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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n 27. 2024

복병의 등장, 그리고 D-1

마지막 비행과 새로운 여정의 서막



 필요한 물품 준비를 마치고 나름 알뜰살뜰하게 잘 채워진 배낭을 보면서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본격적인 비용 마련과 산티아고 도착 이후에 파리로 돌아와서의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오랜만에 가는 파리이기도 했고 코로나 전엔 굉장한 인기가 있는 노선이라 거의 항상 비행기가 만석이 되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꿈의 도시였다. 그래서 모든 일정이 종료되면 휴양 겸 파리에서 일주일 정도 쉴 수 있도록 돌아오는 항공편 예약을 넉넉한 날짜로 잡아뒀다.




 일전에 파리에서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혼자라 자유롭고 편하고 좋았지만 취미가 맛집 찾아다니기인 나로선 항상 레스토랑에 홀로 방문했기 때문에 남모를 고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는 혼자서 이것도 먹어보고 싶고 저것도 먹어보고 싶은데 외식 물가가 비싼 편이라 단품만 먹고 돌아오는 게 늘 아쉬웠다. ’유랑‘이라는 카페에서 동행을 구할 법도 했지만, 낯을 가리고 개인행동을 좋아하며 ‘외국에서도 한국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라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접어두기로 하고 대신에 아직 파리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엄마를 꼬시기로 했다.

 

 결과는 로맨틱, 성공적. 내가 파리에 도착하는 날짜에 엄마도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서 만나 일주일간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이렇게 진행하면 되겠지? 란 생각을 끝으로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산티아고를 여행하는 기간엔 그곳에서 지내며 필요한 물품만 든 배낭이면 충분한데, 파리가 어떤 곳인가!!!


 폼생폼사 낭만과 멋쟁이들의 도시, 패션의 본고장 파리가 아니었던가!!! 절대 후줄근한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다닐 순 없다는 생각에 따로 챙겨야 할 짐이 늘어났다. 백패킹 가방에 짐이 다 들어가는 것은 무리였기에 작은 캐리어가 추가적으로 생긴 것이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엄마가 파리로 오실 때 내 캐리어를 가져오시도록 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엄마가 그 시기에 코로나에 걸려서 못 오셨다.  내가 떠날 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내내 등산복 차림으로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아주 무시무시한 사태가 벌어질뻔했다.)


 어허…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꼬?

곧바로 짐보관이 가능한 루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하철에 코인 로커가 있듯 파리에도 돈만 내면 한 달 정도 짐 보관하는 곳이 있었는데 가격면에서 큰 부담이 됐다. 그러다 또 기가 막히게 찾아낸 파리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카페를 발견했다. 나는 곧바로 가입을 하고 등업을 진행하고 글을 올렸다.



 <파리에 약 한 달가량 짐 보관해 주실 분을 찾습니다.>

 12월 02일~ 내년 01월 XX일까지 약 한 달간 작은 캐리어 하나 보관할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사유는 스페인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데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기 부담스럽습니다. 로커 사용도 분실과 비용적인 문제로 조금 부담돼서 도움 주실 분을 찾습니다. 작게나마 사례하겠습니다.


 순식간에 꽤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달아준 한 명 한 명에게 쪽지를 보냈다. 주로 파리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었는데 자신들이 살고 있는 플랫 한켠에 보관해 줄 테니 적게는 100유로부터 많게는 250유로 까지 제각각 가격을 불러댔다.


 이러면 내가 도움글을 올린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나도 공짜로 보관을 원했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내가 생각해 둔 예산을 초과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 나에겐 마치 하늘에서 보내주신 성녀와도 같은 수녀님으로부터 반가운 답변을 받았다. 파리의 한 수도원에서 수련차 지내고 계시는 분이었는데, 무료로 보관해 줄 테니 현지에서 공부에 필요한 학용품을 대신 파리까지 들고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지의 학용품 퀄리티는 한국보다 우수성이 떨어지고 비용적인 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하시며…


 우습게도 순간 ‘이거 마약 운반 아니겠지?’라는 걱정을 좀 했었는데 다행히 택배로 한국에서 나에게 보낼 학용품이 든 박스를 다 뜯어서 확인해도 괜찮다는 말에 안심하고 수녀님과 모종의 거래를 하기로 했다. 비로소 또 한시름 덜어놓게 되었다. (여러분 MBTI 'P'인 사람이 이렇게 대책 없고 무모합니다. 하하하)




  눈 깜짝할 새 정신없이 흘러 어느덧 출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하랴 준비하랴 정말 바빴던 것 같다. 출발하는 날짜는 21년 12월 02일 파리까지의 여정.


 출발하기 전, 마음의 안정도 시킬 겸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떠나고픈 마음에 연차 신청기한을 지켜서 전월달인 10월에, 11월에 있는 마지막 비행 29~30일에 연차를 신청해 뒀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심지어 하나는 모두 우리의 그룹팀으로 구성된 팀 비행이었다. (팀비행에 연차를 썼는데 안 나왔다고 이야기하자 사무장님 너무하다는 장난반 진심반인 후배들의 말을 듣고 조금 머쓱하고 미안했었다. 하하.)


 11월 30일의 비행은 일하는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해 어떻게 업무를 끝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비행 중에 잠깐잠깐 다들 휴직 때 무얼 하며 보낼지 이야기했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휴직이 시작되자마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예정이라는 것을 알렸고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후배들의 응원을 받았다.


 출국장을 나오며 12월 휴직으로 인해 내년에 또 얼굴 보자며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다들 이제는 반갑지 않을 휴직기간을 잘 버텨내길 바라는 마음 가득 담아서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2021년도 마지막 비행을 마무리했다.




 2021년 12월 01일.

 잠에서 깨자마자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빠진 건 없는지 내일 공항에서 해야 할 일과 파리에 도착 후 이동 동선 등 마지막 점검을 시작했다. 12kg짜리 가방을 요리조리 매보고는 ‘이 정도는 거뜬하네 뭐! 더 챙겨갈 것 없나?’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이제야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아주 위험한 생각이었네?(욕심 더 부렸으면 큰일 날뻔했음.)


 추가적으로 여권을 따로 챙기고 공항에 가서 경비로 쓸 돈을 한화와 달러를 섞어 몽땅 유로로 환전해야 했다. 요즘에나 트레블월렛이니 뭐니 간편한 외화사용이 가능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지에선 신용카드와 현금 사용이 전부였다.

 

 게다가 순례자의 길에 있는 알베르게(숙소)나, Bar(한국의 bar와 개념이 많이 다름.) 현금만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해 올 현금으로 환전을 한 것! 사용하면서 어차피 줄어들 돈이었지만 300만 원이 넘는 거금의 현금을 한 달 내내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도 출발 전 근심걱정의 주요 부분이었다.


 내가 세운 여정의 경비 운용 계획은 이랬다.

넉넉하게 잡아서 숙박과 식대를 포함해 넉넉하게 40유로씩 35일을 잡아서 단순 계산으로 1,400유로(당시 환율 기준 한화로 약 2,072,000원)와 순례길 여정을 마치고 한국 입국을 위해 파리로 돌아가 엄마를 만나서 약 일주일 가량 함께 머무를 경비를 포함해 총 2,500유로(한화 3,700,000원)를 준비했다. (엄마가 코로나에 걸리셔서 나 혼자 지내기라곤 상상도 못 했을 때의 비용)




 초장엔 얘가 돈이 없어서 알바도 하고 죽으려고 했던 애가 돈이 어디서 났냐?라고 생각하신다면! 설명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코로나 이벤트를 맞이하여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 그리고 아끼던 옷과 가방, 시계 등 철없을 적 멋모르고 선배들 따라 샀던 고가의 사치품들을 당근에 처분했더니 꽤 큰돈이 생겼다. 이 돈으로 난 용품을 준비하고 여행경비까지 마련할 수 있었던 것! 추가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해외 스테이션에서 자고 오는 스케줄이 없어져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항공사에선 승무원들에게 해외체류 시 식대 겸 일종의 용돈 개념으로 다른 주머니를 하나 채워준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는 달러 통장에 달러로 입금되는 구조다.) 근데 막상 환전하려고 하니 이 달러용돈 통장이 생각난 것!


 어플을 켜 통장의 잔액을 확인해 보니 그동안 인출하지 않아 제법 두둑하게 돈이 모여있었다. (독한 마음먹고 2-3년씩 묵혀서 샤네루 가방 사는 친구들도 있음. 정말 대단해…) 게다가 10월에 근무한 월급도 들어와 있었고, 11월 월급도 12월 중으로 들어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돈걱정은 여정시작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소강상태가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올렸던 나의 아끼는 판매물건들이 좋은 주인 만나서 빠르게 정리가 되고, 잊고 있던 달러통장의 존재는 마치 ‘어서 와, 네 마음의 짐을 좀 덜어주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자 이제는 정말로 여정의 시작이 당장 내일이다. 평소처럼 빈둥거리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지 말자. 아직 끝나지 않은 할 일이 아주 많다! 푹 자고 일어나자. 가보는 거야! 가보자고!


 아차! 빼먹은 게 있었다. 바로 순례길 루. 트. 짜. 기.

하지만 내일의 일은 내일의 고민, 가서 상황 보고 흘러가는 대로 하면 되겠지? 란 단순 명료한 성격의 소유자는 루트 같은 건 보지도, 생각도 안 했다.


 이로 인해서 며칠 후에 대참사발생, 큰 코 세게 다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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