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 쓰러져간다 - 강남아파트 실체

by 보건소

'졌어.'

신랑이 퇴근하자마자 울상이다. 그리곤 침대에 털썩 누워 버린다.

무슨 일이지? 회사에서 안 좋은 일 있었나? 신랑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어본다.

'왜 그래.'

신랑은 말없이 아파트 단지 네이버 카페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이번에 새로 인테리어를 막 마친 입주자가 자신의 집의 변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가 큰맘 먹고 인테리어를 시작했을 때 이 집에서 10년은 너끈히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금을 바를 수는 없는 터, 한정된 예산 안에서 어떻게 하면 최신의 기법을 화려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 장장 6개월을 신랑을 머리를 싸맸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인테리어 전문가 도면 프로그램을 익혀. 줄자를 들고 다니며 디자인을 했다. 화장실을 2개로 쪼개고, TV 장을 짜고. 주방의 싱크대가 작으니 'ㄷ' 자 형태로 만들고, 고급 수전을 들여서 조금 더 디테일에 신경 썼다. 냉장고 장을 새로 디자인했다. 무몰딩과 라인 조명까지, 최신 유행하는 인테리어 기법을 모조리 섭렵하고 그렇게 우리는 인테리어를 시작하였다. 막상 시작하려니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화장실을 2개로 한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답답했다. 그렇다고 남의 집을 막 들어가서 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과정 하나하나를 신랑은 사진을 찍고 네이버 카페에 올렸다. 나는 영상을 남겨 아쉬운 부분을 기록했다. 도면을 공개했다. 사람들이 질문했고, 답을 달며 그렇게 분주히 인테리어가 끝났다.

인테리어를 마치고, 우리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거실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리고 스스로 자부했다. 우리가 노력해서 만족한 집이 나왔다. 몇몇 상황에 부딪혀 못한 것도 있지만, 우리가 가진 능력에서 최대치의 결과가 나왔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사람들의 축하가 줄을 이뤘고 그렇게 우리는 집에 들어갔다. 그 후 우리 집을 롤모델로 한 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그리고 점점 나아졌다. 가끔 들어가 보는 카페에서는 우리 집과 너무 흡사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렇게 'ㄷ'자 주방과 거실장 화장실 나누기 등을 그 뒤로 많이 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이 아파트 인테리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인가.

급기야 오늘은 신랑이 보여준 인테리어에서는 '우리가 졌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들어진 내부가 가득하였다. 그 사진들에는 우리가 당시 공정으로 어려웠던 라인 조명, 화장실 파티션 등 신랑의 못다 이룬 꿈이 가득한 인테리어가 펼쳐져 있었다. 기능적인 면을 최우선으로 하여, 다시 말하면 바퀴벌레 군대를 막기 위해 더 나은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밖에 없던 우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런 점마저 보완한 집들이 나온 것이다.

‘우와 여기가 그 오래된 아파트 맞아?’

사람들의 놀란 반응들이 쏟아져 나온다.

‘겉은 쓰러질 것 같은데 안은 딴 세상이네.’

맞다, 우리 아파트는 겉은 다 쓰러질 것 같다. 난간은 삭았으며, 아파트 밖에 무심히 내민 에어컨 실외기는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처음 이사를 결정하고, 이렇게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 인테리어를 앞두고 앞이 막막했다.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그동안 자금을 다 끌어 쓴 터라 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신생 인테리어 업체에게 맡기자니 돈이 비싸고, 게다가 40년이 넘은 아파트의 배관은 어렵기만 한 난제였다.

인터넷을 뒤지고, 디자인 도면을 신랑이 직접 그리면서 힘겹게 인테리어를 해나갔다.

첫날 철거 및 바닥 공사, 새시, 베란다 창틀 교체 및 도배까지. 모든 과정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지만 결국 정보 부족으로 놓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누가 작정하고 말해주지 않은 이상은 절대 알 수 없는,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경험하다 보면 이미 인테리어는 진행되어 있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후회의 순간이 많았다.

기존에 있던 벽지를 다 떼고 걸레받이를 붙여야 하는데. 기존의 벽지를 완벽히 제거 못 하고 걸레받이를 고정했다. 결국, 걸레받이 안쪽으로 들어간 40년 묶은 벽지는 영원히 빛을 못 보고, 그렇게 파묻혀 갔다.

벽이 휘고, 화장실 작은 것을 2개로 나누면서 우리가 아쉬웠던 점을 사진을 찍고 글로 그리고 영상으로 그때그때 남겼다. 분명 누군가 또 이렇게 들어와서 인테리어를 할 텐데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철거할 때 주의사항, 도배할 때 주의사항, 바퀴벌레 퇴치 특급약 등등

한 달여만의 긴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되고 동시에 집 인테리어 영상이 같이 마무리되었다. TV장 테이블등 모든 정보를 나누며, 다음 사람들은 조금 더 수월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의 바람대로 사람들은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수월하게 인테리어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렸다. 그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였으며,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뻤다. 급기야 우리 집보다 더 멋지게 인테리어 한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몰라보게 말끔해진 다른 집의 인테리어는 우리가 이미 해놓은 것에 더욱더 발전하여 눈부시게 보였다. 그리고 누가 봐도 우리 집보다 예쁘다.

우리의 정보를 발판으로 발전하는 사람들과 예쁜 집을 보니 부러우면서 기뻤다. 우리가 아쉬웠던 점, 못했던 점을 솔직히 말하니, 그대로 수정하여 더 멋진 결과물을 탄생시키는구나,

결국, 한 동네 사는 사람이 잘 되면 좋지 아니한가. 비록 10년 후에는 아파트가 부서지더라도 우리의 수고와 노력은 생생히 살아남을 것이다.

부자는 자신의 지식 사업으로 성공한 비법을 하나도 아낌없이 내어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도우며 즐거움을 얻는 것 같았다. 최근 켈리 최의 고백에 따르면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우며 스스로 발전하는 과정 중에 찾는 것이라 했다. 더 이상 일 안 해도 될 만큼 부자인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도움을 윈윈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양의 철학에서는 상생이라 한다. 나의 도움이 우주를 돌아 돌아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 이럴 때는 동양의 철학이 훨씬 기품 있고 아름다운 것 같다. 멋진 부자는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마음껏 나누더라.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으니 내가 잘할 수 있는 재능을 언제든 열고 공유하고 싶다. 멋진 부자는 자신의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키운다.

부의 추월차선에서 엠제이 드마코는 내가 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이라면 돈은 자석처럼 달라붙는다고 말한다.

내가 세상에 내놓는 의미 있는 것, 그것을 발견하고, 온전히 내놓을 때까지 나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 기술을 공개했다. 일급비밀로 기술을 보유하는 다른 회사와는 사뭇 다른 행보이다. 그는 인류와 지구를 위해 결국은 전기차로 전환되어야 하고, 경쟁자를 양성함으로 결국 더 나은 발전을 위함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기차 기술을 공개해도 결국 그가 세계 1등이라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우리는 일론 머스크의 역량이 안되나 보다. 인테리어 공개해 열었더니, 다들 더 많이 발전해 버린다. 아파트 외관은 다 쓰러져가는 집이지만 안은 눈이 휘둥그레지게 깨끗해진 집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아파트 외부도 차곡차곡 정비 중이다. 냉수, 온수 배관 교체를 하고, 주차장 바닥을 새로 점검했다. 느리지만, 진행 중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지금 우리 아파트는 고치 상태이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상태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죽은 상태가 아니라 고치 상태이다. 움직이진 못하지만, 안에선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고치를 뚫고 언젠가 화려한 나비의 날개를 펼친 순간을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다. 고치에 갇혀 죽을지, 고치를 뚫고 재탄생해 멋진 자태를 보여줄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 아파트의 눈부신 날개가 펼쳐진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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