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 carlos
그래 지난 화를 요약해 보면 생장에 도착한 나는 도착 당일 바로 첫 여정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고 추천받은 목적지인 Val carlos까지 구글맵으로 걸어서 2시간 30분 거리를 확인했다. 그러나 걸어도 걸어도 줄지 않는 시간과 거리에 괴로워했었지.
‘2시간 30분- 오케이!‘를 외치고 패기롭게 시작한 첫 여정…
시간이 지나며 10kg의 배낭은 내 어깨를 삶은 감자 으깨듯이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출발 전 일기예보상 비가 온다는 소식과 더불어 산속의 한기가 느껴져 입고 있던 판초우의.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더워서 그냥 더운 게 낫다는 판단으로 꿋꿋이 입고 걸었던 게 실수였을까?
굽이굽이 언덕을 돌며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둘러싼 도로를 걸으며 체력이 바닥날 대로 바닥이 나고 사 왔던 생수 두병은 몇 모금 남지도 않았던 상황은 나를 절망에 빠트리기 정말 최적의 조건이었다.
허리를 거의 기역자로 숙여 스틱에만 몸을 의지한 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때쯤, 자동차 한 대가 속도를 줄여 내쪽으로 슬금슬금 오더니 창문이 열렸다.
‘Buen camino!'
차 안엔 노부부가 계셨고 세월엔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환하고 반짝 거리는 눈으로 인사를 건네시곤 유유히 사라지셨다.
아-이 따스움이여…
요즘엔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같은 아파트 맞은편에 사는 이웃도 데면데면한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낯선 이를 경계하고 멀리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던 사회 속에서 살아왔던 나는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온 지 며칠 안되었지만 한국에서였다면 한 달, 아니 반년치동안 받을 수 있는 따뜻함과 호의의 달성 치를 이미 초과해 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습게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깨의 고통과 목적지에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심리적 고통은, 이 응원을 받음으로써 MIND RESET이 되었달까.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했다.
축 쳐져 있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 앞만 보며 걸어 나갔다. 그러다 구글맵을 통해 처음 발견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선.
오후 5시 08분.
내 생각 속의 국경선은 경비가 굉장히 삼엄하고 철책이 둘러져있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수상한 사람은 쉽사리 통과하기 어려운, 마치 큰 관문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는데. 이게 웬걸? 이게 국경선이라고요? 아니 잠시만요. 저 생각 좀 할게요.
산 언저리에 있는 아웃도어 아웃렛이 모인 곳 같은 장소의 주차장 공터가! 국경이라니!!!!!! 기분이 몹시 이상했다. 이게 맞나?
야리꾸리한 기분 한껏 만끽하며 드디어 스페인 땅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 여기서 에너지 충전 한 번 더 완료!
오후 5시 16분. 남은 거리 4.4km, 예상 소요 시간 1시간 3분. 에너지를 얻었지만 오전부터 계속 체력을 야금야금 소모한 상태라서 금세 고갈 되고 말았다. 유일한 낙은 현재 위치를 계속 리셋시키며 걷는 게 다였다.
오후 5시 36분. 세상에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내 눈으로 처음 목격한 정식적인(?) 까미노 표식! 아주 반갑기 그지없었다. 왠지 목적지가 가까워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지만 구글맵의 내 위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 보시라! 내가 걷던 길의 모습을.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날씨와 점점 저물어져 어두워진 도로를 걸으며 정말 빼도 박도 못한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되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도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무언가 핑계를 대며 푸념만 늘어놓을 시간에 차라리 힘을 내어 빨리 도착하는 걸 목표로 삼는 수밖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이 악물고 걸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행군을 하지만 여자인 나는 생애 첫 행군인 셈이었다. 반쪽 짜리 행군. 국군 장병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도착 30분을 남겨두고 정말 조금만 더 버텨내면 오늘은 끝날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또 힘이 나기 시작했다. 잠시동안 길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맨 처음 배낭을 내려 놓았을때, 그때의 감정은 마치, 아! 예수님이 십자가를 내려놓으셨을 때 이렇게 개운하셨을까!!!!!! (무교입니다.)
내친김에 도착 전 미리 숙소에 전화를 해서 곧 도착 예정임을 알리려고 했으나 통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불어로 뭐라 뭐라 나왔는데 알아들을 턱이 있나. 결국 마을입구쯤에 도착해서 전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Val carlos.
참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진짜로 눈물이 양 눈에서 주룩 흘러내렸다. 아마도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하루종일 심적으로 괴로워만 하다가 결국엔 해냈다는 뿌듯함이 섞인 눈물이지 않았을까?
가로등이 듬성듬성 있고 불마저 밝지 않아 캄캄하고 길가에 사람하나 없는 작은 시골마을 산속에서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라곤 장작나무 태우는 냄새뿐이었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우두둑 내리는 빗속에서 눈물 쓱- 콧물-쓱 닦고 숙소 근처에 적당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오늘 묵을 알베르게에 전화를 걸었다.
찾아본 숙소는 공립 알베르게!
신호음이 몇 차례 가다가 전화를 받은 줄 알았는데 아까 들었던 불어로 뭐라 뭐라 나온다. 아마 전화연결이 안 된다는 말이었던 것 같았다.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먹통이 되자 플래시를 켜 가방을 뒤적거리며 한국의 유심으로 갈아 끼워 국제전화 통화료를 내기로 마음먹고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간다-! 이번엔 성공의 기운이 느껴진다!
‘Hola'
받았다!
해외 나오면 자동으로 모국어가 되는 영어를 써가며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숙소 근처에 와 있습니다! 곧 도착할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럴수럴수 이럴 수. 영어를 못하시는 모양인지 자꾸 스페인어로 말씀하신다.
'Can you speak English?'
'No, no.'
하… 고지가 눈앞인데 절망의 구렁텅이에 이렇게 또 빠져버리고 마는 건가! 하던 순간. 공부머리 돌아가는 속도는 보통이지만 잔머리 하나는 번개같이 돌아가는 속도인 사람으로서 아이디어가 쓱 스쳐 지나갔다.
파파고. 파파고 번역기를 돌려 스페인어로 번역한 다음 한국어로 쓰인 음절을 띄엄띄엄 읽어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숙소 근처에 와있습니다. 거기에서 오늘 자려고 합니다. 7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에요.’
속으로 계속 ‘이게 맞나? 맞나? 알아들으신 건가? 왜 말이 없으신 거지? 내 스페인어 억양이 이상한가? 제발 도와주세요 오오…‘ 할 때쯤 영어로 텐미닛! 이효리의 그 텐미닛을 외치신다.
살. 았. 다!