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런데 대체 누가 살아? 강남 아파트 직접살아봄

by 보건소

집주인은 집으로 들어가라는 어명을 받들고저 한다. 남편과 인테리어 금액과 날짜를 조율하고 이렇게 된 이상 가능하면 빨리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이사를 결정 후 신랑과 인테리어를 고민했다.

‘강남 입성하긴 했는데 우리 살 집이 몬스터 하우스야.’

‘집이 사람을 잡아먹게 생겼어.’

집은 오래되었지만, 아이들과 10년을 살아야 하는 각오로 들어온 만큼 인테리어 어느 것 하나 놓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사하게 된 이상,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데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냥 오래된 아파트가 아니라 재건축 아파트였기 때문에 재건축 여부에 따라 우리의 판단이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었다. 신랑과의 결론은 아이들은 어리고 결국 학령기를 여기서 보내야 한다. 그리고 재건축은 10년을 예상하여 인테리어 계획을 수립했다. 10년은 매우 긴 기간이다. 만약 그 기간 안에 재건축이 시행된다면 우리 가족은 또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10년을 살 경우를 예상해 인테리어를 하려니 결국 할 수 있는 만큼 다해야 한다. 베란다 난간이 썩어서 손으로 밀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던 집의 상태이다. 난간이 썩어있는 있는 건 처음 봤다. 쥐가 있어서 수도관을 갈아먹을 수도 있다 한다. 앞이 막막했다. 아이들과 이곳에서 10년은 너끈히 살아야 하는데…. 뭐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다. 녹물은 나오고 수압은 낮다. 주차는 뭐……. 뭐라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주차가 힘들다는 이상의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하는 데 실패했다. 나랏님의 명령으로 전국에 흩어져있던 집주인들이 대거 몰려오는 것이 눈앞에 생생히 보인다.

전에 거주하던 분의 이사 날이다. 집의 상태를 확인하러 텅 빈 집에 들어갔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50개는 족히 넘게 보이는 바퀴벌레약이 들어가는 발끝에 채인다. 한숨이 푹 나온다.

돈이 없다. 이미 강남 아파트 사면서 돈을 다 썼다. 다 썼다는 게 무색하게 있는 대출, 없는 대출까지 현시점에서 끌어당길 수 있는 모든 돈을 다 끌어 썼다. 갑작스럽게 전세금을 반환할 계획도 없었고, 돈도 없다. 전세금 빼 줄 돈이 없다. 은행대출은 다 막혔고 누구한테 빌리자니 전세금 목돈을 누가 빌려줄 것인가. 눈물을 머금고, 다시 한번 대출 창구를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미 주택담보대출까지 다 끌어 쓴 우리에게 더 큰 돈을 구하기란 막막한 일이었다. 날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빌리고, 대출받고를 반복하여 어찌어찌 돈을 맞추어간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이 그렇게 짜내었다. 그렇게 마른 수건은 마르다 못해 나중에는 바스러질 지경이었다. ‘

그때부터였다. 날마다 먹던 하이네켄 수입 맥주 한 캔의 가격이 아까워 필라이트로 바꾼 시점이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한참 여행에 열 올리며 네덜란드에서 먹던 하이네켄의 맛을 잊지 못해 종종 하이네켄을 먹었다. 원래 양주를 먹던 스타일이라, 내 입에는 조금 강한 스타일의 맥주 맛이 맞았다. 파란색 필라이트는 도저히 안 맞고 그나마 초록색을 소주를 타 먹으니 먹을 만했다. 이마저도 아까워 주말에만 먹기로 한다. 건강을 생각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로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이사를 결정한 이후 옷과 화장품을 포함한 모든 사치품의 의미가 희석되어 갔다. 나름 깔끔한 멋쟁이였고 멋진 스커트와 뾰족구두를 신고 다녔었다. 명품백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 구경하고 다녔었다. 직장에서 하는 8만 원짜리 한 달 주차권을 척척 결제하며 소비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살았다. 정확하게 강남 집 구매 전까지 나는야 욜로족이 확실했다. 이젠 그런 소비가 다 무의미하다. 강남 집 매수 후 옷을 산적이 없다. 자동이체 매달 300원 아까워 해지하고, 그냥 매번 한 건 이체한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셀프 주유소에 갔다. 저렴한 가격에 한번 가보기로 도전한다.

이래 봬도 서울 막 올라와 주유소 아르바이트 경력도 1년도 있겠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퇴근 시간을 조금 지나서, 한가한 8시쯤 도전하기로 한다. 저번에 신랑 하는 것도 한번 봤으니, 해볼 만하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주유소 입구에 들어서고, 차를 정차한다. 카드를 넣고, 주유기를 꽂고 시원하게 기름이 들어간다. 주유 중이라는 문구가 뜬다. 그런데….

주유가 끝나지 않는다.

내 뒤로 차가 계속 밀려 있는데. 나의 주유가 끝나지 않는다. 순간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아무리 기름이 많이 들어가도 이럴 수가 있는가. 염치 불고하고, 앞서 주유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사장님을 불러준다. 아, 김 여사님 오늘도 실수투성이이다. 역시, 차와 기계에는 소질이 없다. 이렇게 힘들어서야. 사장님이 나에게 위로를 한다. 처음에는 어려워도 나중에는 익숙해질 거예요. 강남보다 가격이 싸긴 하다. 다음에 또 와보자.

비록 나의 주유소 경력이 깡그리 무시되었지만,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나는 강남에서 주유하지 않는다.

메모리얼 그라운드 제로.

미국 911 테러 사태로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는 수년 동안 공사를 거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공원을 조성되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희생과 비극과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씌여진다.

우리는 강남에서 그라운드 제로 상태이다. 이곳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지 역사를 만들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만의 삶의 터전을 만들기로 비장하게 꽃삽을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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