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강남 재건축은 클래스가 다르다

by 보건소

40년간 재건축의 꿈은 막혀있었던 아파트였다. 그런 아파트가 서서히 움직여간다. 긴 기간 동안의 조합장이 바뀔 예정이다. 새로운 변화가 조금씩 일렁인다. 주차장의 울퉁불퉁한 면을 새로 매끈하게 깔아댄다. 지하실의 쓰레기를 치웠을 때는 독일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 온다.

‘그 아파트 쓰레기 치운다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 아파트 쓰레기 치우는 일이 되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

‘응, 엄청 궁금해,’

쓰레기 치우는 일이 기사로 나올 일인가 생각하던 중에 동생의 솔직한 반응이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정말 이 낡은 아파트를 궁금해하는구나. 다른 이들의 관심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구나. 울퉁불퉁했던 아스팔트가 부분적으로 새로 깔리고, 이중주차 삼중주차로 인해 차를 미는 것이 일상인 우리에게 조금 더 수월함이 더해진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주민에게 올해부터 난방 수도 공사를 한다는 말은 이 아파트의 변화를 가장 체감하게 하는 현장 아닐까. 속도는 느리더라도 결국 변해간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 아파트는 서서히 변모해 간다. 어쩌면 이 글이 나중에 우리 아파트의 역사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이랬지만 지금은 이렇게 변모하였구나, 세월이 참 무상하고 빠르다는 것을 이 글로 다시 읽을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무렵 그 치열한 현장에 함께 있었음을 증거하는 책으로 남길 바란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으로, 누군가에겐 교육의 터전으로 누군가에겐 욕망의 대상으로 누군가에겐 질투의 대상으로. 하나의 아파트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너무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는 아파트이다. 부디 이 모든 긍정적인 관심, 부정적인 관심을 딛고, 비상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12. 강남 사람들의 도서관에서의 모습

나는 도서관을 자주 간다. 한번 가면 10권씩은 빌린다. 도서관은 나의 안식처요, 피난처이다. 나가 자주 이용하는 대학도서관은 사원증을 들고 출입할 수 있다. 도서관 갈 때마다 캠퍼스의 싱그럽고 젊은 학생들이 참 밝고 좋아 보인다. 도서관 건물은 참으로 거대하다. 넓은 로비이며, 큰 책상과 의자, 멀티미디어실까지, 좋은 시설에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노트북실, 휴게실 등 나처럼 혼자 놀기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곳은 천국이다. 가끔 휴가를 받으면 아침부터 하루 종일 머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도서관에 사람이 정말 없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사람이 몇 명 없다. 그래서 항상 나는 이곳을 내가 전세 내서 사용한다. 재작년 코로나가 창궐할 시기에는 도서관 사서가 이용자보다 많을 정도니 도서관의 적막함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아주 가끔 도서관에 사람이 많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기말고사와 중간고사이고 혼자 깨닫는다. 시험 기간만은 유독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그때 외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찌 되었건 나는 그렇게 쾌적한 호텔 같은 도서관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를 즐겨한다.

여느 때처럼 책 들고 낑낑거리며 도서 10권 대출 신청하려 도서관 데스크에 간다. 오늘도 역시 근로 장학생들은 핸드폰만 보고 있다가 뒤늦게 접수를 해준다. 종종 바뀌는 근로 장학생의 근무하는 태도는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째는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경우이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보는지, 앞에 서 있어도 대출하러 왔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아니 대부분은 모른다. 내가 빤히 쳐다보며 잠시 기다리고 있어야 그제야 처리를 해준다.

두 번째는 전공 공부를 하고 있는 경우이다. 필기를 하고 있거나, 노트북으로 업무를 본다.

세 번째는 독서를 하는 경우이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책을 읽는 경우이다. 그나마 도서관에서 책이나 전공 공부를 하는 모습은 조금 낫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보는 모습은 핸드폰을 하는 모습이다. 책상에 앉아서 핸드폰 하는 모습이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는 듯하다. 그때마다 그 학생에게 꼰대 어른으로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시간이 아까우니 그 시간에 책 읽으라고!'

도서관에서 근무하는데 핸드폰만 하는 아이러니를 나는 좀처럼 참을 수가 없다. 물론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다. 매장당하지 않으려 앞으로도 말할 생각은 없다. 그저 소심한 나는 빌린 대부분 책이 모두 부동산, 재테크, 주식 책이어서 살짝 고민한다. 그 책들만 줄줄이 대출 책상 위에 올려놓기가 뭔가 좀 살짝 부끄럽다. 그래서 신간 한 두 권으로 살짝 가려서 도서대출을 시도한다.

'그래 자연스러웠어. 돈독 오른 아줌마로 안 보였을 거야.'

'삑삑'

도서대출 바코드 소리를 들으며 나의 대출 현황을 살핀다. 540여 권. 얼핏 본 다른 사람 대출 현황 중에 나보다 높은 사람은 아직 못 봤다.

강남 집으로 이사 후, 처음으로 동네 도서관에 갔다. 상가에 위치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도서관이다. 구경이나 할 겸 올라가는 계단에서, 고급 도서관만을 이용했던 나에게 역시나 성에 차지 않는 외관과 크기이다. 일단 건물의 크기에서 비교가 확 된다. 하지만 도서관으로 들어가니, 그 크지 않는 공간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본디 내가 알던 도서관은 건물 외관만 으리번쩍하고 안은 텅 비어있는 그런 곳이었는데. 여기는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누가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녀서가 아니라. 각자 책을 빌리고 책을 읽느라 정신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책을 찾는 사람, 신간을 예약한 사람. 나처럼 대출 카드를 만들러 온 사람, 아이랑 책을 빌리러 온 사람,

데스크에 2명이나 근무 중인데, 그들의 업무 폭주를 보며 안쓰러울 정도였다. 저 정도면 굉장히 고강도의 업무이다. 익히 대학도서관에서 핸드폰 보고 있던 근로 장학생에 익숙했던 나에게 그들의 뛰어다니는 모습은 생경했다. 핸드폰으로 잠시 한눈을 팔 시간이 없을뿐더러, 빨리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무슨 초등학생이 그렇게 책을 빌려 가는지, 나는 눈은 분주히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특별 코너에는 자리를 앉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항상 있고, 그 외에도 책을 빌리느라, 칸칸이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내가 주로 보는 경제, 부동산, 재테크 쪽으로 갔다. 경제, 재테크 분야의 성경과도 같은 부의 추월차선과 부자 아빠 책은 거의 폐지 수준으로 너덜너덜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빌려봤다는 것이겠지. 그 외 경제 서적도 인기의 척도를 알려주듯 책의 상태가 온전치 않다. 두 도서관을 다니며, 비교를 할 수 있었다. 물론 공평한 비교는 어렵다. 한쪽은 대학도서관이고 일반인의 출입이 안 되는 곳이다. 그에 반해 다른 한쪽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분주한 사람들이 가득한 작은 도서관이 조금 더 행복하게 보인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그 작은 도서관이 어깨를 으쓱하며 다니지 않을까. 큰 도서관에게 작은 고추가 맵다며 그 작은 도서관이 한껏 덤빌 것도 같다. 도서관이라는 숙명으로 태어나면 그에 본분을 해내 는 것이 당연한 그의 운명이다.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그 지식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큰 도서관은 그런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내 생각에 그는 슬퍼하고 있을 것 같다. 6층이 넘는 그 넓은 공간에 수많은 장서가 울고 있는 것 같다. 나라도 그의 어깨를 위로해 주러 가야겠다. 이렇게 나는 그를 위로해 주는 단짝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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