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0대 여자가 강남 살고 느낀 점

by 보건소

‘왜 하필 그 아파트를 샀어?’

똑순이 둘째 동생이 대번에 물어본다. 집을 매수하고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말하니, 바로 반응이 온다.

둘째 동생은 나보다 똑 부러지고, 생활력도 강하다. 부동산도 빠삭해서 신혼 초 작은 집에서 번듯한 두 번째 집까지 차곡차곡 본인의 계획대로 넓히는 중이었다.

제일 욕 많이 먹는 아파트 사서, 그 아파트는 찍혀서 재건축이 어려울 것인데 다른 아파트도 아닌 그것을 샀느냐는 동생의 진심 어린 조언이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저지른 상태다.

나의 장점이자 최대 단점은 일단 저지르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친정집 특성은, 결단이 빠르다. 그런 점이 좋을 때도 있으나, 너무 앞뒤 재지 않고, 저지르니 뒷수습을 신랑이 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그래도 신랑은 나와 반대되는 면이 있어서, 차분하고 계산적이다. 내가 아무리 사고 치고 다녀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사실 든든한 신랑을 믿고, 자신 있게 일을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해도 신랑이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언니, 그 동네에서 버틸 수 있겠어?’

‘주차는….’

‘몰라, 그렇게 되었어.’

그렇게 동생은 바뀔 수 없는 상황을 판단하고 그제야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나는 왜 이 동네로 왔을까? 사교육을 열심히 할 생각도 자신도 없다.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 목표인 이 동네에서 솔직히 자신이 없다.

다만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환경은 있었다. 내가 능력이 된다면 아이들을 가장 안전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그런 동네에 잘 심어줘서 안전하게 키워야겠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시골 과수원을 하시던 아빠는 과감히 모든 걸 내려놓고, 광주광역시 대도시로 이사 왔다. 그 당시 우리에겐 광주는 엄청난 대도시였다. 어렸던 큰딸 손을 잡고, 교장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하자 교장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아버님은 광주에서 어떤 일을 할 계획입니까?’

‘아직은 계획이 없습니다.’

‘참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그때의 아빠가 지금 내 나이 이보다 어렸던 것 같다. 30대 중반 가장 청춘인 시기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큰딸과 그보다 어린 여동생 2까지 어린 줄줄이 딸 셋을 데리고, 아무 계획 없이 광주 대도시로 이사한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나 직장을 잡아둔 것도 아니고,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엄마 아빠의 인생도 참 드라마틱하다. 그런 아빠의 도전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을까 나도 결심이 서면 즉시 실행한다. 아빠를 닮았나 보다. 그렇게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포함하여 오랜 기간 행복한 생활을 한다.

그리고 두 번째 큰 환경변화를 경험한다.

엄마가 어느 날 저녁 말한다.

‘둘째가 대학을 서울로 감과 동시에 차근차근 서울로 이사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갑자기? 나는 여기서 친구들도 다 있는데?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엄마는 무슨 배짱으로 저러는 거지’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서울로 이사한다. 광주의 추억, 친구, 모든 것을 놓고 이사하던 그 날이었다.

광주 이모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며, 서울로 출발하던 엄마가 운전대를 잡고 울었다.

난 비장하게 엄마에게 한마디 했다.

‘운전하다 사고나, 차를 멈추고 울던지….’

갓길에 차를 세운 엄마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때 왜 따뜻하게 위로해 주지 못했을까. 장성한 자녀를 데리고, 연고지 없던 낯선 서울로 이사를 감행했던 그때 그분들의 나이가 40대 초반, 지금 내 나이 정도라 생각된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

‘너희들을 서울에 심어주려 이사한다. 너희들은 서울에서 뿌리내려 살아라. 그래서 내가 힘들어도 너희들 때문에 이사한다. 해외 나갔다가 와서 공항에서 다시 버스 타고 지방으로 내려오는 일이 제일 싫다. 너희는 서울에서 살아라.’


과수원 부엌에서 힘들 때마다 바가지를 부쉈던 엄마는 우리에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내가 7살 때 아빠가 빗자루가 부러지도록 나를 때렸다. 그때 내가 한숨을 푹 쉬었나 보다. 내 한숨을 본 그 뒤로 아빠는 다시는 우리에게 매를 들지 않았다.

한없이 자상한 부모님은 그들 인생에서 두 번의 큰 환경의 변화를 선택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지금 내가 이렇게 무모한 강남행을 감행한 것은 이런 부모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 옛날 많이 배우지 못하고, 넉넉하지 않았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더 좋은 환경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들의 힘듦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갔겠지.

문어는 알을 낳고, 알을 품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리고 알이 완전히 부화할 때까지 그 곁을 지킨다. 그리고 그녀는 알이 부화하면 자연으로 돌아가 물고기의 밥이 된다.

참 치열한 인생이다. 상어에게 쫓겨 다리 하나가 뜯겨 새하얗게 잘려도, 결국 새로운 다리를 생성해 내는 그 집념에 감탄한다. 그리고 결국 자연의 본능에 충실해 알을 부화시키고,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문어도 이럴지언데…. 나는 인간임에도 연체동물에게 배운다.

나는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강남에 심기 위해 이번 일을 저질렀다. 식물을 분갈이할 때 적절하게 어릴 때 큰 화분으로 옮겨야지 너무 커버린 후 옮기면 옮기기도 힘들뿐더러, 새로운 흙에 적응하기도 버겁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강남으로 심어주자. 너희들은 학창 시절을 강남에서 보냈고, 나중에 너희들의 친정집을 강남으로 만들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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