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동산 가서 절대 하면 안 되는 의외의 행동

by 보건소

그 해 뜨거운 여름, 그해 불덩이와 같은 부동산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집을 팔고, 넓은 집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가지고 있던 집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가격이 올랐으니 이제 우리 반반하게 살 집 한번 알아볼까 가 시작이었다. 그동안 신혼의 단꿈에 젖어 부동산의 ‘부’ 자도, 재테크의 ‘재’자도 모르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냥 얼마나 올랐나 가격이나 알아보려고 내놨던 집은 덜컥 고가에 팔려버리고, 그동안 모아둔 현금을 모으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저리 대출을 끼면 서울 어디든지 옮길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그동안 부동산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에게 갑자기 쥐어진 금액은 크고 넓은 선택지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몰랐다 넓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결정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다행히 나는 결단력과 실행이 빠르다. 그냥 더 좋은 집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즉시 서울의 가능한 모든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마포, 용산, 강남….

신랑과 나는 주말만 되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파트를 관찰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임장인 줄도 모른 채….

신랑의 기준은 명확했다. 40평 이상의 깨끗한 아파트 한 채, 또는 한강뷰가 끝내주는 아파트를 원했다. 나의 기준은 좀 달랐다. 앞으로 더 좋아질 아파트 혹은 핵심지의 작은 아파트 2채까지도 생각했다. 뒤로도 우리의 아파트 투어는 계속되었다. 황금빛 여의도 저녁노을 비경을 가지고 있는 산호아파트, 아이유가 산다는 첼리투스, 첼리투스 그 옆의 왕궁아파트는 우리끼리 용궁 아파트로 부르며 오갈 때마다 눈여겨보곤 했다. 그 후로도 용산에서 하이페리온, 트럼프타워 등 탐나는 집은 많았다.

다만 우리의 자금력이 달렸을 뿐이라.

날 좋은 일요일 오후 타워팰리스 38층의 양재천과 대모산이 보이던 그 집을 방문하여 본 순간 언젠가 한번 살아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입구부터 고급 호텔을 연상시켰던 타워팰리스의 경험은 강남 부동산으로 눈을 돌린 큰 계기였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자본으로는 살 수는 <BUY> 있지만 살 수 <LIVING>는 없었다.

한강뷰에 대한 로망을 가진 신랑을 설득한 것은 그 이후였다.

‘강남으로 가자. 용산의 끝내주는 한강뷰는 언젠가 꼭 한번 살게 해 줄게.’

인생의 가장 큰 선택 중 하나다. 전 재산 혹은 그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선택하며….

아무도 그 선택을 도와줄 수 없다. 집을 사든, 전세를 살든, 온전히 나의 책임이요 나의 몫이다.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기까지 시간이 흘러야 한다. 나무에 나이테가 하나 생기듯 나의 인생에도 변곡점이 새겨진다. 그 변곡점에 휘청거리기도 하나, 결국 적응하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렇게 신랑을 설득하여 강남으로 갔다. 그 해 뜨거운 여름 돈을 싸 들고 개포주공 1단지로 갔다. 부동산 두 군데를 들러 우리가 눈여겨봤던 그 매물 더 싸게 주실 수 있냐며 물어봤다. 부동산 두 군데에 서로 경쟁을 해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겠다는 알량한 심보였다. 강남 바닥에서 그것은 곧 화근이 되었다. 매수자가 많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즉시 호가가 2억이 올랐다. 난생처음 겪는 경험에 눈이 휘둥그레, 우린 그냥 단돈 몇만 원이라도 깎으려는 생각이었는데 일이 일파만파 커진 것이었다. 적군에 대한 파악이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들쑤시고 간 그 단지에는 단숨에 호가가 2억이 올랐고, 우리가 잠잠해지자, 2주 후 다시 가격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기는 강남이다. 그리고 이런 불장에 가격을 깎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위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고 해보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몰랐으리라. 생애 처음 제대로 된 부동산 구입을 정보도 없이 강남에서 시작했으니, 그 어리바리함은 어쩔 수 없었다. 강남 집주인을 얕잡아보고 큰코다친 것이었다.

며칠 뒤 개포주공에 매물이 있으니 와보라는 중개인 말에 급하게 주말을 반납하고 뛰어갔다. 집주인이 경기도에 사시니 계약서를 작성하여 경기도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뒷자리에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신랑과 대화를 했다.

‘아무리 우리가 처음이라지만 부동산이 아니라 이렇게 원래 매도자의 집으로 가서 계약하는 건가?’

경기도 매도자 집에 가니 매도자가 안쓰러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어린아이 둘을 달고 온 철없는 젊은 부부를 나이 지긋한 매도자도 놀란 눈치였다. 작성해 간 계약서에는 잔금 지급 일자가 3개월 뒤로 기록되어 있었고, 강남 부동산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매도자는 코웃음을 쳤다.

‘당장 1~2억 오르는 건 문제도 아닌데 3개월 뒤 잔금라니….’

매도자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계약서를 우리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지금 내가 드라마를 보고 있나?’

그렇게 개포주공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아이들만 신났다 그 집에서 맛있는 요구르트를 얻어먹었으니 말이다. 개포주공과는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너무 좋은 단지지만 우리와의 인연이 아니었다. 이런 개포주공의 경험은 나를 더 단단하게 했고 부동산의 굳은살이 약간 올라올 수 있게 했다. 당시 최고의 부동산 불장이고, 강남은 다른 곳과 판이 다르다.

칼을 뺀 이상 더 이상 늦출 수 많을 없을 터였다.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2달간 강남 부동산을 이 잡듯이 뒤졌다.

매물을 달라고….

하지만 강남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현금 동원력과 매물, 이사할 시기의 조율, 그리고 하늘의 운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합이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도곡동, 역삼동, 대치동, 개포동 등 눈을 감아도 지리가 훤하다.

퇴근 후 차를 놓고, 바로 지하철을 타고, 강남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폭풍우가 치는 비바람에도 쏘다니다가, 직장 동료가 늦은 시간 아직도 집에 안 가고 있는 나와 통화하다가 한마디 한다.

‘요즘 사업 하세요?’

인생의 사업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끝도 모르는 부동산 불장에 매도를 먼저 하고, 매수를 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사실 그때 매수를 먼저 하고 매도해도 가능했던 분위기였지만, 선매도 후매수는 웬만큼 간이 크지 않은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고, 그 또한 나도 자신 없다.

생전 처음 본 부동산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미도아파트 매물 있나요?’

30분 후에 1층 매물 4팀이 보러 갈 건데 같이 가라 한다. 그렇게 나까지 5팀이 줄줄이 기차처럼 1층 매물을 보러 갔다.

우리가 나오니 또 다른 부동산에서 대 여섯 팀을 끌고 들어온다.

집주인은 거실 한 켠에 앉아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었고 매수자들이 집안에 들이닥쳐 여기저기 들춰봐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부동산 사장님 말씀이 집주인은 이번에 건물을 사서 이 집을 파는 거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대단한 젊은 여자분이다. 그 건물주의 아파트가 머릿속을 맴돌아 다음 날 아침 전화로 매수 의사를 밝히니 벌써 팔렸단다.

아파트를 구매하며 많은 이야기를 만난다. 매도자 매수자, 대기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다. 다들 최선의 선택을 하며, 두려운 도전을 이어간다.

그중엔 만족하는 이도 있고, 아쉬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두려워서 도전조차 하지 않는 이도 있다.

어떤 것이 나쁘다 좋다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저 각자의 삶에서 비릿한 땀 냄새를 풍기며 부지런히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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