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남에 산다. 누구는 부러워하지만 나는 그냥 사는 거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기름값 아까워 지하철을 타고, 그마저 늦을까 봐 열나게 뛰어간다. 시장에서 감자 3개에 5000원이라며 미쳤다는 어떤 아주머니의 말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우아한 강남 아줌마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마트의 시금치가 더 싼가 한 번 더 둘러본다. 그리고 나도 내일부터는 저 아주머니처럼 장바구니 들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제 신랑 다운덕 재킷을 보았다. 6년 넘게 입어서 소매는 해어지고 가슴 부분 장식은 다 벗겨졌으며 모자 아랫부분에서 솜이 퐁퐁 빠져나온다. 지하철에서 내 옆에 않은 노숙인의 옷도 그보다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진 점퍼는 이사 기간, 인테리어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했던 역사이다.
‘자기야, 우리 이사도 했는데 옷 한 벌 사 입자.’
매번 겨울 점퍼 검색만 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이사하고 고생했으니 드디어 옷 한 벌 사려 했으나, 신랑 왈
‘벚꽃 날리는 봄에 이월상품으로 겨울 패딩 사자.’
그렇게 그 해진 겨울 점퍼는 우리와 같이 또다시 한해를 넘겼다.
금난새 지휘자의 턱시도가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다. 겉은 반지르르한 턱시도지만 팔 안쪽의 안감이 유독 다 너덜너덜하게 해져있다. 수만 번의 지휘에 마찰이 생겨서 옷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옷에는 그분의 노력과 역사,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발레리나 강수지, 축구선수의 박지성의 발도 같지 않을까.
드디어 다음 해 여름 이월상품으로 신랑과 함께 겨울 재킷을 샀다. 그동안 겨울옷을 살 정신도 없었고, 돈도 없었고...
이제 번듯하게 이사했으니 노숙자 옷을 벗고자 새 옷을 큰 맘먹고 구매한 것이다. 그전에 입었던 옷은 락스 청소에 얼룩이 지고, 인테리어 공사판에 먼지가 묻고 바닥에 뒹굴고, 소매 안쪽은 헤어져 솜이 퐁퐁 나오는 상태였다.
모나미 볼펜을 알뜰히 사용하고 더 나오지 않았을 때 나는 자랑스럽게 쓰레기통에 버리며 안녕을 고한다. 작은 볼펜이지만 본인의 의무를 충실히 다했으며 나는 주인으로서 그를 알뜰히 사용했다는 그 만족감이 있다.
새 재킷을 샀으니, 해진 옷을 버려야 하는데 아직도 그 옷은 옷장에 걸려있다.
오늘은 버려야지
오늘은 버려야지
생각만 하지 좀처럼 버릴 수가 없다.
그 옷에는 그 부동산을 헤집고 다닐 때부터 치솟는 집값에 살 수 없었던 우리의 한과 뜨거운 여름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데리고 백방으로 뛰던 노력과 계약 파기된 날의 눈물과 서울 하늘 아래 우리 집은 없는가의 한숨과 그리고 인테리어 먼지 구덩이를 함께 뒹굴며 지냈던 전우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그 옷을 놓아주려 한다. 꺼내 놓고, 잠시 고마움을 표한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보내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고맙다. 그동안 날 지켜줘서
고맙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지켜줘서
고맙다. 이제는 푹 쉬렴.
오래된 친구와의 이별식을 그렇게 준비한다.
오늘은 일요일,
목이 아파서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신랑이 집에 누워 있으면 안 된다며 일터로 나간다.
대출이 많으니 하루라도 벌어야 한다며….
신랑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