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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l 15. 2024

얼렁뚱땅 시작 돼버린 첫 여정#1

이게 맞아요? 맞겠죠 뭐.


* 이번화는 총 2번으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입니다.


  

 다음 날 아침 11시에 기상했다.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떠나도 좋다고 호스트가 말했었지만 나는 이미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생장으로 가는 테제베를 예약하고 왔던 상태였기 때문에 12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선 서둘러 나가야 했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방 밖으로 나왔을 땐 집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생판 모르는 외부인을 집에 들여놓고선 이렇게 프리해도 되는 것인지 이런 게 바로 유럽 스타일인지!!!


 작은 의문을 뒤로한 채 식탁에 인천-파리행 비행기에서 승무원언니가 아무렇게나 손에 쥐어주었던 과자 몇 봉지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집을 나왔다.


‘고맙습니다! 멋진 숙소 덕분에 하룻밤이지만 밤새 편하게 잘 쉬었다가 떠나요!’


'Bon voyage!'



 

 건물 밖을 완전히 나오자 깜짝 놀랐다.

지난밤. 나를 잠시 동안 공포스러운 기분에 빠지게 만들었었던 그 골목은 해가 뜨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알록달록 원색의 간판들,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와서 그런지 올드하지만 그게 오히려 좋아 보였던 장식들. 고즈넉하고 여유가 넘치는 상점들. 또, 어젯밤 괜히 혼자서 힘 빼기 한 건지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그 거리가 정녕 맞는지요?


파주 영어마을? 혹은 에버랜드? 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물씬 들었던 진짜 유럽 소도시의 풍경.



 마음 같아선 느긋하게 거리를 구경하고 싶었으나 배가 몹시 고팠고, 기차 탑승전까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워낙 계획 없이 대충대충 덜렁거리며 무조건 적인 편함을 추구하며 사는 성격 탓에 서두르지 않으면 또 기차역에 가서 헤매다가 기차를 놓칠 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에.


 일단 기차역 근처로 이동해 그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만한 식당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숙소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던 바욘 기차역. 시간은 대충 오전 11:20. 기차역 앞 작은 광장에 금세 도착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케밥 비슷하게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세상에나, 브리또? 수블라키? 비슷한 것 하나와 콜라 한 개를 시켰더니 거의 30유로가 되었다.


 잊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스페인에 있었지만 몸은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프랑스에 있었다는 것을…


사악한 가격이지만 한 끼 잘 먹고 갑니다!




 핸드폰 데이터 아끼겠답시고 딴짓 않고 계속 핸드폰 시계만 들여다보며 한 끼 식사를 잘 마쳤다.

어차피 시차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다 자고 있었을 터…


 혹시 또 기차역에서 헤맬라, 11:45 이 되어서야 식당을 빠져나왔다. 들어가기 전, 기차역 광장 앞에서 인증샷 비슷한 개념으로 대충 풍경 사진만 찍고 서둘러 들어갔다.


 하하… 역시! 좀 일찍 오길 잘했어!!!!!! 기차표는 온라인으로 발권받아 표출되어 있었지만 번역기를 돌려도 도대체가 어디서 타는지 모르겠더라고… 선로가 달랑 두 개뿐이었지만 플랫폼은 어지럽게 번호가 뒤섞여있었고(아마 긴장해서 내 눈에만 그래 보였던 걸지도) 관광지도 아닌 작은 소도시 기차역엔 그 어떤 안내판도 영어 한 줄로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


 절망 그 자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저씨. 저 길을 잃은듯한 기분이 듭니다만…


 계속 같은 자리를 왔다 갔다 몇 번 했을까. 정복을 입은 역무원이 등장했다. 두-둥!


 서둘러 번역기를 돌렸다. 프랑스-한국어


‘안녕하세요. 도와주세요. 12시에 출발하는 생장 가는 기차 몇 번 플랫폼 어디서 타나요? 감사합니다.’


 히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에… 영어로 대답이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역시 현지인답게 유창한 불어로 뭐라고 뭐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내가 불어를 알아들을 턱이 있나, 할 줄 아는 건 고작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뿐인 것을!


 에-??,???… 못 알아듣는 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혼란스러움 가득해지려고 할 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듯한 손짓을 하는 역무원님을 따라서 저-어기 끝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올라가서 반대편으로 우린 그렇게 등장했다.


 연신 Merci merci만 중얼중얼거리며 동양인답게 허리와 머리를 연신 숙여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을 때 스-륵 들어오는 기차 한 대.


 이 친구가 바로 그 교과서에서 배웠던 프랑스의 테제베라는 고속열차로구나!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기차에 올라타서도 생장으로 내가 간다는 게 영 실감이 나지 않고, 혹여나 잘못 탔을까 긴장과 걱정을 거듭하며 눈알을 열심히 굴려가며 이 기차가 맞는지 거듭 확인했다.


 다행히도 맞았다! 확실해! 눈에 보이는 저 전광판의 글씨는 내가 구글맵으로 몇 번이고 눈으로 익혀두었던 그곳이다!


St-jaen-Pide-de-Port.

 

 

 기차는 정확히 오후 12:00 제시간에 출발했다.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드디어 나 기차 잘 타고 이동한다고 카톡을 보냈다.


 생장행 기차엔 내가 탄 칸과 눈에 보이는 옆칸을 포함해 사람이 나를 포함해 3명도 정도였다. 그 뒤엔 더 있었을지도. 그중에 누가 봐도 완연하게 순례길을 시작하기 위해 기차를 탄 사람은 나뿐이었다.


 숨길 수 없는 이 강렬한 원색의 등산 복장.


강렬, 강력하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정복을 입은 산타할아버지 느낌 물씬 나는 승무원 할아버지가 다가와 탑승권 확인을 해주신다.


 내돈내산으로 당당하게 탔지만 이게 뭐라고 가슴 떨렸었는지…




 기차가 빠르게 달리며 눈앞에 펼쳐지는 산과 넓은 들판의 풍경과 간간히 등장하는 정말 정말 작은 마을들을 보며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놀이동산에 소풍 가는 날 잠 못 들게 했던 그런 떨림과 같았다고나 할까.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던 떨림이었던가!


  언젠간 이 풍경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얼마 전 헤어진 연인과 함께 왔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다는 어지러운 생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결혼 포기자다. 하하. 그렇지만 결혼까진 아니더라도 연애는 할 수 있으니 나중에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 순례길을 함께 걷는 것, 기꺼이 나와 함께 걸어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


 원래 움직이는 이동수단에만 타면 잠들기 바쁜 난 어쩐 일인지 1시간 05분 이동 시간 내내 말똥말똥 맑은 정신으로 별별 잡생각만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버렸다.


 그래,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와 버리고 말았다. 중간중간 내리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구글맵으로 이동 경로를 확인하면서. (그땐 생장이 마지막 역인 줄 몰랐다.)


생장 기차역의 풍경.


 비가 온 뒤였는지 날씨는 축축하고 습했다. 구름이 잔잔하고 넓게 깔려있어 해가 들지 않았고 추위가 확 느껴졌다.


 아, 정말 겨울이구나 여긴! 기차 플랫폼에 서서 배낭에서 가져온 얇은 경량 패딩을 꺼내 바람막이 안에 껴 입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목표는 우체국 방문하기!

이유는 바욘 숙소에서 출발 전 짐을 모두 꺼내어 봤다. 등산화가 아닌 내가 신고 온 운동화 등… 몇 가지 순례길을 걷기에 불필요하고 생각되는 짐을 산티아고 우체국에 보내기 위해서.


 검색한 정보에 따르면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짐을 보내면 내가 일정이 끝나고 찾으러 갈 때까지 그곳에서 무상으로 보관을 해준다는 꿀팁을 찾아냈다. 대신 프랑스 to 스페인이었기에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은 함-정. 생장은 아직 프랑스였으니까!




 내 생명줄과 같은 구글맵에 의지해 생장 역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런? 문이! 문이 잠겨있다!!!!!!!!!!!!!!!!!!!! 안쪽에 비치된 팻말을 번역기 돌려보니 대충 점심시간인가 어쩌고… 아무튼 오후 1시 30분에 문을 연다는 안내문이었다.


 주변 지리도 모르고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아서, 무엇보다 2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되었기에 두리번거리다 건물 뒤쪽에 앉을 수 있는 계단을 찾아 배낭을 벗어두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 이번화는 총 2번으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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