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허리가 많이 좋아졌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을 90도만 돌려서 일어날 수 있고 욕조에 들어갈 때 욕조의 가장자리를 붙잡지 않아도 되고 허리를 굽혀 세수를 할 수 있었다. 신경질적인 통증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몸이 가뿐하지 않고 허리를 삐끗했을 때 먹었던 겁과 긴장은 여전히 내 몸에 상주하고 움직이는 일을 웬만하면 삼가고 있다.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엄마의 목욕이었다. 엄마의 목욕은 간병 중 가장 힘든 노동이다. 처음부터 최근까지 1년 동안 힘든 줄도 모르도 나 혼자 엄마를 씻겼고 가끔은 힘든 줄 알면서도 웬만하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혼자서는 더 이상 못할 거 같아서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허리에 문제가 생기고서는 엄마 목욕을 중단하고 물수건으로 마른 목욕만 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주말에 동생이 왔을 때 큰맘 먹고 엄마 목욕을 도와 달라고 했다.
성별이 다른 아빠와 동생과 함께 엄마의 몸을 함께 씻긴다는 것이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아 망설였지만 아픈 허리 앞에서는 한가한 감정일 뿐이었다. 아들 앞에서 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족 앞에서도 웬만해서는 살을 드러내지 않았던 엄마에게 수치스러운 일일까 생각했지만 잠시 스쳐가는 생각일 뿐 길게 고려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동생을 불러다 놓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자, 아빠는 먼저 들어가 있고 너는 휠체어를 욕조 안으로 서서히 밀어. 이제 휠체어를 고정시켜. 아빠가 엄마를 일으키면 넌 재빨리 휠체어를 빼고 엄마를 함께 잡아. 넘어지지 않게.
여기까지 동생은 말귀를 잘 알아들었다.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엄마 다리를 이쪽으로 돌려서 목욕 의자에 앉혀.
동생이 쪼그려앉아 엄마 다리를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엄마 다리는 바닥에 박혀있는 전봇대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를 안고 있던 아빠가 엄마를 부둥켜안고 몸을 돌려 목욕 의자에 앉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빤 가만있어. 그렇게 힘쓰지 말라고. 그러다 아빠까지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다리가 안 움직이면 억지로 그러지 말고 일단 의자에 앉혀놓고 자세를 잡아.
차마 동생에게 엄마 기저귀를 벗기라는 말을 못 해서 욕실 문턱에 서 있던 내가 엄마 다리로 뛰어들어 재빨리 찍찍이를 잡아 뜯고 엄마를 앉힌 다음 기저귀를 안 보이는 데로 치웠다.
이제 웃옷을 벗겨.
아빠와 동생이 한쪽 팔씩 붙잡고 낑낑거리며 옷을 벗기니 엄마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갑자기 동생이 엄마 젖을 제대로 못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안 돼 엄마가 녹내장 수술을 하는 바람에 동생은 젖을 물지 못했고, 엄마 품에서 떼어 놓기도 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유난히 울어대서 방음이 잘 안 되던 동네에 많이 우는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 삼 남매 중에 막내 동생은 백일사진, 돌사진이 없었는데 엄마의 변명은 하도 울어서 사진관에 데려갔지만 사진을 못 찍었다고 했고 우리는 아무리 울어도 사진 한 장을 못 찍냐며 주워온 아이인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삼 남매 중 공부도 못 해서 막내 대접도 못 받고 자란 동생은 취직한 후 잔뜩 취해서 자긴 애정결핍이라고 나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엄마 몸에 대한 강한 결핍이 있을 동생을 엄마 몸으로 초대했고 엄마 몸을 보는 동생의 기분은 알 길이 없고 차마 물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유독 막내를 품어주지 못한 엄마의 몸은 추운지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엄마, 추운가 보다. 엄마 몸에 따뜻한 물을 뿌려.
동생은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만져가며 온도를 맞추려고 애썼지만 적정온도를 찾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나는 큰 수건으로 엄마 몸을 덮어놓고 소리쳤다.
야! 빨리!
동생은 물이 뜨거운 것 같다며 샤워기를 엄마 몸에 가져다대지 못했고 그 사이 냉수 쪽으로 너무 틀었는지 아빠는 물이 차갑다고 했다. 두 남자는 갓난아기 처음 목욕시키듯 어쩔 줄 몰라했다. 결국 내가 온도를 맞추고 샤워기를 동생에게 건넨 다음 잡고 있으라고 했다.
아빠가 엄마를 씻기는 동안 너는 엄마 몸에 물을 계속 뿌려줘.
염색을 포기했는지 언제부턴가 반백의 머리가 된 아빠는 평생 막일을 한 거친 손으로 머리를 먼저 감긴 다음 축 늘어진 가슴, 층층이 접힌 뱃살, 그리고 다리 사이와 등 뒤로 분주하게 오가며 엄마에게 비누칠을 했다. 동생은 아빠 손이 가는 방향으로 샤워기를 갖다 대려고 했지만 동작이 굼뜨고 어설펐다. 좁은 욕실에서 세 명이 자리를 잡기가 어려워 자꾸 부딪히면서 굳이 셋이 이럴 일인가, 세 명씩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셋이 필요한 때가 찾아왔고 또 그때만 지나면 한 사람은 멀뚱멀뚱 서 있게 되었다.
아니, 이게 뭐여. 한 사람 목욕시키는데 세 사람씩이나 달라붙어서…
엄마도 기가 막힌 지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웃자 아빠도 따라 웃었다. 동생은 웃지 못했다.
엄마 생각해도 기가 막히지? 남편 아들 딸 다 달라붙어서 목욕시키고 왕비가 따로 없네.
아프기 전 엄마는 왕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엄마는 우리 가족의 종같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한 것은 많아도 우리가 엄마를 위해 뭘 했던 기억은 잘 없다. 평생 엄마의 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부려먹지는 않았지만 엄마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부려먹고 학대하는 것을 방조하고 방관했다. 그런 공범 셋이서 합을 맞춰보는 일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엄마 몸을 씻기는 일이 될 거라고는 더욱 상상해보지 않았고. 엄마를 함께 씻기는 일이 뒤늦은 참회의 의식이 된 것 같아 슬프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한편 함께 뭐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목욕을 끝내고 허리가 뻐근함이 찾아오자 이 참회의 길은 얼마나 가야 할까, 그게 너무 길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참회의 마음을 배반한 것 같아 여러 생각이 스쳐 간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