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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l 11. 2024

가자! 바욘으로! 생장으로!

Buen Camino.



 호텔에 들러 맡겨놓았던 배낭을 찾아 다시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늘의 여정은 18:35 출발하는 Easy

jet의 파리-비아리츠행.

 

 탑승권 발권을 위해 카운터로 갔다. 가는 내내 얼마나 가슴을 졸였었는지. 유럽의 몇몇 저비용 항공사 중에서도 기내 휴대 수하물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악명 높은(?) Easyjet 후기는 이미 출발 전부터 많이 읽어봤던 터였다.

 

 하지만 공항에서 재어본 내 배낭의 무게는 15.7kg였고, 설상가상 배낭 높이는 짐 때문에 Top head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아나서 웬만한 기내용 캐리어보다도 높았다.

 

 한국에서는 출발 전에 용품 준비한답시고 턱턱 열렸던 지갑이 비행기 좀 타고 국경을 넘어서 다른 나라의 화폐로 변한 것에 낯을 가리며 잔뜩 겁먹은 똥강아지 마냥 좀처럼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혹여나 구매한 항공권 가격보다 배낭에 Extra charge가 붙어서 말짱 도루묵 되는 건 아닌지 탑승전부터 돈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운터 직원은 나의 짐의 무게를 재고 나를 빤-히 보더니 쿨하게 Carry-on tag를 배낭에 붙여줬다.


‘흥… 뭐 이런 따뜻한 사람이 다 있담.’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full fare 해서 비행기를 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때는 겨울이라 해가 일찍 떨어진 탓에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건만 파리의 야경이 이륙하는 잠시 동안 그림같이 펼쳐졌다가 이내 구름에 가려졌다.



숨은 그림 찾기: 에펠탑을 찾아 보세요.
구름에 가려진 파리의 야경. 몹시 밝다.




 파리의 짧은 야경을 구경한 후, 늘 그렇듯 비행 내내 잠만 자다 내렸다. 약 1시간의 짧은 비행. 지도상으론 서로 먼 거리지만 비행기로는 금방이었다. 처음엔 파리에서 생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갈아타고 또 이동하는 것을 고려했었지만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터득한 것은 바로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 나는 이 행위를 몹시 좋아한다.




 공항명은 비아리츠 공항이지만 도시 이름은 바욘(Bayonne)이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바욘에 도착하는 날 당일에만 하룻밤 머물고 다음날 바로 생장(Saint-jean-Pied-de-Port)으로 테제베를 타고 이동할 요량이었다.

 미리 기차표를 구매했고 바욘에서 하룻밤을 보낼 숙소를 찾았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가격도, 숙소도 찾지 못했던 나는 또 할미꽃처럼 시들어가다가 Airbnb를 생각해 냈다.


 바욘은 그리 크지 않은 소도시의 느낌이었고 기차역 근처에서 가까운 위치, 가격도 마음에 쏙 드는 숙소를 찾아냈다. 단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Homestay&share 형식이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유형의 숙소를 경험해 본 것이 없다는 것.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의 방 한편을 여행자들에게 내어준다는 말쑥해 보이는 남성의 Airbnb 후기를 보면서 제법 신뢰가 갔다. 이미 가격적인 면에 넘어간 이후라 경계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Host에게 바욘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받은 주소를 구글맵에 검색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비가 온 뒤라 공기가 축축하게 습하고 어두웠던 그 밤, 그 공항의 버스정류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화려함의 극치인 파리를 떠나 고요하고 어둠이 짙게 깔린 낯선 도시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내 모습을 보며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구나.‘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유난히도 길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담배 한 대를 정말 맛있게 태웠다. (지금은 끊었습니다. 사실 배낭의 무게가 초반보다 늘어난 이유는 알 수 없는 짐들과 인천공항에서 산 담배 두 보루…)




 버스에서 내려 구글맵에 의존해 Airbnb로 찾아갔다. 도시가 정말 고요했기 때문에 골목골목 사이를 혼자 지나며 조금씩 무서운 기분이 들무렵에 도착했다! 나의 숙소! 하지만 도통 들어가는 문이 어딨는지 감도 안 오고 주변은 캄캄하게 다 불이 꺼진 상태였다.


‘저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메시지를 보내자 건물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남성이 나왔다.


 그를 따라서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집에 도착했다.

정말이지 뭐랄까 유럽 양식의 집들은 정말 감탄스럽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네모난 사각형 모양의 건물 안에 이런 멋진 구조의 집이 있다니!


저… 도착했습니다만…?




 그 친구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유창한 영어실력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엄마와 함께 살고 있으며 빈방 하나를 Airbnb로 운영 중이라고, 보통 투숙객들은 나와 같은 순례길로 향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화장실의 위치와 내가 사용할 방, 그리고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알려주었고 다음 Guest 예약이 없으니 내가 원하는 시간 언제든 떠나도 좋다고 했다.


 하루종일 유심을 좀 더 싸게 사보겠다고 빨빨거리며 진을 빼고 다녔던 터라 빨리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 무렵. 그 친구는 나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두둥-! 꼬불꼬불한 집 구조를 지나 마주한 내 방앞에는 상당히 감동의 Moment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Welcome Sun!'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머나먼 외국땅에서 마주한 나를 향한 환대는 말로 하기 어려운 행복과 기쁨 그 자체였다. 하루종일 쌓인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라디에이터를 미리 켜놔서 따뜻한 공기가 방안에 맴돌고 있었다. 심플한 유럽 감성 인테리어, 깨끗한 침구, 깨끗한 화장실.


 괜히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걱정 잔뜩, 숙소에 발을 들이기 전 문 앞에서 움츠러들어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요즘말로는 러키비키(?)라고 하나? 아무튼 당시 러키비키는 나였다. 걱정반 의심반 두려움 잔뜩 걱정했던 숙소 초이스는 대 성공적이었다.


 오늘도 피로가 잔뜩 쌓여버린 터라 바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기절해 버렸다. 기절하기 직전에 간신히 의식을 부여잡고 알람 5개를 맞췄다. 내일 기차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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