도, 돌봄도 하루이틀 하다 끝나는 게 아니니까. 길게 가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화내면서 화내지 말고 대충 하고 화내지 않는 게 백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