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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n 24. 2024

당근! 당근이지!

준비물 준비하기 편.


 그렇게 당근마켓에서 배낭을 준비해 보기로 마음먹고 바로 검색을 시작했지만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일단 그냥 우리 동네 자체에선 배낭을 판매한다는 글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국내 타 지역으로 비행을 가거나 김포공항으로 출근할 때 당근마켓의 매물 표출 지역을 변경해서 찾아보기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지역을 바꿔가며 당근에서 배낭 찾기에 집중한 결과는?


 김포공항으로 출근하던 어느 날, 습관처럼 당근마켓에 들어가 보았다. 세상에나!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못 보던 매물이 새로 올라왔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원하던 브랜드는 맞지만 찾고 있던 모델은 아니었다. 나는 오스프리의 카이트가 갖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 녀석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나 할까? 마치 배낭이 내게 ‘야~ 내가 너 좋아할 줄 알고 좀 숨어있다가 일부러 이제 나타난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카이트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상쇄시켜 주는, 우리의 첫 비대면 만남이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48L로 내가 찾던 적당한 사이즈, 붉은색과 주황색이 알록달록 눈에 확 띄는 컬러, 사이즈는 내 토르소에 맞는 S/M(나중에 알았지만 남성용. 하지만 난 크게 개의치 않는 성격이라 문제없었다. 허리가 좀 아팠던 것 빼면 하하하.) 게다가 90,0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 이보다 더 완벽한 매물이 있을 순 없었다. 당시 당근마켓엔 오스프리 배낭 매물이 올라오는 족족 빠르게 거래가 되었던 터라 고민 따위는 사치였다. 조급함에 에라 모르겠다. 바로 냅다 채팅을 걸었다.


내가 꼭 구매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대화창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약속 날짜를 바로 잡고 마치 놀이동산에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렘에 잠을 좀 설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주머니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용감하게 네고를 제안했다. 평소에도 ’깎아주세요.‘ 이런 말을 절대 못 꺼내는 성격의 사람인데 그땐 뭐에 씌었었는지 네고에도 야무지게 성공해 만원 더 깎아서 80,000원에 배낭을 획득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만나고 보니 이 녀석 더더욱 매력 만점에 실물 파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배낭을 멘 채로 거울 앞에서 이리보고 저리 보고 꽤 오랫동안 혼자 패션쇼를 진행했더랬다.


 자! 이제 배낭까지 준비가 완료됐다.

이후에도 등산스틱까지 당근에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좋은 가격에 구매 성공했다.(이 스틱은 나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의 시그니쳐가 됐다. 이유는 나중에 사진을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 아주 범상치 않다.)



 

 날짜는 어느덧, 10월 말이 됐고 출발기간까지 한 달 정도 남은 상태였다. 자 이제 등산화! 등산화를 서둘러 구입해야 했다. 새 등산화는 내 발에 맞춰 길들임이 필요했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 무척 짧게만 느껴졌다.


 원래 산 타러 갈 때 나이키 운동화로 충분했던 나인데 괜찮은 등산화는 어떤 것인지 처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등산화/중등산화, 밑창의 종류, 적정 사이즈 등… 어마어마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꼽은 포인트는 방수, 밑창, 사이즈 선택이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등산화들은 최소 20만 원부터 시작해 최대 40만 원대 까지로, 배낭을 아주 운 좋게 저렴히 획득한 것에 비하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격이었다.


 하아… 그래도 왠지 집에 등산화 한 켤레쯤은 있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며 신발장을 열어보니 오래전 밀레에서 사놓고 한 번도 안 신어본 새 등산화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기쁜 마음에 사이즈부터 확인해 봤는데 이럴 수가 245mm.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랬던 이유! 좋은 등산화를 선택하기 위해 찾아본 바로는, 장거리 산행이나 트레킹에 신는 등산화는 보통 사이즈 선택 시 5~10mm 크게 신기를 권장하는 글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그 정보에 따라서 평소 245~250mm를 신는 나에겐 턱없이 작은 등산화였다. 나는 새 등산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겨울 순례길에 걸맞은 등산화에 대한 조건 충족을 위해 수집한 정보>

• 중등산화일 것. 발목은 미들에서 하이.
->겨울엔 길이 미끄러워 발목을 반드시 잘 잡아줘야 한다.

• 방수/방풍이 반드시 되는 것.
->통가죽이나 고어텍스일 것. 신발이 젖는다면 겨울길 걷는데 꽤나 지장이 생길 가능성 다대.

• 비브람 창으로 되어있을 것.
-> 한국과 토양의 질이 달라 빙판, 흙, 돌 등… 미끄럽지 않은 것으로. 한국에서 많이 신는 캠X라인 같은 경우 미끄러져 부상의 위험이 큼. (나도 북한산 능산 타러 갈 땐 캠X라인 신고 간다. 마른 암벽 탈 때 하나도 안 미끄러움.)

• 사이즈는 반드시 5~10mm 넉넉하게 구매할 것.
-> 오래 걸으면 발이 퉁퉁 붓는다. 평소에 신던 사이즈를 선택하면 신발이 작아지게 된다. 발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다간 발톱이 빠질 수도 있다.




 등산화 공부도 어느 정도 했겠다! 가서 제대로 둘러보고 직접 보고 신어볼 겸, 나는 지난날 빈손으로 돌아왔던 종로 5가에 다시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또다시 어느 휴무일의 종로 5가 방문. 지도를 보며 등산화만 판매하는 전문 브랜드 매장을 찾아가 신어보고 가격을 알아봤다. 역시나, 이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가격이었지만 좋은 신발들이라 그런지 어마어마했다. 선뜻 지갑을 열기 망설여졌다. 나도 모르게 입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며 조금 시무룩 해지기 시작했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의 피로도 관리가 어쩌면 제일 중요한 건데, 싼 거 신고 갔다가 개고생 하지 말고 그냥 무사완주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라는 얼렁뚱땅 고가의 등산화를 구입하기 위한 딱 좋은 변명거리가 떠오른 것이다.


 결국엔 내가 가장 원했지만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던 ‘잠발란 등산화’를 손에 넣었다. 이건 분명히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머릿속으로 내내 되뇌며.


 짙은 브라운 컬러에 비브람 밑창, 게다가 통가죽, 가격은 32만 원. 아저씨랑 실랑이하며 가격을 깎아서 최종적으로 28만 원에 구매한 내 친구. 무척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첫 번째 종로 5가 방문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아직도까지도 나의 최애 등산화. 이 등산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준비물 준비는 끝이 없었다. 이제는 또 판초우의를 알아봐야 했다.

이것 역시 썩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좀처럼 시중에 나와있는 트레킹용 판초가 내 마음에 안 든 이유가 좀 어이없었는데, 바로! 나는 트렌치코트처럼 머리부터 종아리까지 다 가려주는 판초를 원했기 때문이다.

 

 트레킹 좀 해봤다는 분들이 보시면 ‘얘 지금 뭐라는 거야? 트렌치코트 길이에 판초? 등에 배낭을 멘 채로? 판초가 무슨 용도긴 알긴 하나?’라는 생각이 드실 거다.


 안다. 나도 안다. 판초는 대부분 천편일률적으로 다 고만고만한 가오리핏 디자인뿐이란 걸.


 하지만 잔머리 천재왕. 나는 찾아냈다.

내가 찾은 게 무언고? 이것도 길고 긴 검색 끝에 찾아냈다. 바로, 비 오는 날 배달기사들이 입는 우비였다. 제비표상사에서 판매하는 종아리 반쯤까지 오는 하늘색 우비.(링크를 걸고 싶지만 내가 보유한 모델은 단종된 듯하다.) 방수기능은 말할 것도 없고 색상도 사이즈도 다양해서 넉넉한 사이즈로 구매하니 배낭을 매도 들뜸 없이 몸에 착- 감기는 내 멋쟁이 판초 준비 완료! (이 판초도 나중에 나만의 시그니쳐가 되었다고… 야, 저기 앞에 Sunny 걸어간다~~~)



 

  메인 준비물들이 하나둘씩 웬만큼 갖춰지자 그 밖에 부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터넷에서 산 흡습, 속건에 뛰어난 두장에 30,000원짜리 콜롬비아 셔츠, 노스페이스 아웃렛에서 산 동계용 등산 바지, 아이더에서 산 패브릭 짱짱한 스패츠, 당근마켓에서 또 구매한 세컨드 핸드 귀돌이 모자 등등…


 이미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준비물을 구매함에 있어 한참이나 예산초과였지만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 버릴 것 하나 없는 성공적인 완벽한 투자이자 소비였다.


 휴무날엔 틈틈이 새 등산화를 신고 배낭엔 쓸데없는 것들을 집어넣어 대충 무게를 맞추고 남산을 올랐다. 하루에 한강변을 25Km씩 걸으며 연습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쉬는 날 남산을 오르며 쁘띠하게 걷기 연습했던 나


‘Sunny. 제발!!! 이 모자 안썼으면해. 이 챙달린 모자, Korean 시그니처 잖아!!! 무엇보다 보라색!! So hooooorrible 해. Plz.'




준비물 최종 리스트

• 오스프리 배낭
• 잠발란 등산화
• K2 등산 스틱
• 제비표 판초
• 아이더 스패츠
• 당근발 헤드 랜턴
• 트라우마 침낭(컴포트 온도 -5)
• 포켓 배드 프리볼트 전기장판
• 콜롬비아 상의 두벌, 노스페이스 하의 두벌, 속옷 상/하의 4벌, 원래 있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밀레 경량 패딩, 유니클로 경량 패딩 조끼, 노스페이스 플리스 재킷
• 인진지 울 양말 세 켤레
• K2 귀돌이 모자
• 카라비너 2개
• 상비약 (밴드, 파스, 타이레놀, 베스타제, 정로환, 페미니라민 등…)
• 충전기/보조배터리
• 당근발 미니 헤어드라이기
• 간이 쿠션
• 파쉬 물주머니
• 크록스 슬리퍼
• 편한 나이키 운동화
• 노스페이스 미니 간이 가방
• 손톱깎이
• 핫팩 여러 개
• 라면 스프 대용량 팩
• 김과 미니 고추장들
• 휴대용 티타늄 수저 젓가락 세트
• 휴대용 티타늄 컵
• 심심할 때 읽을 책 한 권

현지 구입 예정 물품

• USIM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기 위한 모든 준비는 얼추 끝냈다! 순례길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해 야금야금 여러모로 준비하는 과정에 걸린 기간은 두 달이 채 안 됐다.


 누군가는 그곳에 가기 위해 평소에 틈틈이 걷기 연습도 하고, 캠핑/ 트레킹/ 장거리 등산/ 운동을 하며 기초체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일 텐데, 그동안 나는 우울증을 핑계로 한참 동안 운동도 쉬었었고, 좀 더 냉정하게 말해서 근지구력 0에 수렴하는 내가! 과연! 체력적인 준비도 없이 성급하게 떠나는 게 진짜 맞는 걸까? 떠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괜한 일을 벌인 것만 같다는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하기야 우울증 환자가 멘탈이 강했으면 이 사단도 나지 않았겠지!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너무나도 많은 일을 벌여놨기에 바보 같은 생각에만 빠져서 준비한 계획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의 고민과 걱정을 한방에 해결할 방법은 순리대로 원래대로 계획을 진행시키면 되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자! 이제 출발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두려움에 포기하지 말자. 힘내자. 괜찮을 거야. 난 잘할 수 있어. 그냥 여태 준비하며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렸던 것처럼 똑같이 계속 쭉 달려 나가면 돼.


모든 준비물이 다 들어간 내 배낭의 최종 모습. 약 12Kg
판매자분도 순례길 걷기가 버킷리스트였지만 여건상 갈 수 없었다. 대신에 내가 지리산 종주 출신 배낭과 함께 버킷리스트 완료! 대리만족하시길 바랐던 마음으로 보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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