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하루에 만화책을 2,30권씩 보던 소녀는 커서 만화를 못 보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만화 카페를 가자고요? 자료 연구하러 가자는 건가!
컬러링북을 하자고요? 왜 남이 그린 스케치에 공짜로 채색을 해줘야 하나?
피포 페인팅?! 그건 또 무슨 신종 고문이야.
인터넷에 유명한 유머가 돌아다닌다. 시인들이 술자리를 가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노을이 예쁘다고 누가 읊조렸는데 일 얘기하지 말라고 옆에서 핀잔을 주더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한테도 만화 얘기는 일 얘기다. 만화만 보면 노동하는 거 같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머리가 아프다. 몸도 아픈 거 같다고 하면 오버이려나. 웹툰 작가가 직업이니 만화(웹툰)가 일인 게 맞지. 넓게는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들과 그림 자체가 다 그러하다. 내겐 취미가 될 수 없는 것들이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였던 사람으로서 성인 초반까진 만화는 취미였다. 하지만 업으로 삼고 나선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누군가는 취미가 일이 되었으니 즐기며 할 수 있어 좋겠다지만 모르는 말씀.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야 즐겁지만 그토록 사랑하던 만화를 100% 순수한 재미로써 느낄 수 없게 됐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책상 밖에서 만나도 책상에 앉은 것 마냥 나도 모르게 분석하고 공부한다.
‘첫 시작에 사건부터 터트리는구나. 아, 저게 복선이구나. 개연성은 이런 식으로 처리했구나. 이런 식이라면 엔딩은 저렇게 끝나겠지.’
‘인물 구도가 좋은데? 연출은 이렇게 했구나. 소품들 좀 봐. 색 조합이 개성 있다.’
그나마 영상물들이 부담감이 덜해 자주 보는 편이지만 이쪽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다. 웹툰에 도움이 되도록 스토리를 공부하겠답시고 시나리오 수업을 듣고 난 후부턴 더욱.
즐겁기만 하던 영화야, 드라마야, 안녕. 잠시 애도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묵념-
그래도 만화를 좀 더 다채롭게 다 각도에서, 자세하게, 즐기게 되었다고 하면 나으려나.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농담으로 돈 받는 거 아니면 절대 일 외의 그림은 안 그린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어쩌다 삘 받으면 그릴 때도 있긴 하니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리라. 만화, 그림은 예전처럼 못 즐기지만 예술 계일인 공예 쪽에서 재미를 붙이려고 하고 있고, 또 악기도 건드려보고. 다른 것들을 찾아보고 있으니 내 심신안정엔 괜찮을 거다. 꼭 취미가 만화여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아쉽지만 인정하자.
아, 첨언한다. 나한테 취미로 그림 추천하는 건 넘어갈 수 있는데. 직장인 친구들, 일 얘기할 때 나 만화 얘기한다고 뭐라고 하지 맙시다. 디테일한 이야기야 물론 작가들하고 하지만 어느 정돈 괜찮잖아. 나도 일 얘기 껴줘.. 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