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액으로 아파트 내 집마련 방법

by 보건소

신랑이 아파트 경매를 말한 건 부동산 임장을 한창 할 그즈음이었다. 비싼 부동산을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사겠다는 생각에 경매물건까지 날마다 확인했다. 법원에 경매물건을 확인하고 입찰하기는 말은 쉽다. 쉬는 날 남편과 법원을 찾았다. 생전 처음 가본 법원, 처음 보는 광경, 처음 보는 사람들….

어느 불장이나 마찬가지지만 경매 또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며 분주히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근엄한 판사님 앞에 놓인 함에는 로또 번호를 넣듯 사람들이 하나 둘 서류를 넣는다. 대학 입시 눈치작전과 맞먹는 열기이다.

어떤 아줌마가 전단지를 내 옆구리에 푹 찌른다. 그리고도 몇 장을 더 받았다. 신랑과 나는 그분들을 대출 이모라 부른다. 누가 봐도 초짜 티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한다. 허리를 펴고, 눈빛을 강하게….

'이런 곳은 취미로 자주 드나드는 곳이야.'

'주눅 들지 않게 걷는다.'라며 주문을 건다.

그리고 도망치듯 법원을 빠져나온다. 신랑이 원하는 강남의 아파트 경매 물건을 확인하고, 그 집이 어떻게 생겼나 주말에 확인했다. 신랑은 본인이 쏙 마음에 들었나 보다. 서울 전역을 떠돌며 아파트 투어를 하던 어느 날, 경매 물건이라며 역삼동 아파트를 이야기한다. 차를 타고 아파트를 지나 보니 깨끗하고 학군 좋고 병원도 가깝고 무엇보다 새 아파트여서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막상 경매를 하자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경매 사무실에 문을 두드린다. 신랑이 원하는 물건을 말했으나 우리 눈에 좋으면 다른 사람의 눈에도 좋았으리라. 우리가 마음에 들어 하는 그 물건은 경매 당일 날 번번이 취소되었다. 오전에 법원에 갔다가 매번 신랑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낙찰된 물건은 거의 실거래에 가까운 금액에 결정되었다. 신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누가 경매물건을 실거래가에 낙찰받아! 그럴 거면 부동산 가서 사야지.'

경매라고 싸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가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사실 불장일 때 대부분의 좋은 물건은 실거래와 비슷한 수준으로 낙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매의 세계도 참 신비하다. 법원에 도착하는 순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치열한 눈치 보기에서 어른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체험한다. 그렇게 경매의 강렬한 추억은 짧게 끝났다.

두 번의 쓰라린 부동산 경험을 했다. 내가 사고 싶어 하는 매물은 다른 사람도 탐낸다. 좀 더 민첩해야 하고 좀 더 빨라야 하고, 좀 더 조용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이자 깨달은 바이다. 비장한 마음을 새긴다. 짧지만 그래도 이 바닥 몸으로 경험을 쌓았다.

마지막 강남 아파트로 간다. 즐비한 부동산을 한 바퀴 돈 다음 한 곳에 비장하게 들어간다. 내 적진으로 들어갔으니, 말머리라도 잘라 나오리라는 다짐을 한다. 들어가자마자 다소곳이 인사하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낮고 간결하게 말한다.

‘집을 살 것이니, 매물을 달라.’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부동산 중개소 사장님도 고객이 오면 이 사람이 진짜 살 사람인가, 그냥 물어보기만 하는 사람인가 쯤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사기로 확실히 결정했다면, 나의 자금과, 잔금까지의 기간, 원하는 계약조건 등을 미리 정확히 말해야 한다. 부동산에 아침 8시에 들어가서 밤 8시까지 기다렸다. 다른 부동산은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강남 여기는 판이 다르다. 다른 곳에 가봤자 또 호가만 들쑤시겠지. 이미 경험이 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그동안 경험을 살려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빨리 치고 빠진다. 부동산 중개소에 나와 다른 곳을 가지도 않고, 다른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부동산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집 나간 임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기약 없는 약속마냥 그냥 기다렸다. 그 당시 강남에 매물은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매물을 구하느라 정신없었다. 나온 매물이 없으니, 일일이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부동산에 협조를 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첫날은 각오했지만 허탕이다. 실망했지만 더 되돌릴 수 없다. 뒤로 갈 수 없다. 이미 배수진을 치고 들어온 이상 어떻게든 시작한 일을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날 밤 눈부신 꿈을 꿨다. 넘실거리는 금빛 강물은 다음날까지 나의 마음까지 적셨다. 푸른 산과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드넓은 강가에서 아이들이 그물 한가득 물고기를 잡는 꿈이었다. 아무에게도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기운이 좋다.

다음날 오전 11시경 근무 중에 급하게 부동산에서 매물이 있다고 연락이 온다. 벨이 울리는 전화기를 보며 중요한 순간임을 직감한다. 울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급히 자리를 옮긴다.

'여보세요.'

인사 따위는 필요 없다.

'계좌를 줄 테니 지금 오천을 보내세요. 최대한 빨리….'

더 이상 대화는 무의미하다. 지금 이 순간을 잡아야 한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제 온종일 부동산에 있었던 일이 순간 생각난다. 실망을 등에 지고 어둑한 길을 따라 집에 가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2달 동안 아기들 데리고 서울 전역을 돌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막혀버린 강변북로에서 수많은 불빛 가운데 내가 만날 수 있는 집은 어떤 것인가.

경매, 찢겨버린 계약서, 번번이 호가 들쑤시기, 부동산 초보 딱지….

이 모든 게 지금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있었던 일이었던가.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생각한다.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다. 5분 안에 즉시 큰 금액의 계약금을 보내야 한다. 불장일 경우 계약금이 많지 않으면 배액 배상의 가능성이 높다. 이 바닥 고급 용어 2번째다. 배액 배상은 잔금을 치르기 전 계약금보다 집값 상승이 빠르면 계약금의 2배를 지불하고, 계약을 파기해 버리는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신랑에게 연락한다. 역시 인사 따위 설명은 필요 없다.

' 오천 즉시 송금.'

'메시지는 전달 즉시 폭발한다.'

오전 11시 그렇게 007 부동산 작전이 시작된다. 찰나의 망설임에 계약은 틀어질 수 있다. 각자 나의 일터에서, 신랑의 일터에서, 부동산 2곳에서, 지방의 매도인 일터에서, 그렇게 계약은 당사자들이 모이지 않은 채 비밀리에 진행된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 바닥에서 '집을 한번 보겠어요.'는 안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집을 한번 보자고, 보고 계약했다고 했다면, 내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집은 보지 않았다. 아니 사실 보지 못했다.

월세를 선택하든, 전세를 선택하든, 자주 있는 이사든 집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자 역사이다.

그때 이런 선택을 했으면 좋았을까. 그 동네로 이사 가면 좋았을까? 집을 살까? 팔까?

인생에 큰 변곡점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고민을 하고, 성공을 하며 때로는 깊은 좌절감을 맛본다. 부동산이란 단어를 떠올리니, 적폐, 재테크, 돈, 이런 단어들이 쭉 나열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실 모두 알고 있다. 집은 그냥 삶의 일부이고, 내가 선택했던 치열한 나의 역사라는 것을 말이다. 누구에게나 치열한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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