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쿵
자두 하나를 보고도 감탄한다면 너는 시인이다
앙드레 지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틀림없는 시인이었다. 엄마는 뭘 보던 아니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뭘 만지던, 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안 보여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묘사해서 안 보인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감탄하면서 말하곤 했다. 시작은 어머나 세상에…였다.
딸이 태어났을 때 머리통을 만지더니 어머나 세상에 어쩜 깎아놓은 밤처럼 반들반들 윤이 나고 빛난다고 했고 발을 만지더니 어쩜 발이 맨질맨질 보드랍고 새의 깃털처럼 날렵해서 날갯짓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철마다 감탄할 일이 너무 많았다. 봄에는 내가 뜯어다준 애쑥 한 무더기를 만지며 폭신폭신 엄마가 만들어준 목화솜이불 같다고 했고 여름에는 둥근 호박을 만지며 동글동글 반지르해서 마음까지 둥글어진다고 했다. 가을에 대봉시는 익어서 말랑해지면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고 했고 겨울 서쪽 하늘이 물들어 가면 밥 하는 것도 까먹을 만큼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어릴 때 그땐 엄마가 시력이 있을 때였는데 밥 하다가 해지는 거 보라고 나를 불러대곤 했다. 매사, 아니 매 순간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밭에 모과가 떨어져 주워왔다. 엄마에게 주려고. 엄마가 분명 감탄할 테니까. 모과를 쥐고서는 감탄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모과를 코에 갖다 대고 모과 향에 감탄할 테니까. 모과를 엄마 손에 쥐어주었다. 쿵. 엄마가 모과를 떨어뜨렸다. 다시 모과를 손에 쥐어주고 손을 억지로 오므리면서 말했다.
엄마 만져 봐. 모과야.
엄마는 모과, 라는 소리에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또 쿵, 하고 떨어뜨렸다.
엄마, 모과가 추락했어.
추락이라는 말이 웃겼을까, 엄마가 힘없는 소리로 짧게 웃었다. 모과가 두번째 떨어지는 순간 내 마음은 진짜 추락한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시인으로 살아온 엄마는 모과를 쥐지도 못하고 모과에 감탄하지도 않았다. 시인이었던 엄마는 이미 저 멀어져가는데 나는 자꾸 멀어져간 곳을 쳐다보게 된다. 앞으로 내 마음은 몇 번이나 더 쿵,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