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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Dec 04. 2024

치매 아내를 둔 남편입니다 1

고구마를 굽는다

문을 열고 나와 걷는다. 아내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다 말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늘 영서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백미 취사를 시작합니다


새색시처럼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주방으로 가서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영서 일어났어


나는 아내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내는 영서,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뜨려다 말았다. 엉겨 붙은 눈곱이 아내의 몇 안 되는 자유 의지를 방해하고 있었다. 물수건으로 눈곱을 녹여 떼내고 아내에게 말했다.


다시 눈 떠 봐.


아내는 눈을 힘껏 치켜올려 쌍꺼풀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금세 눈꺼풀이 셔터처럼 스르르 내려앉았고 게슴츠레한 실눈이 되었다.


영서는 허리가 아프다며 방에 들어가 누워서는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당연히 영서와 함께 아내를 씻기는 일도 중단되었다. 대신 나는 물수건을 빨아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병원에 가보라고 성화를 해도 듣질 않는다. 영서의 고집은 말릴 수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하라 그런다고 하는 애도 아니고 하지 말란다고 안 하는 애도 아니다. 영서가 하는 대로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 간병 때문에 휴직하고 내려온다고 할 때도 펄쩍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꼭 말하는 대로 하는 애여서 영서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우리 부부는 늘 긴장하곤 했다. 가끔 화장실 가러 나왔다가 들어가서는 통 나오지 않다가 어제는 한번 나왔다. 고구마를 구웠는데 그 냄새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는지 슬금슬금 나와서는 뭐 타는 냄새가 나는데? 하면서 고구마 하나를 먹고 들어갔다. 저거라도 먹여서 다행이었다. 영서가 아픈 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구마 굽는 것뿐.


영서만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영서가 허리가 아픈 건 아내를 씻길 때 몸에 힘이 들어가서다. 얼마 전부터 혼자 아내를 씻기는 것이 힘들었는지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그렇게 아내를 함께 씻긴 지 며칠 만에 허리에 말썽이 생긴 것이다. 영서는 아내를 씻기면서 자주 씩씩거렸고 조심성이 없었다. 아내에게 이래 봐라 저래 봐라 하면서 구박을 하면서 빨리 끝내고 싶은지 서둘렀고 또 서툴렀다. 저 놈의 성질머리. 엄마한테 그러지 마라, 그 한 마디를 못하고 딸이 하는 대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은 아내의 입장보다는 영서가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영서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싶을 때가 많다. 나도 영서에게 자주 혼이 나는데 영서에게 미안해서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좀 서운하고 비참한 생각도 든다. 우리가 따로 떨어져 살고 가끔 봤을 때는 전혀 없었던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나 혼자 아내를 돌보는 것도 솔직히 자신 없다. 나도 집에서 꼼짝없이 아내만 보고 있으라고 하면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영서가 뭐라 하던 같이 있어주는 게 고마워서 가만히 있는다.


친구들은 언제까지 딸을 이렇게 잡아둘 거냐며 요양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혼자 그렇게 보낼 수 없다. 아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치매는 물론 보이지도 말도 못 하는 사람을 거기에 갖다 놓고 내가 잠이나 잘 수 있겠는가. 나는 조금 이기적이라도 아내를 집에서 돌보고 싶다. 물론 이렇게 욕심을 부리다가 영서를 망치는 거 아닌가 매일 고민이 된다.


무슨 고춧가루 타는 냄새가 집안에 퍼지더니 식탁 위에는 빨간 두부찌개가 놓여있었다. 영서가 아픈 동안 먹었던 사골곰탕이 지겨웠던 터라 더욱 반가웠다. 두부찌개는 아내와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우리는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큰 욕심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 우리에게는 소박한 행복마저 허락되지 않는가. 잠시 원망과 좌절이 스쳐갔다. 영서가  엄마만큼은 아니어도 이제 음식을 곧잘 한다. 영서 몸이 괜찮은지 아내 밥을 먹여주고 오랜만에 나도 편하게 맛있게 밥을 먹었다. 이제 고구마를 구워야겠다.


엄마를 돌보는 아빠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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