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동산 매매 하기 전에, 꼭 먼저 알 체크리스트

by 보건소

지방에서 상경해 경기도 어디쯤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지하철 2번에 마을버스 한번, 참 길고 긴 출근 시간이었다. 2호선으로 한강을 건널 때면 나는 물끄러미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내가 서울에 사는구나.’

한강은 내가 서울에 산다는 증표요, 증거였다. 그렇게 흐르는 강에 적응해 갔다. 한강은 컸다. 작은 천만 보았던 나에게 한강은 마치 바다 같았다. 작은 천의 징검다리를 총총거리며 건너던 소녀는 한강의 거대함에 항상 압도당했다. 그리고 서울생활에 압도당했다.

'지하철을 어떻게 타?'

'갈 때는 여기서 타고, 반대로 올 때는 길을 건너서 타?'

'몇 호선인지 어떻게 알아?'

처음 지하철 타던 날, 먼저 서울 생활하던 둘째 동생에게 지하철을 물어보니, 동생이 답답해한다.

'버스처럼 길 건너서 타는 거 아니야, 일단 타봐.'

'표는 어떻게 사? 야~'

뚜뚜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설명하려니 동생도 답답했음이라. 결국 우리네 인생, 자신이 경험해봐야 한다. 소금을 아무리 짜다고 설명한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어찌 알 것인가. 내 집 마련이 아무리 만만치 않는 과정이라고 한들 안 해본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관심도 없을뿐더러, 이해 자체가 힘들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한강에 대한 두근거림이 사라질 즈음. 강남역, 삼성역에 가끔 가면 항상 사람들에 압도당했다. 처음 한강을 볼 때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강남 사람들은 슬리퍼만 신어도 뭔가 있어 보였다. 옷도 좋아 보였다. 택시 타는 사람이 대단해 보였다.

회사에서 회식으로 가끔 가는 강남 바닥에서 다른 사람은 나에게 아무도 관심 없는데 혼자 쭈뼛거렸다. 버스노선을 두리번거리며 찾는 게 두려웠고, 고층 건물에 주눅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다른 이들은 다 자연스러웠고, 나만 부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삼성역을 지나 코엑스 앞을 지난다. 오늘도 차가 많다. 사람이 많다. 전광판에는 번쩍거리는 광고가 휘황찬란하다. 밀리는 차 안에서 전광판을 보고 있자니 지루하지 않다.

오늘도 역시 코엑스 앞은 자동차 극장으로 문전성시다. 스크린이 여러 개니, 골라가며 보는 재미가 있다. BGC는 땅을 파고 있다. 해리포터 금고가 있는 지하세계까지 도달할 지경이다. 이에 질세라, 삼성동 전체가 땅을 파고 있다. 해리포터의 보물을 찾는 게 틀림없다. 저 땅 파는 이들은 나한테는 말 안 하겠지? 강남은 땅 파면 보물이 나오는 게 확실하다. 그 증거 장면은 날마다 지속된다.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하는 코엑스를 이제는 날마다 출퇴근길에 보면서 예전 한강을 경이롭게 보던 소녀의 모습이 스쳐간다.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처음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 집이 저층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집안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작은 평수에 집은 어두웠다. 화장실은 1개에 물의 수압은 낮았다.

도대체 이런 집을 사려고, 전국의 사람들이 그렇게 눈에 불을 켜는구나. 이 집을 사려고, 그동안 그 고생을 했구나. 눈물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냥,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들었다. 그해 뜨거운 여름에 시작한 우리의 부동산 표류기는 늦가을이 되어서야 정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영끌 대출을 안고 샀다. 언젠가는 들어갈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당장 그 집에 들어갈 돈은 없다.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를 간단히 줄인 신조어이다.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서 최선을 다한다'라는 의미이고, 지금 나에게는 가능한 선에서 많은 돈을 끌어모은 모습을 희화화하는 표현이다. 그렇게 영끌 대출을 안고 그 집을 산다.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보험대출 등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모아서 언젠가는 들어갈 수 있겠지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집을 샀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그때의 대출이 없었으면 도저히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번 바뀌는 대출 정책으로 은행에 갈 때마다 담당자의 확답을 들을 수 없었다. 갈 때마다 조마조마했는데 그 고비마저 간신히 넘겼다. 전세를 줬으니 당장 그 집에 들어갈 돈은 없다. 하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 잘 살다가 알뜰히 돈 모아 들어가기로 한다. 혹은 그전에 재건축이 되면 고마울 일이다. 물론 10년 이내에 재건축이 될 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정책이 자꾸 바뀐다. 뉴스를 보다가 실거주 2년을 하지 않으면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없다는 정책을 접한다. 머리가 어지러우며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지금은 그 정책은 결국 시행되지 않았다) 재건축 조합과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에서 빠른 기간 안에 실거주 요건을 채우라고 공지가 계속 온다. 신랑과 날마다 의논을 했다.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집에 계속 있을 것인가. 법에 따라 강남 집으로 이사할 것인가. 이사했을 때 득과 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항상 걸리는 돈 문제. 전세금은 어떻게 빼 줄 것인가. 물이 제대로 안 나오는 강남 집에는 살기 힘들 것 같은데 우리가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법은 따라야 하니 신랑과 머리를 싸맨다. 사실 강남으로 이렇게 갑작스레 빠른 이사는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큰 숙제를 끝내고(강남 집 매수) 편한 생활에 안주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시행될 정책을 따르려면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강남으로 이사해야 한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오히려 최종 의사결정이 정해졌으니 결정해야 할 일이 하나 줄고, 상황에 대응만 하면 되니, 그런 면에서는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강남으로의 이사는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몰고 왔다. 사교육의 천국인 곳에서 아이의 교육은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그리고 엄청난 사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접해보지 않았지만, 대출금과 높아진 생활비를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날마다 꽉 찬 강남의 대로를 날마다 출퇴근하려니 헛웃음부터 나왔다. 나는 원래 강남을 두려워하던 아줌마였다. 주차는 또 어떤가. 말할 필요 없이 어렵다. 어느 것 하나 자신 있는 게 없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나 스스로 버틸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드세다는 소문이 무성한 곳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미디어에서 본 강남 아줌마들에 대한 편견과 내 안의 두려움은 더해져 거대한 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담담히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다.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는 결국 실현되지 않은 정책이었다. 그 정책으로 전 세계에 있던 집주인들이 한꺼번에 강남 아파트로 몰려왔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하고 있던 세입자는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고, 들어와야만 하는 집주인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이사군단에 이삿짐센터는 난리이고, 아파트가 오래되니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 집주인들 틈에 끼어 인테리어 업체는 업무 폭주의 비명을 질러댔다. 3개월 전부터 인테리어를 예약해야 겨우 공사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게다가 오래된 아파트의 배관이라, 요즘 일반 아파트의 배관처럼 깔끔한 배관을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어려운 배관을 잘 못 건드릴 경우 윗집 아랫집에 손해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 아파트를 잘 알지 못하는 곳에 인테리어를 의뢰할 경우, 어려운 수도관을 잘해줄 수 있을까라는 리스크까지 안고 가야 한다.

그리고 재건축 아파트는 세입자가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 인테리어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집주인은 오래 살 작정으로 들어오니, 인테리어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테리어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알 일이지만 인테리어에는 끝이 없다. 다만 의뢰자가 어디까지 할 것인가의 적정선만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금에서 어디까지 욕심부릴 것인가. 어느 부분은 포기할 것인가. 이 또한 선택의 연속이다. 인테리어마저 선택의 연속인데 우리네 인생사 선택으로 점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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