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잃었는데,
나는 무얼 잃고 대사를 쓸 수 있게 되었나.
매일같이 쓰는 대사. 썼던 거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잘 다듬어서 오타와 비문 없이, 상황에 맞게, 멋들어지게 만든다. 잘못된 부분을 찾게 되더라도 출판하지 않은 경우라면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 ‘고칠 게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노이로제처럼 괴롭히지만 수정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식당에서 인사 외의 대화를 하게 될 때보다 맘이 편하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몇 주고 몇 달이고 말을 않는 중에 유일하게 하는 말이 단골 식당에서의 인사다. 안 그래도 연약해진 성대, 두 마디 이상하면 목이 아파 코로나 시국에 민망하게도 잔기침을 뱉어내는데 인사에 이어 더 말을 시키면 참 곤혹스럽다. 거의 매일 가는 단골이지만 기습 공격엔 너무도 취약하다.
‘어, 발 다쳤네. 어쩌다 다쳤어요?’
‘예? 에..엉… 그게.. 넘어졌..’
대사를 쓰는 대신 목소리, 정확히는 언어구사 능력을 잃었다.
연재처의 담당 피디님께 톡이 올 때가 있다. 좀 있다 전화 괜찮겠냐는 언질이다. 전화를 하기 전에 예고를 해주시다니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경우는 좀 낫다. 어떻게 대화를 할 것인지 대사를 쓰고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가 있으니까. 근데 이 역시도 본 내용이 끝나고 번외 대화가 시작하면 내 머릿속은 패닉으로 치닫는다. 제발 ‘궁금하신 것 없나요.’는 참아주세요. 그건 항상 제 시뮬레이션 밖의 일인 것을요. 그때부터 나는 버벅버벅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어렴풋 궁금했던 것을 억지로 끌어올리는데 주어는 말했나. 시작과 맺음의 주제가 일관됐나 알 수가 없다.
아, 그거 말이에요. 어어어… 단어가 생각 안 난다. 펑!!
대화는 대사와 달리 리허설도 없는 생방송이다. 수도 없이 NG를 내고 집에 돌아와 세숫물에 얼굴을 담가도 거품이 되지 않는다.
문어 마녀님, 목소리를 가져갔으면 그로 인해 생기는 수치스러운 기억도 가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