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눠 먹으라고 했는데
아침에 밭에 간 아빠가 둥근 호박 세 개를 들고 들어왔다. 어제도 두 개를 들고 와서 부지런히 먹었는데 또 호박이라니.
아니, 왜 갑자기 호박이 한꺼번에 열리는 거야?
내 말은 매일 하나씩 따서 먹어야지 호박을 아무리 좋아해도 하루에 세 개씩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원래 장마 끝나면 그래.
그러니까 왜 갑자기 그러냐고?
아빠에게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면 한참을 캐물어야 한다. 캐물어보니 이렇다. 장마 때는 땅이 질퍽하고, 풀이 무성해져서 밭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진다. 호박이 달려 있어도 잘 보이지도 않고, 풀을 헤치고 꺼내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장마가 끝나고 풀을 걷어내면 안에서 여물고 있던 호박이 한꺼번에 우르르 발견되는 것이다.
엄마는 자연에서 오는 것들을 다 좋아하지만 특히 호박을 좋아했다. 여름 밥상에 호박이 없던 적이 없었다. 우리 집에 놀러와서도 울타리에 호박을 심어놓고, 나는 호박 별론데 왜 심냐고 따지면 이웃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했다. 딱 이맘때 장마 끝나고 우리집에 놀러온 엄마가 호박 넝쿨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울타리 밖으로 뻗어나간 호박은 따지 않고 울타리에 잘 보이게 걸쳐 놓았다.
엄마, 그 호박들은 왜 안 따?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따먹으라고. 원래 호박은 이렇게 길에 오가는 사람이랑 나눠 먹는 거야.
나는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호박을 줄 수 있다.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라 호박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흐물거리는 비주얼, 물컹한 식감이 싫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좋아하니 하나두 개만 해먹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줘야지.
엄마가 호박 요리를 하는 걸 얼핏 봤던 기억을 되살려 호박을 얇게 저미고 소금에 절여 부들부들해지면 볶았다. 얇아서인지 금세 흐물거렸다. 비주얼부터가 비호감이고 젓가락만 닿아도 부서져서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다음 호박은 조금 도톰하게 썰어서 볶았다. 적어도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는 수준은 됐다. 그래도 호박이 호박이지 뭐.
냉장고가 고장 나서 정리를 하다가 냉동실에서 새우젓 통을 발견했다. 엄마가 호박엔 새우젓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도톰하게 썰고 새우젓 한 숟가락 넣고 볶았다. 중간에 하나를 집어 먹었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 맛있어서. 이래서 호박은 새우젓으로 볶아야 하는구나. 새우젓이 신의 한 수구나. 호박과 새우젓의 궁합은 환상이다. 맛의 차원을 다르게 만든다. 도대체 누가 이런 발견을 한 걸까. 새우젓은 호박에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맛이 날까. 새우들의 간지럼에 호박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단맛과 감칠맛, 세상의 모든 맛을 다 내놓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의무방어전처럼 해치우던 호박 요리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덜 익은 느낌으로 중간에 불을 꺼보았다. 그랬더니 식감이 미쳤다. 아보카도의 밀도에 파파야의 부드러움이 섞인, 이걸 아삭하다고 해야할지, 부드럽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적당히 아삭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환상적인 식감이 되었다. 엄마가 호박은 이웃들이랑 나눠먹는 거라고 했는데,내가 홀랑 다 먹어치우고 있다.
미친 둥근 호박볶음 레시피
1. 호박을 약간 도톰하게(휴대폰 두께로) 썬다.
2.팬에 들기름(들기름은 맛은 있는데 호박 색깔을 누리끼리하게 만드니까 깔끔하게 하려면 식용유)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고 살짝 볶다가 미리 썰어놓는 호박과 새우젓 반 스푼 정도(간 보면서 추가) 넣고 볶는다.
3. 조금 덜 익은 느낌일 때 불을 끄고 얇게 썬 파와 통깨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